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프랑스 제1의 갑부,세계 4위의 부자(410억 달러=46조원)이며 루이뷔통으로 대표되는 명품의 황제인 베르나르 아르노가 지난주 벨기에 국적을 정식으로 신청했다. 5월에 취임한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의 사회당 정부가 선거 공약 대로 연 100만유로 이상의 보수를 받는 고소득자들에게 75%의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에 착수하자 아르노는 기업인에게 그렇게 높은 세금을 매기는 것은 기업인의 경제활동 의욕을 죽이는 반(反)기업적인 조치라며 세율 인하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가 끝내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조국 프랑스를 버리고 벨기에로 국적을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르노의 벨기에 귀화 결정이 보도되자 진보계의 신문 리베라숑은 1면에 사진과 함께 '꺼져라 이 부자 놈팽이야!'라는 제목으로 그의 행동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에 화가 난 아르노는 리베라숑에 연말까지 예약한 광고(15만유로)를 전부 취소해버렸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고발기사를 보도했다 해서 삼성이 한겨레에 2년간이나 광고를 중단한 것을 상기시키는 재벌의 횡포를 드러냈다,
아르노의 행동은 한 기업인의 행동이라기보다 프랑스기업운동(medef-한국의 전경련에 해당)이 벌이고 있는 반정부 행동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소수의 대기업 집단이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정부의 결정에 도전하는 행동이었다. 대기업들은 정부가 75% 세율을 완화하지 않으면 본사와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해서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대기업의 힘이 너무 커질 때 나타날 수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오늘 한국이 겪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대기업 총수들을 겨냥했다고 볼 수 있는 고액 소득자들에 대한 올랑드정부의 75% 과세 정책은 프랑스 대선에서 가장 관심을 끈 사회당의 공약으로 빈부 격차가 심화된 상황에서 서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올랑드의 유권자와의 약속
올랑드 당선에도 '75%' 공약이 효과가 있었다는 자체 평가다. 따라서 '75%'는 올랑드 정부가 재벌의 압력에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유권자와의 약속이다.
고소득에 대한 올랑드의 '75%' 공약은 선거운동 기간 중에 한 때 지지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위기 탈출의 비상수단으로 짜낸 포퓰리즘 요소가 없지도 않다. 그러나 75%는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숫자가 아니다.
세계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올랑드 대통령이 대공황 극복에 성공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족적을 따라가기로 결정한 데서 나온 숫자다. 루즈벨트는 1935년 최고 소득계층에 79%의 세금을 부과했다. 미국은 그 후 20년간 경제호황을 누렸다. 미국에서 슈퍼 부자들에 대한 세율을 29%까지 인하한 것은 레이건 정부였다. 오늘날 세율은 다시 35%까지 올랐다.
올랑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75% 세금정책 때문에 재벌들의 집중 공격을 받아왔다. 대기업들은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올랑드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 및 관련 장관들을 접촉하고 '75%' 를 분쇄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프랑스 언론은 대기업과 프랑스기업운동(medef)의 이러한 공세를 '대기업의 엘리제 포위작전' 또는 '75% 전쟁'이라고 명명했다.
재벌의 로비 활동은 시도 때도 없었다. 이들은 엘리제에 압력을 가해서 여름휴가를 마치고 막 돌아온 올랑드 대통령과 오찬 모임도 가졌다. 올랑드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과의 만남에서 경제의 성장을 증진하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생산적인 대책들이 토의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75%'를 철회해달라는 보채기로 끝났다. 그 후 올랑드는 대기업 총수들을 '울보'라고 부른다는 게 언론 보도다.
'75%' 철회 안하면 해외 이전 협박
대기업들은 75%라는 숫자를 부각시키며 '75%' 때문에 경제활동이 위축될 거라고 위협한다. 그러나 '75%'는 그렇게 큰 타격을 주지는 않으리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해당자는 1만명 정도. 이 가운데 축구선수 예술인은 '창의적 활동'을 하고 수입이 일정치 않다는 이유로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실제로 소득의 75%를 전액 납부하는 것이 아니고 법적 공제액을 제외한 금액의 75%가 과세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제로 납부하는 세액은 59%선이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문제는 대기업이 '75%' 거부를 정당방위로 간주하고 '75%'를 정권을 위협하는 정치적 무기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의 힘이 너무 커질 때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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