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주/언론인/보건학 박사
1984년 12월 3일 밤 12시 30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유독가스가 75만 인구의 보팔시 전역을 덮쳤다. 미국의 다국적기업인 유니온카바이드(지금은 다우케미컬로 합병)의 인도 보팔 공장에서 농약 원료인 메틸이소시안이 36톤 가량 새어나왔다. 유독물질 저장탱크의 안전장치가 미비했고 직원들도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대형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메틸이소시안은 사람이 미량 들이마시거나 노출되더라도 폐와 눈에 심각한 손상을 주어 생명을 앗아가고 실명하게 만든다. 이 유독가스는 공기보다 비중이 커 상공으로 날아가지 않고 지표면에 깔렸다.
2800명이 사고 당일 숨졌다. 나중에 인도 정부가 추산한 피해자 수는 사망 1만여명, 부상자 60여만명으로 집계됐다. 사실상 도시 주민 전체가 재난을 당한 셈이다. 보팔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재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살아남은 사람과 당시 태어난 기형아 등은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시민들은 언제 발병할지 모를 암의 위험에 마음 졸이고 살아간다. 이처럼 그 피해자 수가 엄청났던 것은 조기경보체제가 작동되지 않아 주민들이 제때 대피하지 못한 탓도 크다.
1980년 3월 19일 이탈리아 세베소의 어느 고급빌라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에 맞아 숨진 이는 1976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파올로 폴레티였다. 그는 유독화학물질 누출 재난 '세베소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익메사케미컬의 공장장이었다. 총격을 가한 3명의 남자와 여자는 이탈리아 좌파테러단체 '전선'의 행동대원들이었다. 이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힌 회사 간부들 3명이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나고 나머지 2명도 보석으로 풀려나자 이에 격분해 최고책임자를 살해한 것이다.
밀라노 북쪽에 위치한 세베소라는 자그마한 마을에는 의료용 비누의 원료인 삼염화페놀이라는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다.
인도 보팔사고 땐 1만여명 목숨 잃어
스위스 다국적 제약회사 호프만라로슈의 자회사인 익메사케미컬의 이탈리아 현지공장이었다. 1976년 7월 10일 이 공장에서 반응기 내부의 압력이 올라갔으나 제어되지 않아 안전밸브가 열리는 사고가 터졌다. 다이옥신과 염소가스가 미세입자 구름 형태를 띠고 인근 11개 마을로 펴져나갔다.
소 돼지 닭 등 가축 수만 마리가 죽었다. 이 사고로 바로 숨진 사람은 없었지만 임신부 가운데 50여명이 유산이 됐고 다른 임신부 100여명도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낙태수술을 받았다. 로마가톨릭 교황청도 이들의 낙태를 허용했다.
사고 발생 초기 회사는 누출된 유독물질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 잘 몰라 스위스 모 회사에 샘플을 보냈다. 다이옥신 가운데 가장 독성이 가장 강한 종류가 검출되자 사고 1주일이 지난 뒤 공장을 폐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10여일이 지나 사고의 심각성을 깨닫고 주민들의 강제이주를 결정했다.
세베소 재난은 다이옥신의 독성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세베소 재난은 유독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얼마나 오랫동안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가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 사건 발생 뒤 유럽공동체는 1982년 이와 유사한 산업재해와 환경재난을 막고 사고 시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세베소 지침'을 만들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도 보팔 사건을 계기로 자국에서 유사사건 발생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조사와 제도 정비에 나섰다.
특히 미국은 1986년 '위기대응계획 및 지역주민 알 권리 법'을 제정해 회사가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 제조공정과 사고 발생 때 어떻게 환경에 유출되는지를 낱낱이 주민들에게 공개토록 했다.
주민에 합당한 보상과 철저한 공개를
환경교과서에 나오는 이들 유명 유독화학물질 재난사고를 살펴보면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 사고와 여러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외국에서 발생했던 이들 사건이 주는 교훈을 우리가 일찍 깨달았더라면 경북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과 같은 재난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기는 하지만 보팔 참사와 세베소 재난을 되돌아보면 이번 구미 불산가스 재난을 계기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피해 주민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하고 앞으로 모든 유독화학물질 사용·유통을 주민들에게도 공개하며 노동자에 대해 안전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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