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묻지마 폭력'에 이어 이번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의 '묻지마 인재영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박근혜 캠프는 보수색채를 희석시키기 위해 진보인사들의 영입을 추진중이다.
영입대상에 오른 인사들로는 장하준 캐임브리지대 교수,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장, 손숙 전 환경부 장관,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모르는 일"이라거나 "갈 생각 없다"고 밝혔다. 박근혜 캠프가 영입설을 흘리고, 언론은 본인에게 확인도 않은 채 받아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김지하 시인이 박근혜 캠프의 국민대통합위원장에 거론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 발언 이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진정성을 국민에게 확인시키기 위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김 시인의 상징성은 이를 훨씬 뛰어넘어 과거사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지 않게 하는 마법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김 시인이 박 캠프에 합류한다면 이 보다 더 쇼킹한 뉴스는 없을 것이다. 결국 해프닝으로 판명됐지만. 김 시인은 이 보도를 접하고 진노했다고 한다.
"역사인식이 무지한 사람이 전태일 재단을 찾고 인혁당 유가족을 언급하더니 이제 시인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와 '저항 시인' 김지하. 두 사람은 살아온 역정만큼 역사인식도 상반된다. 박 후보는 대통령의 딸로서 호사를 누리며 유신독재 시절에는 퍼스트 레이디로 국민 위에 군림했다.
반면 김 시인은 자신의 담시 '오적(五賊)'에 쓴 대로 평생을 '거지 시인'으로 살아오며 감옥을 들락날락했다. 박 후보는 5·16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찬양했지만, 김 시인은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했다고 꼬집었다.
"역사인식 무지한 사람이 날 끌여들여"
박 후보는 '인혁당 사법살인'을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한 반면, 김 시인은 인혁당 사건의 고문조작을 폭로하고 감옥을 택했다.
김지하 시인은 '독재자 박정희'에 맞섰던 대표적 지식인이다. 그는 1970년 장준하 선생이 펴낸 '사상계' 5월호에 '오적'을 발표하면서 박정권의 '저항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오적은 5·16쿠데타 10주년을 맞아 박정희 정권의 권력 상층부인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천하흉포 5적'의 부패상을 판소리가락으로 담아냈다. 오적의 주인공들은 원숭이(猿), 성성이(猩), 미친개 등 모두 흉측한 동물들이다. 그는 이로 인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다가 폐결핵이 악화돼 풀려났다.
2년 뒤 그는 또 다시 유언비어를 소재로 한 풍자시 '비어(蜚語)' 때문에 반공법 위반으로 수감됐다. 비어는 '지치고 처지고 주리고 병들고 미쳐서 … 에잇 개같은 세상!'이란 한마디를 내뱉은 안도(安道)의 억울함을 풀어냈다.
안도는 '축생적 조국비유죄(畜生的 祖國比喩罪)' 등 수십가지 죄목으로 잡혀가 모진 고초를 겪는다. 안도가 감옥 벽에 부닥치는 소리 때문에 권력자들이 오금을 펴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유신독재 이전 김 시인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부패에 대해 오직 시(詩) 하나만을 무기로 저항했다. 그는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다가 유신 이후인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체포돼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그는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동아일보에 '고행-1974'라는 고발문을 연재했다. 감옥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들은 증언을 토대로 이 사건이 유신정권에 의해 조작된 것임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그는 또 다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쉬고 싶은 김 시인에겐 큰 고통
이처럼 김지하 시인은 박정희 독재정권 내내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사면과 석방 등 형극의 길을 걸어왔다. 박근혜 캠프는 이렇듯 '아버지 박정희'에 맨몸으로 저항한 김 시인을 영입해 최상의 '대통합' 효과를 거두려 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이 영입대상으로 거론만 돼도 '대통합 의지'를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속셈이었지도 모른다. 김 시인 영입설을 언론에 흘린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언론이 확인없이 이를 받아쓴 것은 결국 박 캠프 '스핀닥터'의 '인물 이벤트' 농간에 놀아난 셈이다. 세상과 동떨어져 쉬고 싶은 김지하 시인에게 왜 다시 고통을 주려 하는가.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