임태희 "남북비밀접촉 향후 대화재개시 촉매제 될 것" … "북한 퍼주기설은 사실과 다르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인터뷰 내내 궁금했던 것은 2009년부터 이듬해까지 있었던 남북비밀접촉 뒷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는 남북대화 과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다만 왜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설로만 떠돌았던 남북비밀접촉을 인정하고 입을 떼기 시작했는지 설명하려 했다.
그는 "왜곡된 이야기가 사실처럼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MB정부 대북정책 대원칙이었던 '상호주의'를 포기하고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고 퍼주려했다는 언론보도를 지칭한 것이다. 임 전 실장은 "당시 남북대화 당사자가 대선주자로 나온 상황에서도 침묵한다면, 잘못된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왜곡될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아야 향후 남북대화가 재개될 때 이를 토대로 출발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사진 이의종
그가 전한 당시 남북비밀접촉 합의 요지는 이렇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과 이산가족 상봉 확대,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를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 문제를 확정짓기 위해 남북정상이 만나 남북관계의 일괄타결문제까지 포함해 해결하자는 방식이었다. 임 전실장은 특히 당시 남북간에 송환대상 납북자와 국군포로 명단까지 교환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향후 남북대화가 재개될 때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 전 실장은 "(당시 남북접촉은) 미완성의 상태이지만 김정일의 사망으로 일단락이 된 것"이라며 "남북한이 이 문제를 기초로 해서 대화를 시작하면 (남북대화 수준을)급진전시킬 수 있다"고 했다.
임 전 실장은 당시 남북정상회담 무산과 관련 의미 있는 언급도 내놨다. 정부기관 내에서 남북대화 주도권을 쥐기 위한 과열경쟁이 남북대화를 무산시킨 한 요인이란 지적이다. 그는 "만약 (남북접촉 당시) 제가 여당 정책위원장을 했거나 국회에 있었으면 마무리됐을 것"이라며 "고용노동부장관을 하면서 접촉을 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했다"고 했다. 또 "기본적으로 정부부처간에는 일종의 영역다툼과 관련된 경쟁관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인인 권익현 전 민주정의당 대표의 영향으로 16대 총선(성남 분당을)에서 당선돼 국회에 발을 디뎠다. 2002년 대선에서는 당시 이회창 후보의 경제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17대에서 재선에 성공한 임 전 실장은 한나라당 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여의도연구소장 등 요직을 거쳤고 대선 경선 이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및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측근으로 불리게 됐다.
2009년 9월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MB정권의 실세로 떠올랐다.
2009년 10월 이 대통령의 특별 지침으로 싱가포르를 극비리에 방문해 김양건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하는 등 대북 메신저 역할도 했다. 이듬해 7월에는 대통령실장에 임명되면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지난해말 대통령실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모교인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강의를 해왔다.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 프로필
▲1956년 경기 성남 ▲경동고·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행시 24회 ▲한나라당 대표비서실장·대변인·원내수석부대표·여의도연구소장 ▲고용노동부 장관·청와대 대통령실 실장 ▲제16·17·18대 국회의원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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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인터뷰 내내 궁금했던 것은 2009년부터 이듬해까지 있었던 남북비밀접촉 뒷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는 남북대화 과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다만 왜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설로만 떠돌았던 남북비밀접촉을 인정하고 입을 떼기 시작했는지 설명하려 했다.
그는 "왜곡된 이야기가 사실처럼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MB정부 대북정책 대원칙이었던 '상호주의'를 포기하고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고 퍼주려했다는 언론보도를 지칭한 것이다. 임 전 실장은 "당시 남북대화 당사자가 대선주자로 나온 상황에서도 침묵한다면, 잘못된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왜곡될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아야 향후 남북대화가 재개될 때 이를 토대로 출발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사진 이의종
그가 전한 당시 남북비밀접촉 합의 요지는 이렇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과 이산가족 상봉 확대,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를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 문제를 확정짓기 위해 남북정상이 만나 남북관계의 일괄타결문제까지 포함해 해결하자는 방식이었다. 임 전실장은 특히 당시 남북간에 송환대상 납북자와 국군포로 명단까지 교환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향후 남북대화가 재개될 때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 전 실장은 "(당시 남북접촉은) 미완성의 상태이지만 김정일의 사망으로 일단락이 된 것"이라며 "남북한이 이 문제를 기초로 해서 대화를 시작하면 (남북대화 수준을)급진전시킬 수 있다"고 했다.
임 전 실장은 당시 남북정상회담 무산과 관련 의미 있는 언급도 내놨다. 정부기관 내에서 남북대화 주도권을 쥐기 위한 과열경쟁이 남북대화를 무산시킨 한 요인이란 지적이다. 그는 "만약 (남북접촉 당시) 제가 여당 정책위원장을 했거나 국회에 있었으면 마무리됐을 것"이라며 "고용노동부장관을 하면서 접촉을 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했다"고 했다. 또 "기본적으로 정부부처간에는 일종의 영역다툼과 관련된 경쟁관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인인 권익현 전 민주정의당 대표의 영향으로 16대 총선(성남 분당을)에서 당선돼 국회에 발을 디뎠다. 2002년 대선에서는 당시 이회창 후보의 경제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17대에서 재선에 성공한 임 전 실장은 한나라당 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여의도연구소장 등 요직을 거쳤고 대선 경선 이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및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측근으로 불리게 됐다.
2009년 9월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MB정권의 실세로 떠올랐다.
2009년 10월 이 대통령의 특별 지침으로 싱가포르를 극비리에 방문해 김양건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하는 등 대북 메신저 역할도 했다. 이듬해 7월에는 대통령실장에 임명되면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지난해말 대통령실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모교인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강의를 해왔다.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 프로필
▲1956년 경기 성남 ▲경동고·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행시 24회 ▲한나라당 대표비서실장·대변인·원내수석부대표·여의도연구소장 ▲고용노동부 장관·청와대 대통령실 실장 ▲제16·17·18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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