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화풀이 본능’] 화풀이, 생리학적으로 타당한 행동

지역내일 2012-09-14

안종주/환경·보건 칼럼니스트

명랑한지성/데이비드 바래시,주디스 이브 립턴 지음/고빛샘 엮음/1만8000원

이 책은 보복, 복수, 화풀이, 용서에 대한 고민과 의문에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운전 중 가장 자주 분노를 폭발시킨다. 경적을 울리거나 너무 천천히 혹은 너무 빨리 가거나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운전자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고함을 지른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바짝 뒤쫓으며 위협을 가하거나 아예 갑자기 그 차량 앞에 끼어들어 상대방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차량 운전자들의 분노 폭발은 가장 전형적이고 상징적인 화풀이의 사례로 꼽힌다. 운전 중 분노를 폭발시키는 행위에는 대개 직접적인 원인이 있지만 문제는 운전자들이 원인에 비해 과도한 반응을 보인다는 데 있다.

다른 차량의 분노 유발 행위가 그 자체로는 사소할지라도 여러 겹 쌓여 있던 이전의 상처, 즉 운전 불만 때문에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울화가 치미는 일은 이제 현대인들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 됐다. 취직이 되지 않고, 학교 성적이 오르지 않고, 돈 없고, 결혼할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은 화가 나게 마련이다. 상사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무안을 주면 욕이라도 하고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고통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고통 받은 사람치고 화를 내지 않는 사람도 없다. 고통은 인간에게든, 동물에서든, 국가에서든 늘 존재한다. 고통을 당한 사람이나 동물, 국가는 앙갚음을 한다. 그것은 보복이 될 수도 있고, 복수나 화풀이가 될 수도 있다. 고통 떠넘기기 또는 고통 전가는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에 다시 고통을 준다.

우리 사회에서도 고통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학생이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른 동료 학생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칼부림을 하는 일도 있다.

회사에서 해고된 직장인이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옛 동료는 물론이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일도 벌어졌다. 또 생활고와 사회적 열등감에 시달리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느 날 사소한 일에 격분해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마구 칼을 휘두르는 '묻지마' 범죄는 많은 사람들을 불안케 만든다. 고통과 상처에 대한 반응으로 무고한 구경꾼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행위는 불합리할 뿐 아니라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를 공공연하게 용납하는 사회는 아마 하나도 없겠지만 이런 화풀이는 보편적이라고 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게 사실이다. 인간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동물의 왕국'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침팬지나 원숭이 등 동물들도 자신보다 힘센 동료에게 당하고 난 뒤 새끼나 어린놈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화풀이 본능'은 누구나가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을 법한 보복, 복수, 화풀이, 그리고 용서에 대한 고민과 의문에 답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바래시와 정신과 의사 주디스 랩턴이 함께 쓴 이 책은 자동차 사고로 딸을 잃은 뒤 이 문제에 삼십년 가까이 매달려온 이들 부부의 결과물이다. 진화론,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정신의학, 문학, 신학, 경제학을 넘나들며 고통 전가 문제에 대해 해박하고 깊이 있는 분석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다.

앞에 말한 여러 학문 분야 때문에 읽기를 주저하거나 주눅이 들 필요는 없다. 저자들이 쉬운 문장으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국가나 모두 다른 이로부터 공격이나 고통을 당하고 난 뒤 그냥 있으면 다른 이의 공격을 또 당하기 쉽기 때문에 보복이나 복수, 화풀이를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터득한 것이며 생리학적으로도 타당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통이나 화를 삭이며 지내는 동물이나 인간은 스트레스가 쌓여 건강을 해치고 다른 동료들로부터 '호구'로 인식돼 제2의 공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동료나 자기보다 힘없는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면 지켜보는 동료들이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가 잔뜩 난 사람들이 화풀이 할 대상을 찾지 못했다면 집안의 강아지나 책상, 주차된 차에게 발길질을 하거나 손으로 내려치는 고통 전가를 한다.

화를 발산하지 못한 한국 여성들이 나이 들어 화병에 걸린 일들은 익히 알고 있는 정신의학적 사실이다.

저자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서도 화풀이가 존재하며 개코원숭이와 같은 영장류는 물론 쥐, 독수리, 무지개송어 등 다양한 동물에서 나타난다고 밝히면서 그 연구내용을 소개했다. 이 책은 또 9.11테러와 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침공, 아프리카 수단과 케냐, 르완다 등에서 벌어진 부족 간 학살 등도 고통 떠넘기기 차원에서 그 내면을 파헤쳤다.

화풀이 행동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아마존의 원시부족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월스트리트 금융가, 빈민가의 폭력배도 예외는 아니다. 그 흔적은 신석기 시대 부족 간 갈등, 중세 시대의 야외극, 현대의 전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화풀이는 20세기에 벌어진 대량 학살전쟁을 유발했으며 또한 숱한 문학작품, 심리이론, 종교를 낳기도 했다. 화풀이 성향은 문화, 시간, 공간, 종을 뛰어넘고 모든 경계를 가로질러 존재한다고 책은 강조한다.

복수는 모든 인간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며 고통 전가가 인간의 본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앙갚음과 복수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2차세계대전 때의 독일이다.

독일 국민들은 1차세계대전에서의 패배와 베르사이유조약으로 인한 국가적 굴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독일인들은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을 외부 세계로 분출할 기회만을 노리며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데 이때 히틀러가 등장해 그들의 고통과 분노를 교묘하게 조종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히틀러뿐만 아니라 밀로셰비치, 조지 부시 등도 국가 차원에서 고통 전가를 한 정치인들이다.

저자들은 이밖에 그리스 비극 작품,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자' 등의 문학에서 나타난 고통 전가가 빚어낸 인간의 심리와 비극을 날카롭고 재미있게 파헤쳤다. 특히 세계 문학사상 가장 인상적인 복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꼽고 에이해브 선장이 고래에게 다리를 잃은 뒤 좌절과 실망 속에서 집요하게 흰 고래를 뒤쫓지만 결국에는 동료 선원들과 자신마저 파멸되는, 편집적인 고통 전가가 가져다주는 비극적 결말을 이야기한다. 독자들에게 세계 명작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음미해볼 수 있는 덤을 이 책은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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