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용계의 거장 엘리자 리 “이제 쉬는 건 다 쉬었어요.”

지역내일 2012-10-11

한국 미용계의 숨은 거장 '엘리자 리(Eliza Lee)'




엘리자 리는 최근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그가 운영 중인 ‘엘리자리 헤어살롱’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소식과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현재 미용계의 거장이 된 그도 사실 미용에는 관심도 없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그랬던 그가 미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연히 시작했죠. 그 때 친언니가 홍제동에서 미용실을 했는데 자격증이 없어서 다른 분의 자격증을 빌려서 운영하다가 저더러 따오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학원가서 한달 만에 땄어요. 급하게 따다보니 시험 대비반에서 이론과정도 없이 실기대비를 시작했죠. 솔직히 필기는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찍어서 붙었어요. 그렇게 한 달을 어깨너머로 보며 연습하며 준비하고 취득했죠. 자격증 취득후에도 한동안 놀러 다녔어요. 1년쯤 놀았을 때 당시 바람머리가 유행이었는데 그 머리를 한 탤런트를 우연치 않게 보고 ‘저런 사람 머리해주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바로 시작했죠.”

그는 1981년 뉴욕 IBS대회 최연소 출전으로 금상의 영광을 안았다. 선수 미팅 당시 내노라하는 원장들이 대거 참여하는 대회인만큼 상대적으로 어리고 경력이 없던 그는 자신감 상실로 뒷걸음질 칠 수 밖에 없었다.

“커트를 15분 만에 쳐야하는데 이전에 연습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안되겠다 싶어 인근 친한 언니네 샵에서 머리를 한번 잘라보고 다시 대회장으로 갔죠. 거의 한 작품 끝날 때마다 화장실가서 울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는 용기와 무식과 도전적인 열정 그거 하나였던 것 같아요. 어린 게 덜덜 떨면서도 야무지게 잘라냈고, 시상하는데 장려상까지도 제 이름이 호명되지 않으니 집에 가고 싶더라구요. 그때 국장님이 오셔서 네가 종합 1위로 금상이라고 하셨는데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 일이 혜성처럼 명동에 젊은 스타가 탄생하게 된 사건이었죠.(웃음)”

일찍이 그는 소질을 보이며 경력자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기량을 맘껏 펼쳐보이며 최연소 금상의 영광을 안았지만 우승의 기쁨보다는 알 수 없는 허망함에 휩싸였다.

“무작정 택시를 타서 기사님한테 아무데나 데려가 달라고 한 바퀴를 돌았어요. 그렇게 돌다가 돌아와서 TV를 틀었는데 흑백화면 속 엘리자베스 여왕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 때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최고의 여성인 만큼 나도 최고를 추구하는 미용인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엘리자 리’가 탄생했죠. 다음날 바로 엘리자 리 이름으로 명함도 제작했어요.”

그는 국제적 미용대회에 출전해 우리나라 대표 선수로서 치열하게 경쟁했고, 트레이너로서 후배 양성에 매진하며 눈부시게 활약했다. 국가대표로서 열심히 활동하던 당시 그는 조국이 상대적 약소 국가라는 이유로 남 모를 아픔을 겪었다.

“ 국가대표로 영국을 갔어요. 선수들이 새벽부터 대회엘 가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요. 다른 나라는 대기실만 봐도 과일부터 시작해서 가득 준비되있는데, 우리나라는 물 한 모금도 챙겨주지 않는 그 열악함은 말로 못해요. 게다가 영어도 안 되는데 통역도 없고 너무 힘들죠. 국가적으로 미용인에 대한 처우가 너무 성의 없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총장님과 위원분들한테 쓴 소리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욕심껏 여러 대회에서 상을 타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무대를 내려와서 보니 한국이란 나라가 너무 작은거죠. 그때가 제 가슴속에 ‘모국’이라는 단어가 깊이 새겨진 계기가 됐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온 그는 다시 지도자로서의 제 2의 길을 걸었다. 그는 국제트레이너 1호라는 수식어를 가졌다. 그만큼 국가의 큰 재목이 되며, 좋았지만 그에 따른 부담도 컸다.

“오랜 선수생활이 끝나고 나니 국제적 트레이너의 길이 열렸죠. 당시 국가대표를 희망하는 선수들 또한 엘리자 리가 트레이너라면 하겠다는 분위기였으니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고, 그렇게 막상 선수를 가르치려하다보니 내가 선수일 때 부족하다 느꼈던 부분들을 채워가며 트레이닝 했어요. 그 당시 내 제자에게 ‘아리랑’이라는 콘셉트를 주었고 제자가 국제 대회에서 1위를 했는데 그 때 너무 보람차고 뿌듯했어요. 선수로 실전에서 누구보다 많이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런 부분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죠.”




그는 현재 국제적 헤어 미용단체 ICD KOREA의 회장을 맡고 있다. 웰라 측에서 그 전부터 ‘엘리자 리가 맡아줬음 좋겠다’라는 의사를 밝혀왔지만 선택에 앞서 많은 고민과 시간을 보내고 결국 역임을 결정하게 된 큰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어떠한 기구나 단체가 있어야 조금이나마 더 좋은 환경에서 후배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랑프리 성적을 가지고도 시상대에서는 그랑프리가 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싫었던 거죠. 이렇게 작고 이상한 나라의 문제들은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시작했어요.”

그는 지도자의 마인드만큼이나 사업적인 마인드 역시 거장다웠다. 현재 쉬어가는 중이라는 그는 국내 시장과 함께 해외로의 진출을 준비 중에 있고, 이미 중국 심천에는 180평 규모의 살롱이 운영중에 있다고 전했다.

“ 현재 제 살롱이 우리나라 VVIP 손님들이 주로 오시기 때문에 비교적 조용히 돌아가고 있는 상태예요. 쉬는 타임이니 조금 수월하게 제 고객님들만 위주로 운영해왔던 거지만, 이제 다 쉬었으니 사업해야죠. 지금 일산에 큰 규모로 내부 인테리어까지 마친 살롱이 있는데 시공사 분쟁 때문에 오픈이 좀 미뤄진 상태고, 심천에는 이미 180평 규모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 후로 태국 내 한인타운에 오픈 계획중이예요.”

그는 해외 진출에 앞서 염려되는 인력 수급 부분에서의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중국 심천이 6년이 넘었는데, 여러 가지로 우리 아이들의 문제가 많아요. 한류의 영향으로 페이도 어느 정도 높아진 상태지만 타국에서의 활동으로 심리적으로 늘 붕 떠있어요. 또 현지에서 오래 활동하다 보면 국내 디자이너로서의 복귀가 사실상 힘들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진행하려는 것 중 하나가 이 아이들의 노동을 공식적으로 허가받고 그들의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게끔 갖은 노력중이예요. 일종의 전문가증 같은 개념이죠. 이 계획만 성공한다면 해외 시장으로의 프랜차이즈 진출과 발전은 어렵지 않죠.”

이처럼 그는 과거 화려했던 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자신의 살롱을 운영하며 자신과 같은 길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스승으로서 길을 살아가는 중이다.

“교육을 하면서 아이들의 생각을 깨워주려고 노력해요. 이 길을 선택한 목표나 목적을 설정하고 깨닫게 하고 싶죠. ‘늘 발전하고 노력해라’라는 말을 자주해요.”

그는 누구나 가르치는 단순한 기술 강좌가 아닌 미용 자체를 하나의 문화로써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재 미용 문화와 트랜드 중심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 시스템이 지금처럼 연예인의 머리를 어떻게 똑같이 만들 것 인가 하는 기술만 가르쳐서는 발전이 없죠. 유명한 비달사순은 일반 건축학을 처음 헤어 시스템으로 도입했던 사람이거든요. 이처럼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고 그것을 응용해 새로운 영역으로 만들어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거시적인 관점을 심어주는 것이 앞으로의 교육 과제죠.”

그는 인터뷰 내내 미용인으로서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이 확고했다. 또한 자신이 나아갈 길과 방향에 대한 판단도 무척이나 뚜렷했다.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물었다.

“이제까지는 마케팅 시대였다면, 지금부터는 서서히 프로패셔널 시장인거죠. 전 많은 경험, 노하우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는 거죠. 전 지점의 갯수가 중요하기보단 체계적인 프랜차이즈를 하고 싶어요. 브랜드 이름만 가지고 하는 프랜차이즈는 기술적인 면이 따라오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브랜드 사업을 한다하더라도 늘 교육이 우선일 거예요. 올해는 중국의 대학에는 아직 미용학과가 없어서 북경부터 시작해 미용학교 건립이 목표예요. 현재 한중교육문화교류협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거든요. 중국과 한국이 교육적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단체인데, 11월 달에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트레이너 제안이 들어와 있는 상태예요. 이런 활동 역시 사회적 공헌과 동시에 지도자의 위치에서 앞으로 발전해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굉장히 뿌듯하죠. 가만 보면 저는 뼛속부터 교육자인 것 같아요.(웃음)”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생각과 위치에 대해 솔직하고 대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미소엔 아직도 소녀같은 순수함이 묻어났지만 그 이면에는 어린 시절 혜성처럼 등장해 지금에 오기까지 오랜 세월을 미용인으로서의 신념과 자부심으로 살아온 그의 내공이 돋보였다.

현재 그는 ‘이제 쉬는 건 거의 다 쉬었다. 앞으로 다시 나아갈 일만 남았다.’라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했던 그가 이제는 2번째 날개를 펼쳐 다시 날아오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가 맞을 제 2의 전성기를 기대해 본다.
[연예부 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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