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현/서울 용산구청장
마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보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모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고 상의한다. 단지 이야기만 했는데도 모모를 만나고 온 사람들은 누구나 만족을 얻고 돌아간다.
10대 소녀에 불과했던 모모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거나 인생의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 남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누가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든 주의 깊게 잘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그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경청이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걱정거리가 많을 때, 누군가 자기의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해도 큰 위안을 받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은 '구민과의 대화'의 날로
구청장에 취임하면서부터 매주 목요일을 '구민과의 대화'의 날로 정했다. 이 날만큼은 다른 일정은 잡지 않고 오로지 구청장실을 찾아오는 주민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햇수로 2년 가까이 진행하다보니 이제 목요일에 구청장을 찾아오는 주민들 수가 현격하게 줄었다. 그렇다고 해서 각 지역 현안들이 모두 해소가 되었거나 용산지역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민들을 만나겠다고 구청장실 문은 하루종일 열어놓았는데 찾는 손님도 없이 하루종일 비워놓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지난 5월부터 매주 목요일이면 구청과 집무실을 벗어나 직접 현장을 찾아가고 있다. '주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현장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결 방안을 고민해보고 싶었다. 현장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누다보면 말로만 설명하는 것보다 주민들 고민과 걱정을 더욱 실감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현장방문에서는 하루에 한개 동을 방문해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20곳 이상 방문하는 '빡센'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구청장이라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현장에 동행하는 수행직원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하루종일 일정이 이어지다보니 체력적으로는 지치고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는 매순간마다 다시 힘이 솟구쳤다. 정해진 일정이 아니라도 길을 지나던 길에 만난 주민들이 다가와 이런저런 하소연을 시작하면 그것은 예정에도 없던 또 다른 소통의 현장이 되었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만남의 현장이 큰 감동이었다.
처음에는 기세등등한 얼굴로 지역 현안 문제를 따지고 들던 사람들,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자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 모두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해주었다. 아니 때로는 해결 방법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는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하물며 구 행정에 대한 이야기를 주민들과 함께 나누는 것만큼 뜻깊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소통의 자리가 되풀이되면서 행정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싹트고 더욱 깊어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경청하고 법적으로 또는 행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서 답해주는 작은 진리 속에 모든 해답이 있었다. 찾아가는 소통이 만들어낸 가장 큰 성과였다.
'찾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
현재까지 총 9개 동에 대한 '동 현안 현장 소통'을 마쳤다. 지금은 여름 휴가기간이라 잠시 쉬고 있기는 하지만 이달 말부터 용문동을 시작으로 남은 7개 동을 찾아가는 일정이 다시 시작된다.
4년 반환점을 돈 지금, '동 현안 현장 소통'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주민들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만나고 싶다. 살아 움직이는 현장이 너무도 생생하고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매 순간 순간이 너무도 즐겁다. 나와 기꺼이 대화를 나누어주는 주민들이 있어 나는 참으로 행복한 구청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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