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곽노현과 사르코지, 그리고 오바마

지역내일 2012-10-15

박상주/언론인

거두절미, 먼저 질문 한 가지. 곽노현 18대 서울교육감은 감옥에 갔는데, 사르코지 전 프랑스대통령은 왜 안 갔을까.

그동안 곽 교육감에 들이댄 우리사회의 잣대로 보자면 사르코지는 그야말로 파렴치한 죄를 저질렀다. 곽 교육감은 아무런 사전약속도 없이 곤궁에 빠진 사퇴후보를 도와준 것에 비해, 사르코지는 상대후보를 사전 매수해 주저앉힌 뒤 실제로 돈을 건넸다. 그런데도 왜 곽 교육감만 감옥에 갔을까. 물론 나라마다 법이 달라서 그렇겠지만, 전 세계에 이런 법이 있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일본에도 있다고는 하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 사문화됐다.

너무 뜬금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사르코지 사건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는 게 순서일터. 최근 외신보도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지난봄에 치러진 프랑스 대선 과정에서 같은 보수 계열인 기독민주당 후보를 매수해 출마를 포기시켰다.

기독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부탱은 최근 주간지 '발뢰르 악튀엘'에 지난 2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사르코지 지지를 선언하고 출마를 포기하는 대가로 80만 유로(약 12억원)를 받기로 합의했다고 폭로했다.

부탱 대표는 이 약속에 따라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48만 유로(약 7억2000만원)를 받았지만 32만 유로(약 4억8000만원)는 아직 받지 못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르코지 측은 당시 그같은 약속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법적으로 정당한 계약이라고 해명했다. 프랑스에서는 사전매수도 합법이다.

이젠 곽 교육감 사건을 들여다보자. 사실심인 1, 2심 재판부는 곽 교육감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했다.

사퇴한 후보를 무엇 때문에 매수하겠는가

곽 교육감이 선거와 관련된 일체의 금전 제공을 거부했고, 경쟁 후보였던 박명기 교수 측과의 어떤 합의에도 간여하지 않았고, 박 교수에게 2억 원을 건넨 것은 빚에 허덕이는 그의 딱한 사정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인정했다. 대법원 역시 곽 교육감이 매수합의를 승인하지 않았고, 상대의 어려운 처지를 돕기 위해 돈을 주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혔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곽 교육감을 감옥으로 보냈을까. 곽 교육감에게 적용된 죄목은 법 제정 이후 54년 동안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사실상 사문화된 '사후 매수죄'(공직선거법 232조 1항 2호)라는 법이다. 대법원은 후보자가 사퇴하기 전에 사전 약속이 없이도 사후매수죄가 성립한다는 불가능한 가설을 전제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상식적으로 따져보자. 사전약속 없는 대가지급이 있을 수 있는가. 사퇴한 후보를 무엇 때문에 매수하겠는가. 선거가 이미 끝난 마당에 선거의 공정성을 어떻게 해칠 수 있는가.

사후매수죄 규정은 죄형법정주의,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 원칙, 적정성의 원칙, 평등원칙 등에 반하므로 위헌이라는 의견들이 법조계에서 폭넓게 개진되고 있다.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추상적이고, 무엇이 금지된 행위인지 불명확하고, 법관이 자의적 해석을 할 소지가 다분해서 법치주의 원칙에 위배되고, 본질적으로 동일한 공직선거법 위반자 중 사후매수죄를 범한 자에게만 차별적으로 공소시효가 무한정 연장되고…. 사후매수죄는 이처럼 무수히 많은 위헌요소들을 안고 있다. 이런 위헌 법률에 근거해서 내려진 대법원 판결은 법치주의의 근간과 민주주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한 것이다. 한번도 적용한 적이 없는 사문화 법률을 관속에서 꺼내어 1000만 서울시민들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 교육감을 낙마시킨 것이다.

선진국은 물론 저개발국가에도 없는 법규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당선 뒤 자신의 경쟁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또한 힐러리의 선거빚 2000만달러(약 200억원)를 청산하는 데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만일 오바마가 이런 일을 우리나라에서 벌였다면 당장 감옥행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명백한 사후매수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후매수죄는 선진국은 물론 금권선거가 판치는 저개발국가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는 법규다. 인간의 상식에 반하는 법, 합목적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법, 법이 개입할 필요가 없는 영역에 개입하는 법은 하루 속히 정리돼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위헌결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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