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8월 18일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 3주기였다. 김 대통령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다른 두 분이 생각난다. 장준하 선생과 김근태 선생이다. 이 세 분은 필자가 청소년기에 정치와 사회, 민족과 외세에 대해 조그맣게나마 눈을 뜬 후 지난 40여년 동안 '사람이 사는 길'을 보여준 우리 시대의 '빛'이었다. 이 분들이 어찌 필자에게만 빛이 되었으랴.
사실 이 분들이 통속적인 의미에서 유명 정치인들이었다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이 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분들은 한결같이 이 사회 약자들에 대한 사랑, 정치사상가 수준의 언행, 민족지도자로서의 풍모, 인류 보편의 가치구현의 삶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어둠의 세계에서 총칼에 의해 좌절과 굴종의 삶을 강요받고 있을 때 우리에게 환한 빛으로 오신 분들이었다.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유신독재 어둠의 시대에 순정(純正)으로써 담대하고 거리낌없이 그 잔인하고 음습한 폭력과 정면대결했던 분이다. 선생은 당시 실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어떻게 똑같이 이 땅에 태어나 어둠의 세력이 강요하는 불의에 맞서 저처럼 당당하고 거침없이 싸울 수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선생은 어둠의 시대에 우리에게 오신 순결의 밝은 빛 그 자체였고, 그 빛은 세월이 흐를수록 나의 마음 속에서 밝게 빛났다.
장준하 선생은 37년 전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당시 박정희 유신독재의 검찰은 검시와 현장검증을 5분 만에 종결하고 부검을 하지 않은 채 실족사로 종결처리했다. 최근 선생의 묘를 이장하면서 선생의 유골에 대한 검안이 이뤄졌고, 망치에 맞은 듯 둥글게 함몰된 두개골의 사진이 보도되면서 선생의 정확한 사인(死因)을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잔인한 폭력에 담대하게 대결했던 분
장준하 선생 사망 당시 시신을 검안했던 의사는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두개골 함몰골절상이지만 외상을 입기 쉬운 견갑부·주관절부·팔다리 관절부의 손상이 전혀 없고 넘어지거나 구른 흔적이 없다. 뒤통수의 골절 부위가 추락으로 인해 손상되기 어려운 부위라고 지적할 수 있다'는 소견을 냈다.
1993년 3월 민주당의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법의학자 문국진은 '중앙 부분이 오목한 형태의 인공적인 물체를 가지고 직각으로 충격을 가한 것'이라는 법의학적 소견을 냈다. 무엇으로 충격을 받았기에 함몰부위가 저렇게 둥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사회는 이번에 장준하 선생의 정확한 사인을 밝힘으로써,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 어둠의 세계에서 원통한 일을 당하셨으나 지금이라도 해원(解원)하여 당신이 오신 밝은 세상으로 보내드려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장준하 선생의 유족과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청와대에 선생의 의문사에 대해 재조사를 공식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법의학적 소견은 오랜 세월이 흘러 당시 사진 등 검시 자료들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유골만 보고 '법의학적'으로 만족할 만한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만일 그렇다면,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선생이 돌아가신 1개월 후, 선생의 동지들이 약사봉 계곡에 조그마한 돌판으로 만들어 누여놓은 추모비가 있다.
"여기 이 말없는 골짝은 빼앗긴 민주주의 쟁취, 고루 잘 사는 사회, 민족의 자주 평화 통일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장준하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 뜻을 같이하는 젊은이들이 맨손으로 돌을 파 비를 세우니 비록 말 못하는 돌뿌리 풀나무여! 먼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옳게 증언하라."
선생의 꿈은 오늘날 여전히 우리의 꿈
이 비문에 나타난 민주주의 쟁취, 공평한 복지사회 건설, 우리 민족의 자주 평화 통일 달성과 같은 장준하 선생의 필생의 꿈들은 놀랍게도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우리의 꿈이다.
장준하 선생의 원통한 죽음을 지켜본 약사봉의 '말 못하는 돌뿌리 풀나무'가 '맨손으로 돌을 파 비를 세운' 당시의 지사들의 염원을 통해 선생의 뜻을 우리 후손들에게 '옳게 증언'하고 있다. 역사는 이처럼 한치 그름없이 엄중한 것인가. 그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아, 장준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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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 3주기였다. 김 대통령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다른 두 분이 생각난다. 장준하 선생과 김근태 선생이다. 이 세 분은 필자가 청소년기에 정치와 사회, 민족과 외세에 대해 조그맣게나마 눈을 뜬 후 지난 40여년 동안 '사람이 사는 길'을 보여준 우리 시대의 '빛'이었다. 이 분들이 어찌 필자에게만 빛이 되었으랴.
사실 이 분들이 통속적인 의미에서 유명 정치인들이었다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이 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분들은 한결같이 이 사회 약자들에 대한 사랑, 정치사상가 수준의 언행, 민족지도자로서의 풍모, 인류 보편의 가치구현의 삶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어둠의 세계에서 총칼에 의해 좌절과 굴종의 삶을 강요받고 있을 때 우리에게 환한 빛으로 오신 분들이었다.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유신독재 어둠의 시대에 순정(純正)으로써 담대하고 거리낌없이 그 잔인하고 음습한 폭력과 정면대결했던 분이다. 선생은 당시 실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어떻게 똑같이 이 땅에 태어나 어둠의 세력이 강요하는 불의에 맞서 저처럼 당당하고 거침없이 싸울 수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선생은 어둠의 시대에 우리에게 오신 순결의 밝은 빛 그 자체였고, 그 빛은 세월이 흐를수록 나의 마음 속에서 밝게 빛났다.
장준하 선생은 37년 전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당시 박정희 유신독재의 검찰은 검시와 현장검증을 5분 만에 종결하고 부검을 하지 않은 채 실족사로 종결처리했다. 최근 선생의 묘를 이장하면서 선생의 유골에 대한 검안이 이뤄졌고, 망치에 맞은 듯 둥글게 함몰된 두개골의 사진이 보도되면서 선생의 정확한 사인(死因)을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잔인한 폭력에 담대하게 대결했던 분
장준하 선생 사망 당시 시신을 검안했던 의사는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두개골 함몰골절상이지만 외상을 입기 쉬운 견갑부·주관절부·팔다리 관절부의 손상이 전혀 없고 넘어지거나 구른 흔적이 없다. 뒤통수의 골절 부위가 추락으로 인해 손상되기 어려운 부위라고 지적할 수 있다'는 소견을 냈다.
1993년 3월 민주당의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법의학자 문국진은 '중앙 부분이 오목한 형태의 인공적인 물체를 가지고 직각으로 충격을 가한 것'이라는 법의학적 소견을 냈다. 무엇으로 충격을 받았기에 함몰부위가 저렇게 둥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사회는 이번에 장준하 선생의 정확한 사인을 밝힘으로써,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 어둠의 세계에서 원통한 일을 당하셨으나 지금이라도 해원(解원)하여 당신이 오신 밝은 세상으로 보내드려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장준하 선생의 유족과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청와대에 선생의 의문사에 대해 재조사를 공식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법의학적 소견은 오랜 세월이 흘러 당시 사진 등 검시 자료들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유골만 보고 '법의학적'으로 만족할 만한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만일 그렇다면,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선생이 돌아가신 1개월 후, 선생의 동지들이 약사봉 계곡에 조그마한 돌판으로 만들어 누여놓은 추모비가 있다.
"여기 이 말없는 골짝은 빼앗긴 민주주의 쟁취, 고루 잘 사는 사회, 민족의 자주 평화 통일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장준하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 뜻을 같이하는 젊은이들이 맨손으로 돌을 파 비를 세우니 비록 말 못하는 돌뿌리 풀나무여! 먼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옳게 증언하라."
선생의 꿈은 오늘날 여전히 우리의 꿈
이 비문에 나타난 민주주의 쟁취, 공평한 복지사회 건설, 우리 민족의 자주 평화 통일 달성과 같은 장준하 선생의 필생의 꿈들은 놀랍게도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우리의 꿈이다.
장준하 선생의 원통한 죽음을 지켜본 약사봉의 '말 못하는 돌뿌리 풀나무'가 '맨손으로 돌을 파 비를 세운' 당시의 지사들의 염원을 통해 선생의 뜻을 우리 후손들에게 '옳게 증언'하고 있다. 역사는 이처럼 한치 그름없이 엄중한 것인가. 그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아, 장준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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