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언론인
유난히 심했던 무더위가 드디어 지나가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더위에 고생했겠지만 이번 여름에 무더위 이상으로 속이 끓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 중 하나는 분명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 상인들일 것이다. 현지 경찰이 뜬금없이 내놓은 경포대 해변 금주 방침 때문에 이번 피서철 장사를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경포대의 온갖 탈선행위의 원인이 술을 파는 데 있다고 본 관할 경찰서장이 경포대 피서문화를 건전하게 만들겠다며 경포대 주변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법적인 근거도 없었고, 상인들의 반발에 과음자제 방침일 뿐이라고 물러섰지만 이미 경포대에선 술을 마실 수 없는 것처럼 알려진 뒤였다. 사실상 이건 적잖은 사람들에겐 경포대엔 오지 말라고 금지령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이 보도를 보면서 왜 이 서장을 음주 범죄가 많은 서울 강남구의 경찰서장으로 영입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왜 그로 하여금 강남구에 금주령을 선포해 범죄를 깨끗이 예방하지 않는 건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술을 팔지만 않으면 사건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 아니 그렇더라도 그것이 과연 주민의 생계보다 우선할 수 있다고 보는 이 같은 단순한 발상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마치 한편의 소극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코믹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그건 이 서장이 무사안일이 아닌 매우 열심히 '공무'에 임하는 공직자라는 것이었다.
어느 신문에 실린 그의 인터뷰에서 전해지는 확신에 찬 말투로 보건대 그는 확고한 소신을 가졌으며, 또한 그 소신을 매우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인 듯했다.
공공성·합리성 갖춰야 진정한 공무
문제는 직위에 맞게 경찰 업무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아는지, 어떤 사안을 한 가지 측면이 아닌 다면적이며 전체적인 시야에서 볼 수 있는 합리적인 판단력이 있는가였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지도자를 현명함과 근면을 기준으로 4가지로 나누고 그 중 최악이 '현명하지 못하면서 부지런한 경우'라고 했다. 근면과 성실이 항상 미덕인 건 아니다.
'경포대의 촌극'과 비슷한 시기에 경찰이 공무집행 방해에 대해 발표한 게 하나 눈길을 끌었다. 공무집행 방해에 대해 엄히 대처하기로 하고 '경찰관 법률·피해 지원팀'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공무'의 권위에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추상같은 의지가 읽혔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지 사례에서 우리 사회에서의 '공무(公務)'의 남용과 왜곡을 보았다.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히 남용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 중의 하나가 '공무'라는 말이 아닐까 한다. 과연 공공기관의 일, 공무원의 일은 모두 '공무'인가. 결코 아니다.
모든 공무원의 모든 업무는 공무로서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다. 공공기관의 업무는 공공성과 합리성을 갖출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공무가 된다. 칸트는 법과 정치는 공공성과 합치돼야만 그 정당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공무집행 행위가 공공성과 합리성에 부합하지 않다면 그건 공무로서의 조건을 상실한 것이다.
이명박정권의 실정과 악정 - 과연 그걸 정치라고 할 수 있다면 - 의 가장 큰 문제는 공공성의 부재라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4년간의 숱한 사례뿐만 아니라 최근의 독도 문제와 같은 외교 사안조차 서푼어치라도 정략적 이익이 된다 싶으면 체면이고 염치고 가리지 않는 행태는 '공무 사무화(私務化)'의 극단적 행태다.
이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공공성 부재'
이건 고의적인 '공공성의 파괴'랄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 이렇게 공공성을 짓밟고 고의로 무시하는 동안 아래에서는 경포대 사건과 같은 '무지하며 함량미달의 공무'에 의한 피해가 벌어지고 있다.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어울리면서 우리 사회의 공공성과 공무의 총체적인 부실을 보여주고 있다. 위로부터 아래까지 이들이 부지런히 공무를 수행하는 동안 민생은 재난을 당하고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공무집행방해죄'의 엄격한 적용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필요한 건 '공무집행에 의한 민생방해죄'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공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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