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교수/언론학
'수명 100년' 채우기가 힘든 줄 알면서도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5년 단임 대통령제 하에서 '권불5년'이란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마치 수십년 갈듯이 뒷일 생각않고 탐욕을 부리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앞선 정권의 비참한 말로를 보고 반면교사로 삼음직한 사람들이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을 보면 과연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구속 수감을 지켜보는 심사는 착잡하다. 정권 초부터 '상왕'이니 '영일대군'이니 '만사형통(萬事兄通)'이니 '비리의 몸통'이니 하는 온갖 구설수에 올라 있었기에, 결국 쇠고랑 차는 모습이 당연한 귀결로 여겨지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하다.
일반인 눈에는 진작부터 훤히 보이던 결말이 당사자 눈에는 안 보였던 것일까. 법원 영장심사를 받으러 출두하면서 저축은행 피해자들에게 넥타이를 잡히고 달걀을 맞는 험한 꼴을 당해 처연함을 더해준다.
권력 교체기마다 되풀이되는 참담한 모습을 언제까지 봐야 하나. 이를 막을 근본적 대책은 없는가, 답답할 뿐이다. 우리의 후진적 정치문화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꼽지만, 특히나 이명박 정권은 정말 해도 너무하다. 대통령 최측근 치고 성한 사람이 없다. 동지는 없고 동업자만 있을 뿐이라는 '천박한 정권'의 본색이 여실히 드러난다.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왕 차관'으로 불리던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등 줄줄이 권력형 비리로 쇠고랑을 찼다.
어찌 보면 이는 이 대통령 본인의 잘못이 가장 크다. 애초 대통령 당선 전부터 너무 많은 도덕적 흠결을 지니고 있었다. 거듭된 위장전입부터 시작해, 도곡동 땅투기 의혹, BBK 주가조작 관련 의혹 논란 등 지도자로서는 물론 일반인으로도 매우 부끄러운 논란들이다. "양심이 밥먹여 주냐, 능력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발 좀 뻗고 살게 해달라"는 '묻지마 투표'의 후과를 지금 겪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도덕적 흠 … 동업자만 판쳐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나 엄격한 도덕성이 결여된 '천박한 정권'의 위험성은 집권 초기 서슬 퍼런 겁박으로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장들을 일제히 쫒아내는 모습에서부터 드러났다.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면 약점을 캐기 위해 심지어 동네 슈퍼마켓 영수증까지 뒷조사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 정부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민간인을 사찰하는,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대형 사고를 친 것도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임기 말 대통령이 퇴임 후 살 집을 구하면서 국고를 꼬불치려 했다는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까지 더해지며, 명색이 대통령인데 치사하게 그마저 챙기려 했나 하는 의구심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강변하는 후안무치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마음가짐이니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들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집권 전 고까운 소리를 해댄 방송계 완전 장악을 위해 KBS, MBC, YTN에 낙하산 사장을 보내 평정하고, 정권에 우호적인 조선·중앙·동아일보와 매경에 종합편성 채널까지 안겨주기에 이르렀다.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을 옥죄기 위해 박원순, 최열 등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들을 표적 수사해 발을 묶으려 했다. 시민운동의 한계를 절감한 박원순씨가 정치에 발을 들이고 서울시장에 당선된 것도 시민세력 무한탄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명박정부는 실패한 정권으로 이미 판정이 났다. 문제는 '한배'를 타고 '대칭 권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책임이 없는가 하는 점이다. 박근혜 후보와 그를 돕는 캠프진영은 박 후보가 정권 내내 핍박받아왔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그 책임을 모면하고 튀는 불똥을 차단하려 한다. 당 이름을 바꾸고 적당히 선을 그으면서 '신장개업' 치장에 바쁘다. 필요하면 이명박정부와 각을 세우기도 할 것이다.
'박근혜 책임' 어디까지인가
하지만 박 후보는 이명박 정권 내내 여당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동반자 구실을 해 왔다. 세종시 이전 논란 외에 이명박 정권의 숱한 전횡과 실정, 독선에 그가 얼마나 곧은 소리를 하며 견제했는지, 함구로 일관하며 사실상 동조했는지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엄밀히 말해서 '지분'에 상당하는 혜택을 누리거나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과 핍박을 받았다는 주장은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박근혜 대선캠프에 모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박 후보가 어떤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명료해진다. 정치인은 '국민통합'을 외치면서도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대변하고 배려하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실리지 않은, 말로만 하는 약속의 공허함은 이미 누누이 겪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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