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동 논설고문
한동안 잠잠하던 휴화산 유로존 재정위기가 다시 폭발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유럽연합(EU)정상회담 이후 가라앉는 듯하던 유로존 위기가 이번주 들어 다시 점화되어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세계 증시가 일제히 폭락했다. 한국 증시도 유로존 위기재발 충격으로 무기력증에서 허덕인다.
이번 위기재발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지방정부의 줄도산 가능성이 제기된 데서 비롯됐다. 스페인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이 최종 승인되면서 잠시 위기가 가라앉는 듯했으나 지방정부마저 구제금융을 요청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산된 것이다. 스페인의 17개 지방정부가 파산 직전의 재정위기에 몰려 조만간 중앙정부에 긴급 재정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전해졌다.
스페인 지방정부 채무는 지난 3월 말 1820억유로에 이른다. 지역총생산(GRDP)대비 17% 수준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7개 지방정부 중 발렌시아와 무르시아를 포함한 6~8개가 도산위기에 처해 구제금융을 요청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탈리아 지방정부의 재정악화도 비슷한 수준이다. 나폴리를 포함하여 10개 주요도시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디폴트 직전 상황이라고 한다.
무리한 개발사업과 방만한 재정지출로 디폴트 위기
강도 높은 긴축정책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17개국의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에 다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과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살아 있는 등 유럽의 재정위기는 여전히 수습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지방정부의 줄도산 우려마저 터져 위기 확산 불안감이 가중됐다. 여기에 무디스가 유럽에서도 가장 건실하고 위기타개의 중심축으로 꼽히는 독일과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신용등급 전망을 깎아 내림으로써 불씨를 보탰다. 위기 전이의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대목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지방정부의 디폴트 위기는 무리한 개발사업과 방만한 재정지출 때문이다. 이 두 나라는 일찍이 지방분권 체제를 도입했다. 재정집행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는 느슨하다. 유로화가 도입된 이후 버블이 심화되었고 재정집행도 허술했다. 선거를 치를수록 선심경쟁도 심해져 방만한 재정운영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불필요한 도로와 철도건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고 무상복지 무상교육으로 지출이 폭증했다. 과학공원을 지었으나 적자투성이고 공항을 건설했으나 이용객이 없는 곳도 있다. 반면에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재정수입은 크게 줄었다. 곳간이 거덜이 나서 디폴트에 직면하자 중앙정부에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디폴트 가능성이 높은 이들 나라가 갔던 길을 비슷하게 걷는 중이다. 국가부채가 900조원에 육박하고 가계부채도 900조원을 넘어섰다. 중앙정부와 가계 빚이 급증하고 있는 터에 지방정부의 빚마저 급증하고 있다. 지자체 빚은 2008년 19조원에서 2010년 29조원으로 50% 넘게 폭증했다.
이처럼 지자체 빚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까닭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무분별한 사업에 따른 지출확대와 방만한 재정운용 탓이다. 역시 선거를 치를수록 선심경쟁과 전시성 사업이 늘어나 재정악화를 부채질했다. 시 청사를 초호화판으로 경쟁적으로 짓고, 감당하지도 못할 국제대회를 무리하게 유치하고, 경제성을 따지지도 않고 도로와 경전철을 건설하고, 손님이 없는 공항을 짓고, 공장이 없는 공단을 건설하다 보니 재정난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부자감세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세수는 줄어들었다.
D(디플레이션)와 R(장기복합불황) 공포 잠재울 비상구 마련해야
재정자립도는 매년 추락하고 있다. 중앙정부에 손을 내밀지 않으면 벌여놓은 사업을 지속할 수 없고 직원봉급도 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지자체가 수두룩하다. 일부 지자체는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거나 디폴트 직전에 놓인 곳도 즐비하다. 지방정부의 빚은 중앙정부에 전가되고 끝내는 국민 혈세로 매꿔야 한다. 결국 국민부채인 것이다.
그리스 총리는 "그리스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과 흡사한 상황에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경제도 사면초가다. 오래 전부터 제기된 R(장기복합불황)공포, D(디플레이션)공포에 대한 경고음이 높아져 가고 있다.
유로존 위기의 충격 등 내우외환에 대한 면밀한 대응책이 절실하다. MB정부의 마지막 과제는 D와 R의 공포를 잠재울 비상구를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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