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논설고문
다음달 중국의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를것이 확실시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이 지난 19일 "일본이 코미디를 하고 있다"고 일갈해 화제가 됐다. 그는 방중중인 미국의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이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 커녕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하는 웃기는 짓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차기 최고지도자가 이웃 경제대국에 대고 '웃기는 짓' 운운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매우 결례가 되는 언사다. 댜오위다오에 대한 일본의 국유화조치 이후 중국 각지에서 연일 반일데모가 벌어지고 댜오위다오 일대에는 중·일 간에 군사적 충돌까지 예상되는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는가 싶더니 예상대로 일본은 베이징에 특사를 파견하겠다는 등 꼬리를 내리고 있다. 2010년에도 비슷한 사태가 진행되다가 중국이 경제보복 조치를 취하자 일본이 슬그머니 물러선 전력이 있다.
그러더니 23일에는 도쿄에서 뜬금없이 반한(反韓)데모가 벌어졌다. 그것도 태극기를 짓밟는 등 질이 매우 나빴다. '종로에서 뺨맞고…'란 말이 떠올라 기분이 석연치 않다. 독도 문제로 한국과 마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속이 보이는 코미디다.
일본은 왜 이처럼 '웃기는 짓'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차분하게 그 사연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는 미국이 전후처리를 미숙하게 한 데 큰 원인이 있다.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에 상륙한 후 일본인들의 천황(天皇, 필자는 천황은 천황이라 불러주는 게 옳다고 믿는다. 고유명칭이기 때문이다)에 대한 숭배사상이 예상보다 큰데 놀랐다. 천황제를 폐지하면 국민적 저항으로 또다른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고심 끝에 천황제를 존속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히로히토 천황은 교체했어야 옳았다.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본군국주의 최종책임자였던 히로히토를 그대로 인정함으로서 침략전쟁에 대한 면죄부를 안겨준 결과가 된 것이다.
미국의 전후처리 잘못이 한 원인
댜오위다오도, 독도 문제도 미국의 잘못된 전후처리와 관련이 있다. 독도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때 일본에 빌미를 제공했고 댜오위다오는 1972년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면서 끼워 넘기는 우를 범했다.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고 중국대륙이 공산화되면서 일본의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커진 상황이었다.
일본인들에게는 '인류 최초로 핵폭탄 공격을 받은 국민'이라는 피해의식이 있다. 70년대 필자가 스탠포드대에 있을때 일본어 한 강좌를 들었는데 일어 교과서에 '운명의 쇠사슬'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다. 히로시마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한 의사의 가정이 피폭 이후 어떻게 비참하게 됐는가를 그린 글이었다. 그 글을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피폭자들의 비애에 가슴이 먹먹하게 돼 있었다.
일본이 왜 핵공격까지 받게됐는지에는 설명이 없이 원폭의 피해상황만 후세들에게 교육함으로서 일본은 독일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전후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침략행위는 가능한 은폐하고 일본의 전쟁피해에 촛점을 맞춰 국민을 교육시켜왔다. 따라서 전후 태어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일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잘 모르거나 왜곡해서 이해한다.
독일은 나치독일이 어떤 죄악을 저질렀는지를 스스로 속속들이 국민들에 알리고 피해국민들에 기회 있을 때마다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왔다. 때문에 독일국민들은 자기나라 지도자가 남의 나라에 가서 무릎을 꿇고 사과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천황이, 그들의 지도자가 이웃나라에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비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전후 정치인들의 판단 잘못으로 이제는 일본 정치가 국민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형국이다.
일본정치가 국민에 발목잡혀
독일은 유럽의 지도국가로 거듭났지만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지도적 국가도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을 은폐하려해서는 결코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 피해자가 있는데 어떻게 은폐가 가능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도 엉뚱하게 '웃기는 짓'을 되풀이 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이 거듭날 수는 없을까. 잘 생각해보면 불가능한것 만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모든 역사적 사실을 사실대로 국민들에 진솔하게 밝히고 국민의 양해하에 피해자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해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일본에 그럴만한 출중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나타나야 한다. 역사 왜곡같은 우매한 짓을 말아야 하고 전쟁을 통해 일시적으로 획득한 남의나라 영토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그러나 일본이란 나라에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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