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배·운반·수확비 많이 들어 비쌀 수밖에
"재배현실 이해해야 … 계약재배 큰 도움"
"이거 보세요."
박병승 대관령 원예농협 조합장이 배추 한 포기를 쩍 가르더니 들어보였다. 배추 속은 시원한 맛을 자랑했지만 밑둥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뿌리를 잘라낸 자리엔 처음부터 뿌리가 없었던 것처럼 움푹 패였고 썩은 진물이 번졌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4일 강원도 강릉시의 고랭지배추 재배단지인 '안반덕' 중턱에서 한 농부는 묵직한 칼로 배추를 수확하는 대신 난도질을 해댔다. 그는 "고온에 폭우까지 겹치면서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들어가는 '속썩음병'이 확산되고 있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안반덕은 떡치는 안반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릉 사투리로는 '안반데기로'라고도 부른다.
해발 1000~1200미터에 25가구가 살고 있다. 70년대 화전민들이 황무지를 일궈 만들었다. 183헥타아르의 고랭지배추를 재배하고 있다. 포전매매로 75%, 농협계약재배로 25%를 출하한다. 우리나라 여름배추의 2.5%가 여기서 나온다. 지난달 20일부터 본격적인 출하를 시작해 이달 말이면 1년농사가 마무리된다. 10월만 돼도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농작물을 재배하기 어렵다. 해발 500미터 이내에서만 가능한 2모작은 생각할 수도 없다.

<4일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고랭지배추="" 재배지="" 암반덕에서="" 배추수확이="" 이뤄지고="" 있다.="" 고랭지="" 배추는="" 폭염과="" 폭우로="" 병이="" 번져=""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 박준규="" 기자="">
◆"고랭지 배추는 달라요" = 박광현 강릉농협 조합장은 "여름배추가 너무 비싸다고 하면 서운하다"면서 "옛날에는 여름배추가 없었지만 고랭지와 품종을 개발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름배추가 비싼 것은 당연하다"면서 조목조목 따졌다. 배추 3포기가 들어가는 1망에 도매가격은 품질이 좋은 '상품'을 기준으로 8000~9000원이다.
작업비가 만만치 않았다. 가파른 재배지에서 수확하려면 포크레인을 동원해야 한다. 한 대에 하루 60만원은 줘야 한다. 경운기는 올라다닐 수가 없어 안 쓸 수 없는 비용이다. 비가 온 뒤엔 포크레인이 2대나 필요하다. 서로 끌어당겨줘야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다.
고지대까지 대형트럭을 불러오는 것뿐만 아니라 배추를 싣고 서울로 이동하는 것, 하역장을 이용하고 내리는 것 모두 비용이며 한번 할때마다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220만원정도가 든다. 재배기간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제 밭이 아니라면 땅을 빌린 값도 지불해야 한다. 사실상 별로 남지 않는다고 했다.
박 조합장은 "3년에 한번씩 재미가 좋으면 두 번정도는 별 재미를 못보고 지낸다"고 말했다. 강릉시 관계자에게 슬쩍 물어봤다. 현재와 같이 한망이 8000원선이면 남는 게 없는지. 그는 "고랭지배추는 생산비용이 다른 김장배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든다"면서 "인건비도 그렇고 운송, 재배비용도 그렇고 사실 요즘같은 가격이 좀 비싸다고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면 농부에겐 이익이 많이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1년에 한번 짓는 농사인데 태풍이나 고온, 폭우 등 날씨에 따라 작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예측가능한 소비나 영농 계획을 할 수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속도 덜 차고 뿌리마저 썩어 = "안반덕의 생산량은 아마 예년보다 20~30% 줄어들 것이다." 김규현 강릉농협 대리는 속이 덜 차 있고 뿌리마저 썩어 들어간 배추를 보며 이같이 말했다.
이렇게 부실한 배추가 많아지면 한망에 평균 5000원선이 떨어지게 된다. 상품은 40%, 중품과 하품이 각각 40%, 20% 정도의 비율로 나오게 마련이다.
하품은 망에 담지만 사실 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까운 맘에서 나온 "왜 모두 버리느냐, 밑을 자리고 나머지는 팔거나 가공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말에도 시큰둥하며 "여기까지 올라와서 이런 걸 작업하는 게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푸념이 돌아왔다.
농협의 계약재배와 정부의 인력지원사업은 어깨의 짐을 조금 가볍게 해 줬다. 농협에서는 3.3㎡(1평)당 1만2000원에 계약재배를 하고 있다. 3년 평균치 시장가격 등을 고려한 것이다. 7~8포기가 나오지만 질이 나쁜 배추도 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적지 않은 가격이라고 했다. 씨를 뿌리고 50%정도 성장할 때까지만 재배하면 이후 관리하고 수확, 운송, 판매비용은 모두 농협이 도맡아해 준다.
이곳 인력은 주로 강릉시에서 온다. 동네 사람 중엔 젊은이가 적을 뿐만 아니라 거주자 자체가 적다. 정부가 공공근로 인력을 대거 농촌 돕기에 배치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얘기다.
◆농가와 소비자의 상생은 = 농촌은 적정비용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정부는 서민들의 밥상 물가를 고려해 가격상승률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한다. 보통 3~5년 평균수준에서 크게 오르지 않게 잡는 게 일반적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길 요구한 강릉시 관계자는 "비싼 핸드백을 사들고 다니면서도 배춧값이 3000원에서 7000원으로 뛰면 큰 일이 난 것처럼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이라며 "그러나 농촌의 현실과 농민들의 고민을 같이 생각하고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고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농협조합 관계자는 "중간 유통과정에서 많은 이익을 챙긴다고 하는데 그런 것 없다"면서 "수확비, 수송비, 하역비가 유통과정의 전부"라고 강조했다. 생산비와, 세부 유통비가 더해진 도매가격, 유통경로와 소매가격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거나 소비자와 생산자간 신뢰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게 됐다.
한편 박창수 농정국장은 돌아가는 길에 작은 목소리로 "안반덕은 생산량이 좀 줄었지만 다른 곳이 괜찮아서 가격이 더 오르진 않을 것"이라면서 "또 양배추 등이 풍작이라 대체작물도 많이 있다"고 귀띔했다.
강릉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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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현실 이해해야 … 계약재배 큰 도움"
"이거 보세요."
박병승 대관령 원예농협 조합장이 배추 한 포기를 쩍 가르더니 들어보였다. 배추 속은 시원한 맛을 자랑했지만 밑둥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뿌리를 잘라낸 자리엔 처음부터 뿌리가 없었던 것처럼 움푹 패였고 썩은 진물이 번졌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4일 강원도 강릉시의 고랭지배추 재배단지인 '안반덕' 중턱에서 한 농부는 묵직한 칼로 배추를 수확하는 대신 난도질을 해댔다. 그는 "고온에 폭우까지 겹치면서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들어가는 '속썩음병'이 확산되고 있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안반덕은 떡치는 안반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릉 사투리로는 '안반데기로'라고도 부른다.
해발 1000~1200미터에 25가구가 살고 있다. 70년대 화전민들이 황무지를 일궈 만들었다. 183헥타아르의 고랭지배추를 재배하고 있다. 포전매매로 75%, 농협계약재배로 25%를 출하한다. 우리나라 여름배추의 2.5%가 여기서 나온다. 지난달 20일부터 본격적인 출하를 시작해 이달 말이면 1년농사가 마무리된다. 10월만 돼도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농작물을 재배하기 어렵다. 해발 500미터 이내에서만 가능한 2모작은 생각할 수도 없다.

<4일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고랭지배추="" 재배지="" 암반덕에서="" 배추수확이="" 이뤄지고="" 있다.="" 고랭지="" 배추는="" 폭염과="" 폭우로="" 병이="" 번져=""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 박준규="" 기자="">
◆"고랭지 배추는 달라요" = 박광현 강릉농협 조합장은 "여름배추가 너무 비싸다고 하면 서운하다"면서 "옛날에는 여름배추가 없었지만 고랭지와 품종을 개발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름배추가 비싼 것은 당연하다"면서 조목조목 따졌다. 배추 3포기가 들어가는 1망에 도매가격은 품질이 좋은 '상품'을 기준으로 8000~9000원이다.
작업비가 만만치 않았다. 가파른 재배지에서 수확하려면 포크레인을 동원해야 한다. 한 대에 하루 60만원은 줘야 한다. 경운기는 올라다닐 수가 없어 안 쓸 수 없는 비용이다. 비가 온 뒤엔 포크레인이 2대나 필요하다. 서로 끌어당겨줘야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다.
고지대까지 대형트럭을 불러오는 것뿐만 아니라 배추를 싣고 서울로 이동하는 것, 하역장을 이용하고 내리는 것 모두 비용이며 한번 할때마다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220만원정도가 든다. 재배기간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제 밭이 아니라면 땅을 빌린 값도 지불해야 한다. 사실상 별로 남지 않는다고 했다.
박 조합장은 "3년에 한번씩 재미가 좋으면 두 번정도는 별 재미를 못보고 지낸다"고 말했다. 강릉시 관계자에게 슬쩍 물어봤다. 현재와 같이 한망이 8000원선이면 남는 게 없는지. 그는 "고랭지배추는 생산비용이 다른 김장배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든다"면서 "인건비도 그렇고 운송, 재배비용도 그렇고 사실 요즘같은 가격이 좀 비싸다고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면 농부에겐 이익이 많이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1년에 한번 짓는 농사인데 태풍이나 고온, 폭우 등 날씨에 따라 작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예측가능한 소비나 영농 계획을 할 수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속도 덜 차고 뿌리마저 썩어 = "안반덕의 생산량은 아마 예년보다 20~30% 줄어들 것이다." 김규현 강릉농협 대리는 속이 덜 차 있고 뿌리마저 썩어 들어간 배추를 보며 이같이 말했다.
이렇게 부실한 배추가 많아지면 한망에 평균 5000원선이 떨어지게 된다. 상품은 40%, 중품과 하품이 각각 40%, 20% 정도의 비율로 나오게 마련이다.
하품은 망에 담지만 사실 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까운 맘에서 나온 "왜 모두 버리느냐, 밑을 자리고 나머지는 팔거나 가공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말에도 시큰둥하며 "여기까지 올라와서 이런 걸 작업하는 게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푸념이 돌아왔다.
농협의 계약재배와 정부의 인력지원사업은 어깨의 짐을 조금 가볍게 해 줬다. 농협에서는 3.3㎡(1평)당 1만2000원에 계약재배를 하고 있다. 3년 평균치 시장가격 등을 고려한 것이다. 7~8포기가 나오지만 질이 나쁜 배추도 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적지 않은 가격이라고 했다. 씨를 뿌리고 50%정도 성장할 때까지만 재배하면 이후 관리하고 수확, 운송, 판매비용은 모두 농협이 도맡아해 준다.
이곳 인력은 주로 강릉시에서 온다. 동네 사람 중엔 젊은이가 적을 뿐만 아니라 거주자 자체가 적다. 정부가 공공근로 인력을 대거 농촌 돕기에 배치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얘기다.
◆농가와 소비자의 상생은 = 농촌은 적정비용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정부는 서민들의 밥상 물가를 고려해 가격상승률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한다. 보통 3~5년 평균수준에서 크게 오르지 않게 잡는 게 일반적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길 요구한 강릉시 관계자는 "비싼 핸드백을 사들고 다니면서도 배춧값이 3000원에서 7000원으로 뛰면 큰 일이 난 것처럼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이라며 "그러나 농촌의 현실과 농민들의 고민을 같이 생각하고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고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농협조합 관계자는 "중간 유통과정에서 많은 이익을 챙긴다고 하는데 그런 것 없다"면서 "수확비, 수송비, 하역비가 유통과정의 전부"라고 강조했다. 생산비와, 세부 유통비가 더해진 도매가격, 유통경로와 소매가격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거나 소비자와 생산자간 신뢰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게 됐다.
한편 박창수 농정국장은 돌아가는 길에 작은 목소리로 "안반덕은 생산량이 좀 줄었지만 다른 곳이 괜찮아서 가격이 더 오르진 않을 것"이라면서 "또 양배추 등이 풍작이라 대체작물도 많이 있다"고 귀띔했다.
강릉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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