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재 논설고문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직을 잃고 다시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다. 대법원 판결로 선거법 위반 형이 확정되어, 원심판결 잔여 형기를 채우기 위해 오늘 중 재구속이 집행되는 모양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흩어졌던 가족이 모이는 시기에, 차가운 감방에 갇히게 될 그의 처지가 안쓰럽다.
전임자에 이어 또 수도 교육행정 책임자가 임기를 채우지 못 하고 영어의 몸이 된 것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서울 교육행정사상 처음인 진보진영 교육감이었다는 점에서 실망이 크다.
세상의 부정과 부패를 도려내 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진보 교육자라면 도덕적 결백이 기본이다.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기는커녕, 다른 부패 정치인과 다름없는 혐의가 인정되어 진보 진영의 명예에도 치명상을 입혔다.
그가 투표로 선출된 교육수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서울시민 모두의 불행이기도 하다. 직선제로 선출된 교육감이 잇달아 부패 혐의로 물러났으니, 그들을 선택한 시민들의 존재감과 자존심에 타격이 크다. 그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교육개혁 정책에 차질이 생기게 된 것도 손실이다.
그를 선택한 시민들의 존재감과 자존심에도 큰 상처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7일 곽 전 교육감의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상고심 사건 재판에서 그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그에게 내려진 징역 1년 형이 확정되어 교육감 직을 잃게 되었고, 국가로부터 보전 받은 선거비용 35억 2000만원을 물어내게 되었다.
교육감선거가 끝난 뒤 그가 진보진영 경쟁후보였다가 중도 사퇴한 박명기 교수에게 2억 원을 준 것이 지방교육자치법상 사후매수 죄에 해당한다는 원심에 하자가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그는 "후보사퇴를 조건으로 준 대가성 있는 돈이 아니기 때문에 사후매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은 명쾌하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그 돈을 후보사퇴 대가로 본다는 것이다.
돈을 준 시점이 선거 전이나 선거 중이 아니고, 끝난 뒤 몇 개월이 지났더라도 대가성 있는 돈으로 인정한 데 의미가 있다. 사후매수죄는 지금까지 법조문에만 존재했고 한번도 적용된 일이 없었다. 곽 전교육감 주장대로라면 은밀히 약속하고 뒤에 돈을 주는 매수행위를 막을 길이 없게 된다.
곽 전 교육감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박 교수 사정을 딱하게 여겨 선의로 준 돈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선거가 끝난 지 한참 뒤의 일이고 대가성이 없었으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그 말은 논리적으로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준 것이 왜 죄가 되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돈의 액수에 있다. 적선가가 아니라면 2억원은 너무 거액이다. 평소 그가 어떤 적선행위를 해 왔는지는 알 바 아니지만, 경쟁관계였던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그 많은 돈을 준 행위가 선의로 포장될 수는 없다.
대법원이 '건전한 상식'과 '국민의 법 감정'을 거론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재판부는 후보사퇴와 돈 준 행위가 결과에 직접 영향이 미치지 않았더라도 선거의 공정과 피선거권을 훼손하는 선거부정에 해당하므로 그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옳다고 천명했다.
선거 후의 일이고,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후보 간 돈거래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은 국민의 상식과 법 감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공직자 수뢰사건 때마다 귀가 아프게 들어 온 '대가성'이라는 말에 대하여 앨러지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국민이 있을까.
곽 교육감의 '무상급식' 정책은 복지국가 논쟁에 불 지펴
곽 전교육감은 비록 중도하차의 비운을 맞았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작지 않다. 그가 추진한 무상급식 정책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중도하차와 박원순·안철수 등장의 계기가 되었고, 18대 대선 복지정책 논쟁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학생인권 조례, 혁신학교 정책도 마찰이 있지만 교육혁신과 인권 개선의 모티브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는 무명의 진보 법학자에서 교육혁신의 상징적 인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자기가 일으킨 파도에 휩쓸려 떠나갔다. 그의 성공과 실패가 대선을 앞둔 2012년 한국사회에 던진 화두는 심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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