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 아버지 넘어 객관적 역사인식 가져야"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20대 시절 정치부기자로 맹렬히 뛰다가 5·16을 일으킨 박정희 의장의 '혁명정신'에 공감해 박 의장 편에 동참했다. 이후 공화당 개혁파로 활약하던 이 전 의장은 박 대통령의 면전에서 3선개헌을 반대하면서 정치적 고난을 겪기 시작했고 유신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일"(이만섭 저 '5·16과 10·26'중)이라며 저항했다. 11일 오전 전화인터뷰에 응한 이 전 의장은 5·16과 유신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명쾌히 정리했다.
■5·16 직후 5·16세력에 동참했는데.
5·16이 일어나기 전 동아일보 정치부기자였다. 자유당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기를 누구보다 갈망했고 갖은 탄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렵사리 등장한 민주당 정부는 많은 지식인과 언론인을 실망시켰다. 민주당 신구파는 눈만뜨면 싸움을 했고, 학생들은 매일같이 데모에 나섰다. 경찰조차 국회 앞에서 연좌데모를 했고, 국회 본회의장은 점거상태였다. 한마디로 나라가 무정부상태였다. 5·16은 불가피했다.
■박 후보는 5·16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표현했는데.
박 후보 말에서 '최선'이란 단어를 빼는 게 좋다. 최선은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요즘 젊은 학자들과 언론인은 이론의 잣대만 가지고 5·16을 비판하는데 그건 현실을 잘 모르는 얘기다. 정치적 이론만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5·16은 당시 상황상 불가피했다.
■박 후보는 유신에 대해서도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입장이다.
(5·16과 달리) 유신은 누가 뭐래도 잘못된 것이다.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영구집권하려는 의도였을 뿐이다. (박 대통령이) 무리하게 유신하면서 인권탄압을 하게됐고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결국 10·26이란 비극이 일어났다.
■당시 남북관계나 경제상황을 고려해 박 대통령이 계속 집권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인데.
말도 안된다. (3선개헌 당시) 내가 박 대통령을 만나 건의했다. 박 대통령께서 기초를 닦았으니 이젠 뒤에서 지도편달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정권을 넘기라고 했다.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댔다. (이만섭 저 '5·16과 10·26'을 보면 이효상·백남억을 천거) 박 대통령이 유신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정권을 넘겼으면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더욱 앞당겨졌을 것이다. 일본 자민당이 55년 집권했듯이 공화당도 최소 30년이상 집권했을 것이고 12·12 같은 불행한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공과가 나뉜다는 말씀인데.
나는 박 대통령의 공은 승계하되 과는 단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자립 뿐 아니라 조국의 근대화를 이뤄냈다.
특히 민족의 가능성을 개발했다. '하면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물론 과는 3선개헌과 유신을 통해 장기집권을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했다면 5·16은 구국혁명이 됐을 것이고,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해 하실 말씀은.
5·16은 불가피했으나 유신은 잘못된 것이다. 아버지의 역사적 공적을 계승하려는 효심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대통령 후보인 박 전 대표는 이제는 아버지를 뛰어넘어 객관적 역사인식을 가져야한다. 아버지를 생각해서 '유신이 잘못됐다'고 정면으로 얘기하지 못하더라도 "유신 또는 장기집권으로 인해 고통받은 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해야 한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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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20대 시절 정치부기자로 맹렬히 뛰다가 5·16을 일으킨 박정희 의장의 '혁명정신'에 공감해 박 의장 편에 동참했다. 이후 공화당 개혁파로 활약하던 이 전 의장은 박 대통령의 면전에서 3선개헌을 반대하면서 정치적 고난을 겪기 시작했고 유신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일"(이만섭 저 '5·16과 10·26'중)이라며 저항했다. 11일 오전 전화인터뷰에 응한 이 전 의장은 5·16과 유신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명쾌히 정리했다.

5·16이 일어나기 전 동아일보 정치부기자였다. 자유당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기를 누구보다 갈망했고 갖은 탄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렵사리 등장한 민주당 정부는 많은 지식인과 언론인을 실망시켰다. 민주당 신구파는 눈만뜨면 싸움을 했고, 학생들은 매일같이 데모에 나섰다. 경찰조차 국회 앞에서 연좌데모를 했고, 국회 본회의장은 점거상태였다. 한마디로 나라가 무정부상태였다. 5·16은 불가피했다.
■박 후보는 5·16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표현했는데.
박 후보 말에서 '최선'이란 단어를 빼는 게 좋다. 최선은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요즘 젊은 학자들과 언론인은 이론의 잣대만 가지고 5·16을 비판하는데 그건 현실을 잘 모르는 얘기다. 정치적 이론만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5·16은 당시 상황상 불가피했다.
■박 후보는 유신에 대해서도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입장이다.
(5·16과 달리) 유신은 누가 뭐래도 잘못된 것이다.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영구집권하려는 의도였을 뿐이다. (박 대통령이) 무리하게 유신하면서 인권탄압을 하게됐고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결국 10·26이란 비극이 일어났다.
■당시 남북관계나 경제상황을 고려해 박 대통령이 계속 집권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인데.
말도 안된다. (3선개헌 당시) 내가 박 대통령을 만나 건의했다. 박 대통령께서 기초를 닦았으니 이젠 뒤에서 지도편달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정권을 넘기라고 했다.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댔다. (이만섭 저 '5·16과 10·26'을 보면 이효상·백남억을 천거) 박 대통령이 유신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정권을 넘겼으면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더욱 앞당겨졌을 것이다. 일본 자민당이 55년 집권했듯이 공화당도 최소 30년이상 집권했을 것이고 12·12 같은 불행한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공과가 나뉜다는 말씀인데.
나는 박 대통령의 공은 승계하되 과는 단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자립 뿐 아니라 조국의 근대화를 이뤄냈다.
특히 민족의 가능성을 개발했다. '하면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물론 과는 3선개헌과 유신을 통해 장기집권을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했다면 5·16은 구국혁명이 됐을 것이고,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해 하실 말씀은.
5·16은 불가피했으나 유신은 잘못된 것이다. 아버지의 역사적 공적을 계승하려는 효심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대통령 후보인 박 전 대표는 이제는 아버지를 뛰어넘어 객관적 역사인식을 가져야한다. 아버지를 생각해서 '유신이 잘못됐다'고 정면으로 얘기하지 못하더라도 "유신 또는 장기집권으로 인해 고통받은 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해야 한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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