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재 칼럼] 전쟁종식을 기념하지 않는 나라

지역내일 2012-07-27

본지 논설고문

해마다 7월 27일 정전협정 기념행사 없이 넘어가는 까닭이 궁금하다. 민족사 최대의 참화가 멈춘 날에 그 흔한 태극기 하나 달지 않아도 좋은가 싶다. 6·25전쟁 3년 간 피아의 인명피해(사망)는 대략 470만명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 가운데 남북한 주민과 군인이 350만명이 넘는다. 이런 참혹한 전쟁의 포화가 멎은 날을 젖혀두고 다른 어떤 날이 기념할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다.

정전을 극력 반대했던 이승만 대통령 시대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중 초등학교에 입학한 우리 세대는 '정전협정 결사반대' '북진통일' '멸공통일' 같은 구호를 외치는 행사가 신났던 기억을 갖고 있다.

정전협정 체결을 눈앞에 두고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 석방으로 저항한 일을 알게 된 뒤로, '외교의 귀신'이라는 말과 함께 이승만을 떠올리게 되었다. 포로교환 문제가 정전협정의 마지막 이슈가 되었던 1953년 6월 18일, 북으로의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 2만7000여명을 일시에 석방한 것은 온 세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 조야는 펄펄 끓었고, 처칠 영국수상은 이 대통령 구속을 미국에 요구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한 가지라도 더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려는 극약처방이었지만, 정전이 하루가 급한 유엔군 측 입장에서는 다 된 국에 코가 빠진 격이었다.

놀라고 화가 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급히 특사를 한국에 보냈다. 골치덩이 대통령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르기 전에 손을 쓰려는 것이었다. 국무부 차관보 로버트슨과 육군참모총장 콜린스는 이 대통령이 원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경제원조 약속을 선물로 들고 왔지만, 그들의 가방 속에도 극약이 들어 있었다.

이 대통령이 말을 듣지 않으면 미군정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에버 레디 작전' (Operation Ever Ready) 계획이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그 측근을 제거하고 군정을 재개하려던 그 계획은 1952년 7월 부산 정치파동 때 수립되었다.

정전 극력반대했던 이승만 대통령

1975년 기밀해제된 국방부문서에는 이 대통령이 골치를 썩일 때마다 서랍에서 꺼내들곤 했는데, 정전협정이 꼬였던 1953년 5월에는 국무부와 국방부 고위관료들이 심각하게 논의한 기록이 나온다.

정전협정 체결 게임에 찬물을 끼얹은 약소국 대통령에게 그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외교의 귀신 이승만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아이젠하워의 선물 보따리에 '휴전 후 90일 간의 정치회담'과 군원 약속을 덤으로 얹어 받고, '협정에 서명은 할 수 없으나 방해는 하지 않기로' 양해해 주었다. 그런 경위로 우리가 당사국인 전쟁의 정전협정에 우리 대표의 서명이 빠졌다. 우리 측 대표(최덕신 소장)는 옵서버로 참석해 구경만 했을 뿐이다.

정전협상 시작단계부터 한국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열린 첫 정전협상 한국 측 대표 백선엽 소장의 인사발령자는 이 대통령이 아니었다. 미8군사령관의 지명을 받고 부산 경무대로 날아가 그 사실을 보고하는 백 장군에게 이 대통령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휴전은 국토를 영구 분단하는 것이니 나는 반대"라는 대통령 앞에서 백 장군은 "회담장에 가지 않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미국이 하는 일이니 안 갈 수도 없지! 참석해서 잘 해보게" 했다. 그 뒤 네 번이나 바뀐 한국대표 인사가 다 그런 식이었다.

이에 비해 공산측은 인민군참모총장 겸 부수상 남 일 중장이 수석대표로서 회담 주도권을 쥐었다. 협정서에는 김일성과 중국지원군사령관 팽덕회가 최종 서명했고, 우리 측은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서명했다. 협정서에 한국 대표 서명이 빠진 것은 그 뒤 60년 세월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 근거로 악용되었다.

북한에서는 오늘이 국경일이다. 정전 후 '조국통일전쟁 승리기념일'이라고 떠들다가 1996년에는 국경일로 승격시켰다. 이긴 전쟁이라고 선전하는 근거는 "미국이 먼저 정전협상을 하자고 고개 숙이고 들어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1996년 국경일로 승격

미국이 소련문제 전문가 케난을 시켜 주 유엔 소련대표 말리크에게 협상의사를 타진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측 대표단 차가 판문점을 넘어갈 때 흰 깃발을 달도록 강요, 투항하는 모습으로 연출한 사진이 그 증거로 쓰였다.

미국은 2009년부터 7월 27일을 '한국군참전용사의 날'로 정했다. 기념일을 선포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미국인이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포고문까지 발표했다. 우리가 이렇게 오늘을 보낸다면 그 많은 선대의 죽음에 대한 후세인의 도리가 아니다. 이제는 터놓고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그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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