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운/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사과에 대해 희생자 유족측이나 시민단체에서는 여전히 그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5·16군사쿠데타와 유신에 대해 "불가피하게 일어난 사건이니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강변하고,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두개의 판결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민심이 요동치는 추석을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꾼 후 더 이상 만족할만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과거사 사과 후 박 후보를 지지하던 보수층의 이탈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유신과 인혁당 사건에 대한 사과는 이해하지만 5·16까지 '헌법 가치를 훼손'한 사건이라는 데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5·16이 일어날 당시 상황은 연일 시위가 일어나는 등 사회가 극도로 불안해 어쩔 수 없이 군인들이 나섰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사회가 극도로 혼란한데도 무능하고 부패했던 장면(張勉) 정권은 국정운영 능력이 없었고, 따라서 일부 정치군인들의 '혁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어림없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장면 박사는 젊은 시절 미국 유학을 통해 민주주의를 철저히 익힌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다. 20년 가까운 교육자로서의 걸음을 멈추고 8·15 광복 직후 민주의원 의원과 입법의원 의원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것도 천주교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의 권고 때문이었다.
1948년 서울 종로을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헌국회의원이 된 이후 본격적인 정치가로서 살면서 언제나 성실한 자세로 나라와 국민을 사랑했고, 몸에 밴 근검절약 정신으로 깨끗하게 살았다는 것이 후세 사가들의 일치된 평가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실행할 준비
그는 1948년 9~12월 한국대표단을 이끌고 제3차 유엔총회가 열리던 파리로 날아가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임을 역설하는 명연설과 외교활동을 통해 신생 독립국의 유엔 승인을 얻어냈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초대 주미대사로서 탁월한 외교력으로 유엔군의 한국전 참전을 이끌어냈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1961년 당시, 경제 제일주의를 표방한 장면 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착실히 실행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경제의 안정을 기한 후에야 정국안정을 바랄 수 있고, 참된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농촌 고리채 정리와 환율 현실화 방안도 완벽하게 수립해 두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 정책들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에 안정기금을 요구해 받기로 합의했다. 이 기금 가운데 일부인 2000여만달러를 김영선(金永善) 재무장관이 도미해 받아왔고, 그 해 7월 장면 총리가 직접 미국으로 가 나머지 기금을 완전히 받아오기로 하던 중 군사쿠데타가 터지고 말았다.
사회 안정을 위해서도 총검보다 '자유를 바탕으로 한 질서 회복'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각료들이 강경 진압을 건의했으나 그때마다 "나는 독재정권에 시달려 본 사람이요. 참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본보기로 마음껏 자유를 누려보게 하고 싶어요"라며 날마다 벌어지는 시위조차도 민주주의 실현의 단계요 과도기적 현상으로 여겼다. 사실 쿠데타가 터지던 때는 시위도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5·16군사쿠데타는 장면 정권 출범 18일 만인 1960년 9월 10일 일부 정치군인들이 서울 충무가에서 음모(1964년 1월 5일 삼민회 대표 박순천 여사 국회연설)했으며, 당시 육군참모총장 장도영과 대통령 윤보선까지 사전에 알고도 쿠데타 세력과 미리 내통해 막지 않은 명백한 헌정질서 파괴의 반역행위다.
윤보선, 감언이설에 속아 나라 파탄
특히 윤 대통령은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면 정권을 바로 자신에게 넘겨줄 것으로 믿고 매그루더 주한 미군 사령관과 마셜 그린 주한 미 대리대사의 진압 요청을 거부한 데 이어 1군 사령관 이한림 장군에게 비서를 보내 반역군을 진압하지 못하게 막았다.
쿠데타 가담 군인의 "5·16은 인조반정과 같습니다. 윤 대통령을 끝까지 모시겠습니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자신은 물론 나라 전체를 파탄지경에 이르게 했다.(전 국회의장 이만섭 회고록, '나의 정치인생 반세기' 118~119쪽 참조)
사실이 이러한데 아직도 "5·16만은 불가피했다"는 말이 나오니 한심하고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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