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기간 지나면 손해배상 청구 못해
기간 계산은 어느 시점부터일까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도 시효 소멸로 행사할 수 없다. 반면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의 기간은 국가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다른 법률에 규정이 없는 한 5년으로 단축된다. 따라서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권리는 5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가 소멸된다.
'불법행위를 한 날'의 의미는 가해행위를 한 날과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시기가 일치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해행위와 손해발생이 시간적으로 차이가 날 때는 언제를 소멸시효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봐야 할까.
세무서는 2000년 1월 A은행이 B사에 구매승인서를 발급해 주는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발견하고 B사에 물품을 공급한 C사를 상대로 부가가치세를 부과했다. C사는 B사에 물품을 공급하며 부가가치세를 면제받았다. 수출 등을 통해 외화를 획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물품을 구매하면 부가가치세를 면제해 주는 제도에 따른 것이다. 물품은 금지금(순도 99.5% 이상인 금)으로 금시장 양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일정요건의 금지금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면세하는 특례제도가 있다.
하지만 B사는 면세를 받은 금지금을 수출하지 않고 국내 도매상 등에 판매해 차익을 남겼다. B사가 금지금을 수출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금지금을 공급한 C사는 부가가치세 면제 대상이 안된다는 점에서 세무서가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하지만 C사는 세금부과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C사가 B사와 공모했거나 구매승인서의 하자를 알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부과돼야할 세금이 면제됨에 따라 국가 재정에 손해가 발생하자 정부는 구매승인서를 발급해준 A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정부는 "은행들은 적법한 구매승인서를 발급해야 할 업무상의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계약서 등을 확인하지 않고 구매승인서를 발급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소송에서는 소멸시효가 쟁점이 됐다. A은행은 "구매승인서 발급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해도 그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은 정부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경과했거나 국가재정법에 의해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이 아닌 5년의 시효기간이 적용된다"며 "구매승인서 발급행위일로부터 5년이 경과했으므로 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세무서가 부가가치세를 부과처분을 했고 C사가 부과처분 적법성에 관해 계속 다퉜으므로 부과처분 취소판결이 확정된 때 비로소 세금을 부과할 수 없게 되는 손해 등을 정부가 현실적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봐야 한다"며 "소멸시효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심 법원은 소멸시효의 계산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조세채권을 효율적으로 확보·관리해야 하고 확보에 장애 사유가 있는지를 조사해 제3자의 불법행위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 그에 대한 적절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다"며 "C사가 물품을 B사에 공급한 때를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정부의 손해배상청구기간이 지났다는 말이다.
대법원은 소멸시효 계산과 관련해 2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가해행위와 그로 인한 현실적인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경우, '불법행위를 한 날'의 의미는 단지 관념적이고 부동적인 상태에서 잠재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손해가 그 후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때"라며 "손해의 결과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때"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부가가치세를 부과 징수할 수 없게 되는 손해의 결과 발생이 현실화된 시점은 세무서가 소송에서 패소한 판결이 확정된 때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 판결 전문은 법원도서관 홈페이지 '판례·판결 정보' 코너 2012. 10. 1. 판례공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건번호 - 대법원 2010다54566 자료제공= 법원도서관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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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계산은 어느 시점부터일까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도 시효 소멸로 행사할 수 없다. 반면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의 기간은 국가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다른 법률에 규정이 없는 한 5년으로 단축된다. 따라서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권리는 5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가 소멸된다.
'불법행위를 한 날'의 의미는 가해행위를 한 날과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시기가 일치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해행위와 손해발생이 시간적으로 차이가 날 때는 언제를 소멸시효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봐야 할까.
세무서는 2000년 1월 A은행이 B사에 구매승인서를 발급해 주는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발견하고 B사에 물품을 공급한 C사를 상대로 부가가치세를 부과했다. C사는 B사에 물품을 공급하며 부가가치세를 면제받았다. 수출 등을 통해 외화를 획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물품을 구매하면 부가가치세를 면제해 주는 제도에 따른 것이다. 물품은 금지금(순도 99.5% 이상인 금)으로 금시장 양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일정요건의 금지금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면세하는 특례제도가 있다.
하지만 B사는 면세를 받은 금지금을 수출하지 않고 국내 도매상 등에 판매해 차익을 남겼다. B사가 금지금을 수출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금지금을 공급한 C사는 부가가치세 면제 대상이 안된다는 점에서 세무서가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하지만 C사는 세금부과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C사가 B사와 공모했거나 구매승인서의 하자를 알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부과돼야할 세금이 면제됨에 따라 국가 재정에 손해가 발생하자 정부는 구매승인서를 발급해준 A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정부는 "은행들은 적법한 구매승인서를 발급해야 할 업무상의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계약서 등을 확인하지 않고 구매승인서를 발급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소송에서는 소멸시효가 쟁점이 됐다. A은행은 "구매승인서 발급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해도 그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은 정부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경과했거나 국가재정법에 의해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이 아닌 5년의 시효기간이 적용된다"며 "구매승인서 발급행위일로부터 5년이 경과했으므로 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세무서가 부가가치세를 부과처분을 했고 C사가 부과처분 적법성에 관해 계속 다퉜으므로 부과처분 취소판결이 확정된 때 비로소 세금을 부과할 수 없게 되는 손해 등을 정부가 현실적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봐야 한다"며 "소멸시효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심 법원은 소멸시효의 계산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조세채권을 효율적으로 확보·관리해야 하고 확보에 장애 사유가 있는지를 조사해 제3자의 불법행위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 그에 대한 적절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다"며 "C사가 물품을 B사에 공급한 때를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정부의 손해배상청구기간이 지났다는 말이다.
대법원은 소멸시효 계산과 관련해 2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가해행위와 그로 인한 현실적인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경우, '불법행위를 한 날'의 의미는 단지 관념적이고 부동적인 상태에서 잠재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손해가 그 후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때"라며 "손해의 결과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때"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부가가치세를 부과 징수할 수 없게 되는 손해의 결과 발생이 현실화된 시점은 세무서가 소송에서 패소한 판결이 확정된 때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 판결 전문은 법원도서관 홈페이지 '판례·판결 정보' 코너 2012. 10. 1. 판례공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건번호 - 대법원 2010다54566 자료제공= 법원도서관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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