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올해 12월 19일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대선후보에 관심도 없고 정치 이야기를 지겨워한다. 이번 대선처럼 재미없는 선거는 1987년에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복원된 이후 처음이다.
유권자들이 짜증을 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대체 누구를 왜 지지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책과 무관하게 좋아하는 후보를 무조건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고정표인 집토끼 유권자들은 고민이 없지만 전반적으로 정치 혐오증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집토끼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보수파가 대량 기권을 유도해 불계승을 거두려고 정책 이야기를 기피한다는 음모론도 있지만 이른바 민주 진보 진영의 후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력 후보들이 모두 내가 누구의 자손이고 후배이며 왕년에 무엇을 했다는 옛날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을 시원하게 밝히지 않는다. 물론 어설프게 정책 논쟁을 하다가 약점을 잡히는 것보다는 원칙론만 강조하고 인품을 과시하는 것이 안전한 처신이기는 하지만 국가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 후보의 모습이라고는 볼 수 없다.
많은 논객들이 근대화, 민주화와 같은 거대한 쟁점이 일단 정리되었고 민원이나 고충 처리를 하는 생활정치가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영웅이나 투사만 정치 지도자를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즉, 고객 지향적 서비스 정신을 가진 부드러운 도우미가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한국의 현실을 보면 정치적으로 큰 결단을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모든 대선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경제 민주화도 자본주의 체제의 내용에 대한 이념적 선택이 필요한 사안이다.
G2 시대에 대한 해석 가장 중요
재계 단체에 찾아가서 스스로 민주화를 해야 한다고 면피성 발언을 하는 후보, 이미 형성된 문어발식 재벌 계열사 구조는 그대로 넘어가고 앞으로 잘하자는 후보, 자기가 집권 세력일 때 재벌의 편의를 봐준 일은 잊고 강경 발언을 하는 후보가 재벌의 횡포를 시정할 있다고 믿을 유권자는 없다. 특히 재벌 기업의 노동문제나 하청기업 착취에 대한 입장을 명백하게 밝히는 유력 대선후보가 없으니 일반 시민들도 경제 민주화 공약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통일문제나 국제관계를 논의하려면 중국이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치고 미국의 맞수로 등장한 G2 시대에 대한 해석이 가징 필요하다. 그러나 감히 미국과 중국에 대한 자기 견해를 얘기할만한 배짱을 보이는 대선후보는 없다. 따라서 이들은 제주도 강정의 해군기지 문제도 얼버무리게 마련이고 공연히 서해 NLL이나 천안함 사건을 끄집어내 서로 말꼬리나 잡고 있다.
모든 국민이 고통을 느끼는 교육 문제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 전두환도 실패한 사교육 금지령을 다시 내리겠다는 보수세력도 답답하지만 10년 동안 민주세력이 집권을 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자체진단도 없이 입시제도나 건드려 인기를 얻겠다는 야권도 한심하다.
교육과 연구는 소홀히 하면서 비싼 등록금을 받아 챙기는 대학 주변 이익집단과 대결을 선언하는 대선후보가 아쉽다. 조선시대 대원군도 사회개혁 차원에서 유생들이 모여 무위도식하며 당쟁을 조장하는 서원을 철폐했다.
기득권집단과 정면대결하는 큰 정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냉전시대에 치러진 1971년 대선에서 예비군 철폐만이 아니라 주변 4대강국과 협의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자는 공약을 내세운 김대중, 금융 실명제를 실시하고 하나회 군부 세력을 몰아낸 김영삼은 통이 큰 정치인이었다.
정치자금으로 영향력을 유지하는 보수 정당의 지도자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민주화라는 시대적 사명을 회피하지 않았으며 시민들에게 재미있는 정치 뉴스를 제공했다. 물론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서 사선을 넘나들며 정치를 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보수 민주 진보를 막론하고 당면한 거시적 쟁점을 피해 가며 꼼수로 표를 끌어모아 집권하려는 후보에게 국가를 맡길 수는 없다. 한국에는 거대 기득권 집단과 정면으로 대결할 수 있는 큰 정치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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