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스스로
정경유착 고리 끊어야
신명식 정치담당 편집위원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인 정치인들이 돈 안 드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민주당 대선 예비주자들은 이른바 국민참여 경선에서 깨끗한 선거운동과 공명선거를 위해 대의원이나 당원에게 설 선물을 안 보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올해 선관위가 배분할 정치자금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1000억원이나 된다. 그런데도 양 당은 이 돈은 본선에서 쓰고, 경선비용은 모두 주자들로부터 조달하겠다고해서 말썽이다. 당장 민주당의 경선자금이 문제다.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선출을 위한 국민참여 경선제의 최소 경비가 30억원은 들 것으로 보고, 이를 모두 후보들에게 부담시키려 하고있다. 대선 경선주자는 기탁금만도 3억원, 최고위원 후보는 1억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시도지사 후보 경선비용도 이런 식으로 조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은 한나라당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선거의 해에 의원 한 명이 모금할 수 있는 한도액은 6억원이다. 한나라와 민주 양당에서 대통령후보, 부총재 또는 최고위원 후보, 광역단체장 후보 등 당내 경선에 나서는 사람만 해도 줄잡아 100명이 넘는다. 이들이 손을 벌릴 데는 뻔하다. 이처럼 정치권의 자금수요가 폭발하자 기업들이 벌써부터 몸을 사리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 중단, 몸사린 기업총수들
손길승 SK그룹 회장은 1일 한 조찬강연회에서 “올해 대선 과정에서 정당한 정치자금 요구에는 응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요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월15일에는 내로라하는 최고경영자 105명이 “주주 전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불법적인 정치자금 제공을 일절 중단하겠다”는 윤리강령을 선포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기업인들이 “부당한 정치자금을 안내겠다”고 선언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과거 알짜 국영기업체를 인수하고, 국책사업의 사업권을 따내는 등 무언가 반대급부를 바라고 정치인에게 사실상의 뇌물인 정치자금을 주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고백 없이 기업인이 불법정치자금을 내고 싶은 유혹과 정치자금을 내라는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지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나마 기업인들이 이런 입장을 밝히는 것은 과거와 달리 비자금 조성도 쉽지 않고, 군사정권에 비자금을 제공했다가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거나 소액주주로부터 소송을 당해 배상판결을 받는 곤욕을 치렀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인들이 정치권의 부당한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려면 12대 만석꾼 9대 진사를 배출한 조선시대 최고부자, 경주 최부자집의 인생관과 경륜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부자집에는 가훈이 있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벼슬이 높아지면 쓸데없이 정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 만석 이상이 되면 어떻게 하나. 소작료를 낮추었다. 그래서 최부자가 땅을 더 사면 소작인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이 집은 연간 수입의 3분의1은 가용에 쓰고, 3분의1은 손님 접대에 썼으며, 3분의1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썼다고 한다. 넷째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않는다. 다섯째 가문의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투명한 정치자금 제공 정치개혁 촉진 가능
이처럼 부자가 되어도 상극(相剋)이 아니라 상생(相生)의 길을 택했기에 12대 만석꾼이 가능했던 것이다. 13대 최부자는 해방이후 좌우익의 대립과 토지개혁을 겪으면서 결단을 내렸다. 전 재산을 교육사업에 내놓아 오늘의 영남대학의 기초를 세웠다. 오늘날 재벌오너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자의 윤리이며 인생관이라 하겠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기업인이 기업인 대접을 받으려면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업을 열심히 하고, 이익이 생기면 일정한 기준을 세워놓고 합법적 정치자금을 기부하면 족할 일이다.
“불확실한 정치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고 기업인이 불평할 필요가 없다. “세무조사도 싫고, 정치자금도 지긋지긋해서 직접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는 한 재벌총수의 견해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기업인 스스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면 정치개혁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신명식 정치담당 편집위원
정경유착 고리 끊어야
신명식 정치담당 편집위원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인 정치인들이 돈 안 드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민주당 대선 예비주자들은 이른바 국민참여 경선에서 깨끗한 선거운동과 공명선거를 위해 대의원이나 당원에게 설 선물을 안 보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올해 선관위가 배분할 정치자금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1000억원이나 된다. 그런데도 양 당은 이 돈은 본선에서 쓰고, 경선비용은 모두 주자들로부터 조달하겠다고해서 말썽이다. 당장 민주당의 경선자금이 문제다.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선출을 위한 국민참여 경선제의 최소 경비가 30억원은 들 것으로 보고, 이를 모두 후보들에게 부담시키려 하고있다. 대선 경선주자는 기탁금만도 3억원, 최고위원 후보는 1억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시도지사 후보 경선비용도 이런 식으로 조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은 한나라당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선거의 해에 의원 한 명이 모금할 수 있는 한도액은 6억원이다. 한나라와 민주 양당에서 대통령후보, 부총재 또는 최고위원 후보, 광역단체장 후보 등 당내 경선에 나서는 사람만 해도 줄잡아 100명이 넘는다. 이들이 손을 벌릴 데는 뻔하다. 이처럼 정치권의 자금수요가 폭발하자 기업들이 벌써부터 몸을 사리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 중단, 몸사린 기업총수들
손길승 SK그룹 회장은 1일 한 조찬강연회에서 “올해 대선 과정에서 정당한 정치자금 요구에는 응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요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월15일에는 내로라하는 최고경영자 105명이 “주주 전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불법적인 정치자금 제공을 일절 중단하겠다”는 윤리강령을 선포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기업인들이 “부당한 정치자금을 안내겠다”고 선언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과거 알짜 국영기업체를 인수하고, 국책사업의 사업권을 따내는 등 무언가 반대급부를 바라고 정치인에게 사실상의 뇌물인 정치자금을 주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고백 없이 기업인이 불법정치자금을 내고 싶은 유혹과 정치자금을 내라는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지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나마 기업인들이 이런 입장을 밝히는 것은 과거와 달리 비자금 조성도 쉽지 않고, 군사정권에 비자금을 제공했다가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거나 소액주주로부터 소송을 당해 배상판결을 받는 곤욕을 치렀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인들이 정치권의 부당한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려면 12대 만석꾼 9대 진사를 배출한 조선시대 최고부자, 경주 최부자집의 인생관과 경륜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부자집에는 가훈이 있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벼슬이 높아지면 쓸데없이 정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 만석 이상이 되면 어떻게 하나. 소작료를 낮추었다. 그래서 최부자가 땅을 더 사면 소작인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이 집은 연간 수입의 3분의1은 가용에 쓰고, 3분의1은 손님 접대에 썼으며, 3분의1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썼다고 한다. 넷째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않는다. 다섯째 가문의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투명한 정치자금 제공 정치개혁 촉진 가능
이처럼 부자가 되어도 상극(相剋)이 아니라 상생(相生)의 길을 택했기에 12대 만석꾼이 가능했던 것이다. 13대 최부자는 해방이후 좌우익의 대립과 토지개혁을 겪으면서 결단을 내렸다. 전 재산을 교육사업에 내놓아 오늘의 영남대학의 기초를 세웠다. 오늘날 재벌오너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자의 윤리이며 인생관이라 하겠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기업인이 기업인 대접을 받으려면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업을 열심히 하고, 이익이 생기면 일정한 기준을 세워놓고 합법적 정치자금을 기부하면 족할 일이다.
“불확실한 정치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고 기업인이 불평할 필요가 없다. “세무조사도 싫고, 정치자금도 지긋지긋해서 직접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는 한 재벌총수의 견해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기업인 스스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면 정치개혁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신명식 정치담당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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