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문-안 후보의 단일화도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안철수 입당론' 같이 들이대는 식의 단일화는 금물이다.
대선이 두 달도 채 못 남은 가운데 판세는 박빙의 혼전이다. 야권, 특히 민주통합당은 그 동안 후보 단일화만 이루면 만사형통일 것이라는 달콤한 꿈에 젖어왔다. 지난주부터 서서히 꿈을 깨고 있다. 단일화는 대선 승리로 가는 필요조건이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두 후보 가운데 단순히 한 후보를 결정하는 물리적 단일화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유권자들과 가치를 공유하면서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는 질적인 단일화가 되지 않으면 단일화는 하나마나다. 여기에 진정한 단일화의 어려움이 있다.
정치공학적인 단일화는 대선 승리와 무관하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후보 단일화가 되면 어느 한쪽 탈락한 후보 지지자의 20%가 여권인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를 찍겠다고 응답했다. 여기에 단일화 할 경우 투표를 유보할 수 있다는 부동층까지 합하면 27~29%에 이른다.(서울신문·엠브레인 조사, 10월 19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출범시킨 1997년, 2002년 대선의 득표 차는 각각 39만, 57만 표에 불과했다. 야당의 정권 창출은 매우 근소한 표차로 이겼던 전례를 볼 때, 문 후보든 안 후보든 어느 한쪽의 지지층 가운데 30% 가까이가 돌아선다면, 단일화해도 박근혜 후보를 꺾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안철수 후보는 지난 주 단일화의 전제로 정치혁신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했다. '협력의 정치(당론에 의한 대결정치 지양), 직접민주주의 강화(중앙당 공천권 폐지), 특권폐지(대통령의 실질적 임명권 대폭 축소, 국회의원 특권 축소)'를 내놨다.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단일화의 중요한 단초라고 할 수 있다.
'가치의 덧셈' 보여줄 수 있어야
안철수 후보가 대선에 나선 이유는 '박근혜 대세론'을 뿌리 채 흔든 '안철수 현상'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다. 그 현상은 기성 정당 운영 방식, 기성 정치 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 총체적인 거부감에서 초래된 것이다. 한국정치에 혁신다운 혁신이 이뤄질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안 후보가 제시한 단일화 물꼬에 민주통합당은 신중하게 '정치쇄신'의 시동을 걸고 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의 시민캠프가 주최한 정치혁신 대토론회 등을 통해 쇄신의 일단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는 △국회의원 특권폐지 △국회의원 연임 제한 △정당공천 개혁 △기초 의원 정당공천 폐지 △민주당의 지도부를 포함한 인적 쇄신 △친노(친노무현) 프레임 극복 등이 중점 제시되었다고 한다. 민주당으로서는 정치 혁신의 당면 과제를 어느 정도 짚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어제 문 후보 선대위에서 핵심 역할을 해오던 '친노 9인'의 핵심 참모들이 용퇴를 선언했다. 후속 인선 등에 따라서는 단일화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일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 후보가 추구하는 가치들이 뺄셈으로 줄어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록 단일화로 두 후보가 한 후보로 줄어든다 해도 양 후보가 추구해온 국정운영의 가치가 덧셈으로 넓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문, 안 후보를 각각 지지해온 유권자들이 비록 자신이 지지해온 후보로 단일화되지 않아도 국정운영에 안심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단일화 과정에서 '가치의 덧셈'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단일 후보의 정책적, 이념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진다고 비판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나 여야 후보 구분 없이 경제민주화, 복지를 내걸고 있는 마당에 정책 노선의 선명성 부각은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국가지도자로서 큰 그림도 보여줘야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단일화 과정을 통해 차기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동북아 정세 변화를 포함한 국가 대전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동안 양 진영은 표심잡기와 지지율 변동에만 신경을 곤두세웠지 국가지도자로서 큰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단일화의 시너지는 이런 것들을 함께 보여줄 때 나타난다.
문, 안 후보 간에는 '정치혁신'뿐 아니라 정책·공약의 통합 등 단일화를 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많다. 하지만 단일화의 수순을 잘못 밟거나, 추진 속도에 엇박자를 낼 경우 서로 상처만 받고 단일화 자체가 깨질 요소들이 많다. 화물을 탁송할 때, 유리제품이나 미술품은 조금이라도 손상이 가면 무용지물이 된다. 문-안 후보의 단일화도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안철수 입당론' 같이 들이대는 식의 단일화는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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