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언론인
최근에 발표된 2011년 지역사회 건강통계 자료 중에 눈길을 끈 대목이 있었다. 서울시의 구별 흡연율을 조사해 봤더니 강남북 간의 차이가 뚜렷했다는 것이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강북구가 흡연율 25.9%로 가장 높았고 종로구, 은평구, 중구, 성북구, 동대문구, 노원구 등 강북권 지역이 높게 나타났다. 반면 서초구가 17.8%로 가장 낮았고 양천구, 송파구 등 잘 사는 동네의 흡연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가구소득별 금연시도율에서도 양상은 비슷했다. 월 가구소득 100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의 경우 금연시도율이 37.7%였는 데 반해 301만~400만원의 고소득층은 40.0%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가난한 가정, 가난한 지역일수록 담배를 많이 피우며 건강을 위해 금연할 생각도 덜 한다는 것이다.
각종 질환을 낳고 사망률을 높이는 '공공의 적'으로 지탄받고 있는 흡연을 왜 가난한 이들은 포기하지 못 하거나 안 하는 걸까. 이것이야말로 경제적 가난이 '건강의 가난'을 부르고, 건강의 가난이 건강해야 얻을 수 있는 여러 기회의 제약과 박탈로 이어지며 결국 '삶의 질과 가능성의 가난'을 부르는 악순환의 한 예가 아닐까. 이를테면 가난이 또 다른 가난을 부르는 가난의 '나비효과'인 셈이다.
"가난이 심각한 문제인 것은 가난 그 자체보다는 가난이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적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난 때문에 자기만의 삶을 탐색하고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에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문제다."
철학자 장은주 교수는 '정의'의 관점에서 복지국가의 철학적 기초를 정립하려 한 자신의 저서 '정치의 이동'에서 가난이 가져오는 폐해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못사는 동네일수록 흡연율 높아
흔히 "가난은 죄가 아니며 다만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장은주 교수의 말처럼 우리 시대의 가난의 심각성은 경제적 가난이 불편을 넘어서서 점점 더 사회문화적 가난이 된다는 것이며, 삶의 모든 조건과 기회를 결정짓는 '전인적 굴레'가 돼 간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은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담배를 찾듯 매주 복권을 산다. 복권은 흔히 '가난한 자에게 물리는 세금'이라고 하듯 로또의 주 구매 집단은 부유한 이들이 많이 사는 지역보다는 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분포한다.
이들에게 로또는 일주일간의 흥분과 설렘을 넘어서서 절박하며 필사적인 면이 있다. 노회찬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구의 어느 로또 가게에 이런 구호가 붙어 있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 "로또 외엔 방법 없다".
이 말 속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가난과 부채의 수렁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 없는 우리 사회 빈곤층의 암담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로또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으려는 가난한 이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그 말 속에 배어 있다.
그러나 만약 로또 외엔 방법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 사회 빈곤층과 로또 당첨확률 사이에는 희망보다는 절망감이 들게 하는 함수 관계가 있다. 가처분중위소득(소득순으로 전 국민을 일렬로 세울 때 중앙에 있는 사람의 소득)의 50%를 빈곤의 기준선으로 설정할 경우, 우리 국민 중 800만 명이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반면 로또 1등 당첨확률은 800만 분의 1이라고 한다. 빈곤층 800만명이 모두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주 로또를 한 장씩 살 경우 그 중 한 명이 당첨돼 빈곤 탈출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녁' 이전에 '삶' 자체를 박탈당한 이들
로또 외에 다른 방법은 과연 없는가? 그 희망과 의지와 방법을 제시하느냐가 올해 대통령 선거의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야당의 한 후보의 메시지조차 우리나라 선거구호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은 '걸작'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면이 있다. 즉 '저녁' 이전에 '삶' 자체를 박탈당한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것이다.
저녁을 누리기 이전에 삶 자체가 부재한 이들, 삶의 질을 높이기 이전에 삶 자체를 먼저 찾아야 하는 이들은 이 구호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로또 외의 방법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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