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대선에서 45.2% 득표 발판 … '경제민주화' 주도권 두고 혈투 예상
"다음에 대통령이 될 분은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들고 나온 정도의, 사람들이 깜짝 놀랄 공약을 내놓아야 합니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예비군을 폐지하고, (미소중일) 4대국 보장 하에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 남북 간에도 평화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이는 충격적 제안이었습니다."(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2월 14일)
역대 대선에서 가장 파격적이면서도 실제 득표로 연결됐던 정책공약을 꼽으라면 대부분 전문가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1년 대선에서 제시한 '향토예비군 폐지'를 내놓는다. 이는 4대국 안전보장론, 남북한 화해·교류 및 평화통일론과 함께 한반도평화를 이루기 위한 매우 구체적인 실천공약이었다. 결과는 45.2% 득표. 당시 관권개입과 노골적인 부정선거 등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였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세운 '행정수도 건설'은 충청표심을 잡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비전과 수도권 집중 해소, 권력 분산이라는 취지에 따라 제시된 행정수도는 노 전 대통령 본인이 "재미 좀 봤다"고 말했을 정도로 선거의 주요 변수로 작동했다.

◆노무현도 "재미 좀 봤다"는 행정수도 이전 =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정책은 표가 움직이는 구체적인 기준이다. 정책에 대한 찬반이 표심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는 뜻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4·11 총선 직전에 실시한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지지후보 결정시 고려요인을 묻는 질문에 정책/공약 응답은 34.0%와 38.1%로 인물/능력, 소속정당 등을 여유있게 제쳤다.
하지만 선거 이후에는 달라졌다. 역시 중앙선관위가 4·11 총선이 끝난 직후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같은 질문을 했더니 정책/공약은 16.1%로 크게 줄어든 반면 소속정당(39.8%), 인물/능력(34.6%)은 크게 높아졌다. 보수층의 강한 결집력과 김용민 막말파동 등 민주통합당의 잇단 실수로 요약되는 4·11 총선의 바닥정서를 잘 보여주는 결과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2010년 6·2 지방선거가 대표적이다. 당시 선거에서는 천안함 사건과 4대강 사업 강행, 세종시 수정안 논란, 무상급식 실시, 김제동씨 방송하차 논란 등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해 있었다.
내일신문이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한국리서치 공동으로 6·2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선거에 참여한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실제 투표행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이슈는 4대강 사업과 무상급식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3.9%와 51.3%가 해당 이슈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천안함 사건(48.1%)과 세종시 수정안 공방(46.4%)의 영향은 절반이하로 떨어졌고 김제동씨 하차논란은 26.0%에 불과했다.
천안함과 김제동씨 방송하차 등 정치이슈 보다 정책이슈가 선거결과에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내일신문 2010년="" 6월21일자="" 2면="" 참조="">
특히 4대강 사업, 무상급식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한 조사대상자들은 대부분 야당 후보에게 투표한 이들이었다. 지지성향에 따라 이슈민감도의 차이를 보인다는 분석이다. 정치공방이 치열하지 않은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려면 좋은 정책과 함께 정책돌파력까지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전략통으로 꼽히는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 주민투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새누리당의 생존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며 "치열한 당내 투쟁을 거치며 복지와 경제민주화로 전환하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총선 '성공의 기억' 떠올린 박근혜, 이번에는 =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의 정책적 목표는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경제민주화 이슈의 주도권이다. 좀 더 선명한 공약을 제시함으로써 자신들이 양극화와 고령화 등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나갈 적임자라는 점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종인 전 수석을 박근혜 캠프로 영입해 총선과정에서 선점한 이슈주도권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미 박근혜 전 위원장은 4·11 총선 이전에 당명을 변경하고 정강정책 개정을 통해 중도화 전략에 불을 붙인 바 있다.
하지만 대선에서도 '성공의 기억' 반복될지는 미지수다. 앞의 전략통은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는 우리가 잘해서라기보다는 민주당의 잇단 실수가 원동력이 됐다"며 "유권자들이 아직까지 새누리당의 '좌클릭'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계대출 문제 등이 폭발하는 급격한 경제위기 상황은 박 전 위원장에게는 부담이다. 정책은 사라지고 응급처치 논란과 책임론만 횡횅할 수 있어서다.
실제 외환위기 직후 치러진 1997년 대선에서는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과 대안 대신 '경제파탄 책임론', 'IMF 재협상론' 같은 표피적인 논란만 반복됐다.
◆민주당 경제민주화 논의 '상상력 빈약' = 새누리당에 반발씩 늦은 민주당은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를 '가짜'로 규정, 진짜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눠주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재벌개혁이 없는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허구"라고 공세를 펴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정밀한 비전은 없는 상태에서 표만 쫓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문제다. 노동시간과 휴식에 대한 고민없이 제시된 어버이날 공휴일 제안은 빈약한 상상력의 대표적인 사례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TV토론 제안에 민주당 의원 10명을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하는 것을 보고 대안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새누리당 모 의원의 이야기는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민주화를 쉽고 간결하게 보여주는 실천공약이 없다는 점은 여야 모두의 약점이다. 추상적 정책목표가 득표로 연결되려면 1971년 한반도평화-예비군 폐지, 2002년 균형발전-행정수도 이전처럼 유권자 마음을 파고드는 공약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공감정책'을 내놓을 지가 대선 승부를 바꾸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시장에 대한 정치의 개입에 대한 논쟁"이라며 "새로운 시장의 룰을 만들기 위한 정부 개입을 정치적으로 승인받는 것이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정책이슈"라고 설명했다.
허신열 기자 syhe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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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다음에 대통령이 될 분은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들고 나온 정도의, 사람들이 깜짝 놀랄 공약을 내놓아야 합니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예비군을 폐지하고, (미소중일) 4대국 보장 하에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 남북 간에도 평화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이는 충격적 제안이었습니다."(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2월 14일)
역대 대선에서 가장 파격적이면서도 실제 득표로 연결됐던 정책공약을 꼽으라면 대부분 전문가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1년 대선에서 제시한 '향토예비군 폐지'를 내놓는다. 이는 4대국 안전보장론, 남북한 화해·교류 및 평화통일론과 함께 한반도평화를 이루기 위한 매우 구체적인 실천공약이었다. 결과는 45.2% 득표. 당시 관권개입과 노골적인 부정선거 등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였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세운 '행정수도 건설'은 충청표심을 잡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비전과 수도권 집중 해소, 권력 분산이라는 취지에 따라 제시된 행정수도는 노 전 대통령 본인이 "재미 좀 봤다"고 말했을 정도로 선거의 주요 변수로 작동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4·11 총선 직전에 실시한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지지후보 결정시 고려요인을 묻는 질문에 정책/공약 응답은 34.0%와 38.1%로 인물/능력, 소속정당 등을 여유있게 제쳤다.
하지만 선거 이후에는 달라졌다. 역시 중앙선관위가 4·11 총선이 끝난 직후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같은 질문을 했더니 정책/공약은 16.1%로 크게 줄어든 반면 소속정당(39.8%), 인물/능력(34.6%)은 크게 높아졌다. 보수층의 강한 결집력과 김용민 막말파동 등 민주통합당의 잇단 실수로 요약되는 4·11 총선의 바닥정서를 잘 보여주는 결과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2010년 6·2 지방선거가 대표적이다. 당시 선거에서는 천안함 사건과 4대강 사업 강행, 세종시 수정안 논란, 무상급식 실시, 김제동씨 방송하차 논란 등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해 있었다.
내일신문이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한국리서치 공동으로 6·2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선거에 참여한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실제 투표행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이슈는 4대강 사업과 무상급식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3.9%와 51.3%가 해당 이슈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천안함 사건(48.1%)과 세종시 수정안 공방(46.4%)의 영향은 절반이하로 떨어졌고 김제동씨 하차논란은 26.0%에 불과했다.
천안함과 김제동씨 방송하차 등 정치이슈 보다 정책이슈가 선거결과에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내일신문 2010년="" 6월21일자="" 2면="" 참조="">
특히 4대강 사업, 무상급식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한 조사대상자들은 대부분 야당 후보에게 투표한 이들이었다. 지지성향에 따라 이슈민감도의 차이를 보인다는 분석이다. 정치공방이 치열하지 않은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려면 좋은 정책과 함께 정책돌파력까지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전략통으로 꼽히는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 주민투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새누리당의 생존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며 "치열한 당내 투쟁을 거치며 복지와 경제민주화로 전환하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총선 '성공의 기억' 떠올린 박근혜, 이번에는 =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의 정책적 목표는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경제민주화 이슈의 주도권이다. 좀 더 선명한 공약을 제시함으로써 자신들이 양극화와 고령화 등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나갈 적임자라는 점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종인 전 수석을 박근혜 캠프로 영입해 총선과정에서 선점한 이슈주도권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미 박근혜 전 위원장은 4·11 총선 이전에 당명을 변경하고 정강정책 개정을 통해 중도화 전략에 불을 붙인 바 있다.
하지만 대선에서도 '성공의 기억' 반복될지는 미지수다. 앞의 전략통은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는 우리가 잘해서라기보다는 민주당의 잇단 실수가 원동력이 됐다"며 "유권자들이 아직까지 새누리당의 '좌클릭'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계대출 문제 등이 폭발하는 급격한 경제위기 상황은 박 전 위원장에게는 부담이다. 정책은 사라지고 응급처치 논란과 책임론만 횡횅할 수 있어서다.
실제 외환위기 직후 치러진 1997년 대선에서는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과 대안 대신 '경제파탄 책임론', 'IMF 재협상론' 같은 표피적인 논란만 반복됐다.
◆민주당 경제민주화 논의 '상상력 빈약' = 새누리당에 반발씩 늦은 민주당은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를 '가짜'로 규정, 진짜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눠주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재벌개혁이 없는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허구"라고 공세를 펴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정밀한 비전은 없는 상태에서 표만 쫓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문제다. 노동시간과 휴식에 대한 고민없이 제시된 어버이날 공휴일 제안은 빈약한 상상력의 대표적인 사례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TV토론 제안에 민주당 의원 10명을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하는 것을 보고 대안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새누리당 모 의원의 이야기는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민주화를 쉽고 간결하게 보여주는 실천공약이 없다는 점은 여야 모두의 약점이다. 추상적 정책목표가 득표로 연결되려면 1971년 한반도평화-예비군 폐지, 2002년 균형발전-행정수도 이전처럼 유권자 마음을 파고드는 공약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공감정책'을 내놓을 지가 대선 승부를 바꾸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시장에 대한 정치의 개입에 대한 논쟁"이라며 "새로운 시장의 룰을 만들기 위한 정부 개입을 정치적으로 승인받는 것이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정책이슈"라고 설명했다.
허신열 기자 syhe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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