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날씬한 행정도시 기대한다

지역내일 2012-07-05

전 한국일보 주필

그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짐작한다. 이 대통령에게 세종시는 달갑지 않은 존재다. 취임하자마자 세종시의 법적지위를 수정하려다 정치권의 반대에 밀려 실패했던 악몽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가 참석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여론도 별로 없다. 이미 세종시 이슈에서 이 대통령은 무대 밖의 인물이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출범 기념식이 열린 지난 2일. 그곳에는 여야의 유력한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박근혜, 손학규, 정세균 등 대통령 예비후보로 거명되는 사람들, 그리고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와 이인제 선진당 대표도 그 자리에 함께 했다. 모두들 공약성 덕담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또 한 사람의 민주통합당 대통령 경선 후보인 문재인 의원은 하루 앞서 건설현장을 둘러보며 청와대 제2집무실과 국회분원을 짓겠다는 구체적 공약을 제시해서 경쟁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끌었다. 세종시는 여전히 정치적이다. 아직도 뜨거운 감자다.

세종시에는 2002년 대통령 선거전 유산이 남아 있다. 노무현과 이회창 두 대통령 후보가 대결했던 2002년 9월 30일 민주당의 노 후보는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던졌다. 아침저녁으로 쏟아지는 공약과 마타도어에 묻혀 대부분 전국 유권자들은 이를 '지방공약'쯤으로 치부하고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인구 500만의 충청권 유권자들은 조용히 그러나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회장 후보의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충청권은 노무현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고, 그 표차는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이었다. 훗날 청와대에 입성한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으로 재미 좀 봤다"고 속마음을 털어놨을 정도다.

정치적으로 잉태된 세종시는 두 차례의 정치적 홍역을 치렀다. 노무현 정부가 취임 후 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내놓자 그때야 나라가 온통 찬반양론으로 갈리면서 들끓었다. 행정수도건설은 헌번재판소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았고,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로 수정되어 추진되었다.

변화 동력은 정치·행정적 에너지

그러나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정운찬 총리를 앞세워 행정도시 기능을 더욱 약화시키는 수정안을 내놓아 다시 한 번 정국을 뒤흔들었다. 여야가 싸웠고 여당 내부에서 싸웠다. 친이계와 친박계가 마치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처럼 내분을 치렀다. 국회가 정부의 수정안을 부결함으로써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생명을 부지하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보면 세종시는 정운찬총리를 실각시키면서 박근혜계의 입지를 굳건히 해줬다.

세종시의 미래를 놓고 말이 많다. 수도권 과밀화를 완화하고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는가 하면, 국가발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자족기능을 갖는데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종시의 실험은 시작됐다. 정치적 파장을 맞으면서 굴절되기는 했어도 세종시의 본질은 행정도시다. 우리나라에는 산업화과정에서 기능 상 몇 개의 산업도시가 생겼지만, 순전히 행정도시로 수도의 기능을 분할하는 도시건설 프로젝트는 조선의 한양천도 이후 600년 간 없던 일이다.

세종시는 아직 인구 10만 명의 미니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시는 성장과 변화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변화의 첫째 동력은 정치적 에너지다. 5년마다 치러지는 대통령선거에서 세종시는 충분한 에너지를 충전하게 될 것이다. 세종시만 놓고 보면 아직 국회의원 1명의 선거구도 안 되지만 그 배후에 충청권 500만 명의 인구가 있다. 좀처럼 해소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영호남의 대결구도에서 충청권은 이미 전략적 투표의 맛을 깊이 느끼고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판국에 충청권 발전의 핵으로 등장한 세종시의 편에 서기를 거부할 대통령 후보가 나올까.

명품도시 될까, 공룡도시 될까

두 번째 동력은 행정적 에너지다. 오는 9월 국무총리실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9부2처2청과 그 소속기관 등 36개 정부기관이 세종시로 옮겨지고 공무원 1만여 명이 세종시 주민이 된다. 이렇게 되면 세종시의 영향력은 서울에서 출퇴근하던 과천의 행정타운이나 기껏해야 외곽기관과 연구기관만 이전했던 대덕단지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은 방대한 국가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막강한 파워 집단이다. 그들은 도시의 자족에 필요한 산업유치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적 파생물인 세종시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궁금하다. 비전을 갖고 건설되는 날씬한 명품도시로 지역균형 발전의 본보기가 될지, 아니면 자원 배분을 놓고 서울이나 다른 지방과 다투며 쓸데없이 몸집만 키워가는 공룡도시가 될지 기대도 크고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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