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베를린에 구 공산당 집권했나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경제학
2002년 1월 18일 통일 독일 수도 베를린시에서 사민당·민주사회당(PDS 구 공산당) 연립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신연립주정부를 축하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 물론 PDS 당원들과 지지한 유권자들은 내심으로 자축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독일이 통일된 지 11년이 지난 오늘 구동독을 독재적으로 통치했던 구 공산당이 다시금 합법적으로 비록 좌파연정이긴 하지만 수도 베를린에서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물론 구동독의 북쪽 두 주정부는 PDS가 연립정권을 형성했거나 또는 소수 사민당 정부를 관용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공산세력이 이렇게 강세를 보인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 PDS가 동독지방에서 구 공산당의 이념과 정책을 그냥 그대로 승계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정당 속에는 아직도 과격한 공산당 요소(파)가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바겐크냇흐트(Wagenknecht) 여사를 앞세우는 과격파가 그러하다. 그러나 과격파는 공산당에서 소수파를 이루고 있다. 연방 정당 당수 짐머(Zimmer) 여사, 베를린 PDS 지부장 파우(pau) 여사는 중도파라고 볼 수 있으며 기지(Gysi) 전 당수를 축으로 한 보수주의적으로 변신한 다수파가 베를린 연립정부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PDS 속에서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파로 가고 있는 베를린 사민당이 PDS와 연립정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한다면 현재 독일 공산당은 그간 많은 변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지도층, 구 공산당 강화에 반성하라 경고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아무리 왕년의 공산당이 변신을 했다고 해도 과거 동독에서 분단과 인권박해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PDS는 사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계약의 서문에 ‘구동독 공산당 정부’가 저지른 여러가지 행적(베를린 장벽, 정치 망명자 사살, 인권운동자 투옥 등)에 대해서 통감스럽게 책임을 진다고 했다. 과연 현재 PDS는 옛날의 공산당과 다를까?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 슈미트 전 수상은 구 동독에서 공산당 존재는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왜 구 공산당인 PDS가 다시 강화되고 있는가 하는 데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베를린 주의회 선거 때 PDS는 동 베를린에서 거의 절반의 유권자 표를 획득했다. 그리고 이미 동 베를린에는 구 공산당 출신의 구청장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PDS가 발전한 가장 큰 이유는 동독인의 이익과 아이덴티티를 대변하는 동독에 뿌리를 둔 정당이 구 공산당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동독인은 그들의 정치적 고향이 구 공산당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정당과 이익단체들은 거의 전부가 ‘서독 정당·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통일이 서독정치, 자본, 조직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구 동독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마음의 돌파구가 바로 구 공산당 강세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어떻게 말하면 통일 독일이 외면적, 제도적, 행정적 측면에서 완결됐다고 볼 수 있으나 통일의 내실화 및 인간적, 정서적 차원에서의 융합은 미흡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동독인은 2등 국민이며 서독인은 자신만만하고 활기 있는 ‘부자’라는 인식이 동독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서독은 구 동독에 통일 비용을 위시하여 많은 투자를 해왔다. 사회간접자본(도로, 통신, 학교, 병원, 교통 등등)은 거의 서독 수준에 왔으며 일부는 서독수준을 능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시행한 사람도 서독인이고 이것을 운영하는 책임자도 서독인이다. 그리고 제조업에서 동독인 주도로 세운 공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서독인은 정책 결정자, 고용인이고 동독인은 구태의연하게 정책을 시행하며 기업체에서는 피고용인이다. 그들은 선거 때 투표하는 것 이외에는 발언권이 없다.
이번 베를린 주정부 경제상은 구 공산당 당수 출신 기지(Gysi) 변호사다. 야당과 기업인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알파벳을 모르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부서를 맡았으니 투자가들은 베를린을 회피할 것이고 굴레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PDS는기독교 민주당(CDU)이 집권했을 때에도 베를린에는 큰 투자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사실상 앞으로 베를린에서의 경제활동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기지’ 경제상에 맡겨보자는 의견이 다수이다.
이념적 차원 아닌 인간의 이질성 부정이 원인
물론 현재 어느 선진국이든 집권자의 능력이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20세기 경제문제만을 생각했던 집권자들이 21세기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날 경제문제는 세계화 속에서 국민경제의 위치가 달라지고 있다. 즉 제 경제들의 통합시장 형성, 또는 경제내부의 통합·통일(예:동서독간)이 큰 이슈로 등장한다. 그러나 통일·통합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간의 통합이며 ‘문화’와 ‘문화’간의 대화이다.
독일은 통일과정에서 ‘동·서독인 간의 차이’를 게르만 민족의 동질성, 동일성론으로 무시하고 그 위에서 통일정책을 수립했다. 오늘날 독일에서 구 공산당이 다시금 머리를 드는 것은 과거의 이념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간의 이질성을 인정 않은데서 출발한 것이다.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경제학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경제학
2002년 1월 18일 통일 독일 수도 베를린시에서 사민당·민주사회당(PDS 구 공산당) 연립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신연립주정부를 축하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 물론 PDS 당원들과 지지한 유권자들은 내심으로 자축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독일이 통일된 지 11년이 지난 오늘 구동독을 독재적으로 통치했던 구 공산당이 다시금 합법적으로 비록 좌파연정이긴 하지만 수도 베를린에서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물론 구동독의 북쪽 두 주정부는 PDS가 연립정권을 형성했거나 또는 소수 사민당 정부를 관용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공산세력이 이렇게 강세를 보인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 PDS가 동독지방에서 구 공산당의 이념과 정책을 그냥 그대로 승계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정당 속에는 아직도 과격한 공산당 요소(파)가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바겐크냇흐트(Wagenknecht) 여사를 앞세우는 과격파가 그러하다. 그러나 과격파는 공산당에서 소수파를 이루고 있다. 연방 정당 당수 짐머(Zimmer) 여사, 베를린 PDS 지부장 파우(pau) 여사는 중도파라고 볼 수 있으며 기지(Gysi) 전 당수를 축으로 한 보수주의적으로 변신한 다수파가 베를린 연립정부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PDS 속에서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파로 가고 있는 베를린 사민당이 PDS와 연립정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한다면 현재 독일 공산당은 그간 많은 변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지도층, 구 공산당 강화에 반성하라 경고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아무리 왕년의 공산당이 변신을 했다고 해도 과거 동독에서 분단과 인권박해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PDS는 사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계약의 서문에 ‘구동독 공산당 정부’가 저지른 여러가지 행적(베를린 장벽, 정치 망명자 사살, 인권운동자 투옥 등)에 대해서 통감스럽게 책임을 진다고 했다. 과연 현재 PDS는 옛날의 공산당과 다를까?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 슈미트 전 수상은 구 동독에서 공산당 존재는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왜 구 공산당인 PDS가 다시 강화되고 있는가 하는 데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베를린 주의회 선거 때 PDS는 동 베를린에서 거의 절반의 유권자 표를 획득했다. 그리고 이미 동 베를린에는 구 공산당 출신의 구청장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PDS가 발전한 가장 큰 이유는 동독인의 이익과 아이덴티티를 대변하는 동독에 뿌리를 둔 정당이 구 공산당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동독인은 그들의 정치적 고향이 구 공산당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정당과 이익단체들은 거의 전부가 ‘서독 정당·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통일이 서독정치, 자본, 조직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구 동독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마음의 돌파구가 바로 구 공산당 강세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어떻게 말하면 통일 독일이 외면적, 제도적, 행정적 측면에서 완결됐다고 볼 수 있으나 통일의 내실화 및 인간적, 정서적 차원에서의 융합은 미흡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동독인은 2등 국민이며 서독인은 자신만만하고 활기 있는 ‘부자’라는 인식이 동독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서독은 구 동독에 통일 비용을 위시하여 많은 투자를 해왔다. 사회간접자본(도로, 통신, 학교, 병원, 교통 등등)은 거의 서독 수준에 왔으며 일부는 서독수준을 능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시행한 사람도 서독인이고 이것을 운영하는 책임자도 서독인이다. 그리고 제조업에서 동독인 주도로 세운 공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서독인은 정책 결정자, 고용인이고 동독인은 구태의연하게 정책을 시행하며 기업체에서는 피고용인이다. 그들은 선거 때 투표하는 것 이외에는 발언권이 없다.
이번 베를린 주정부 경제상은 구 공산당 당수 출신 기지(Gysi) 변호사다. 야당과 기업인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알파벳을 모르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부서를 맡았으니 투자가들은 베를린을 회피할 것이고 굴레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PDS는기독교 민주당(CDU)이 집권했을 때에도 베를린에는 큰 투자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사실상 앞으로 베를린에서의 경제활동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기지’ 경제상에 맡겨보자는 의견이 다수이다.
이념적 차원 아닌 인간의 이질성 부정이 원인
물론 현재 어느 선진국이든 집권자의 능력이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20세기 경제문제만을 생각했던 집권자들이 21세기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날 경제문제는 세계화 속에서 국민경제의 위치가 달라지고 있다. 즉 제 경제들의 통합시장 형성, 또는 경제내부의 통합·통일(예:동서독간)이 큰 이슈로 등장한다. 그러나 통일·통합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간의 통합이며 ‘문화’와 ‘문화’간의 대화이다.
독일은 통일과정에서 ‘동·서독인 간의 차이’를 게르만 민족의 동질성, 동일성론으로 무시하고 그 위에서 통일정책을 수립했다. 오늘날 독일에서 구 공산당이 다시금 머리를 드는 것은 과거의 이념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간의 이질성을 인정 않은데서 출발한 것이다.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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