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프레시안 기획위원
바다출판사/신경인문학 연구회/1만9800원
뇌과학은 과학을 넘어 인간으로 실험실을 넘어 세상으로 거대한 착각을 넘어 현실로 답을 찾아 나서야 함을 일깨운다
일전 한국고용정보원이 내놓은 10년 후 각광받을 직업 리스트를 보면서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직업이 있었다. 뇌기능분석가와 로봇감성치료전문가.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뇌와 관련된 직업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뇌과학. 이 역시 일반에겐 생소하지만, 전문 분야에선 이미 상당한 영역을 쌓고 무한 확장 중인 학문이다.
뇌과학은 단순히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이미 법정에서, 병원에서, 학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듯 뇌과학이 외연을 넓히게 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파생되기 시작했다.
'뇌에 문제가 있는 범죄자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 '식물인간에게 인격이 있는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약을 먹으면 안 되는가?' '과연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등의 의문은, 뇌과학이 과학을 넘어 인간으로, 실험실을 넘어 세상으로, 거대한 착각을 넘어 현실로 답을 찾아 나서야 함을 일깨운다. 뇌과학은 이제 가장 복잡한 융합학문(convergence science)으로 자리매김됐다.
뇌과학과 관련한 윤리적, 법률적, 사회적 고민에 대해 15명의 학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지난 몇 년 '신경인문학 연구회'의 이름 아래 모인 신경과학, 의학, 법학, 철학, 인지과학, 과학기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다.
'뇌과학, 경계를 넘다'는 뇌과학의 발전에 따라 수반되는 제반 문제들의 인문·사회학적 담론을 다루고 있다. 이 주제와 관련, 외국의 논문을 엮은 책이나 번역서는 많았지만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으로만 이루어진 책은 처음이다. 신경인문학 연구회는 2010년 편역서 '뇌 속의 인간, 인간 속의 뇌', 2011년에 세계적인 신경윤리학자 닐 레비의 '신경윤리학이란 무엇인가'를 번역·출간한 바 있다.
뇌과학과 법·윤리 간의 충돌에 대해 살펴보자. 범죄자의 뇌 구조에 이상이 있음이 밝혀질 경우, 그의 죄는 과연 그의 탓인가, 그의 뇌 탓인가? 만약 뇌 구조의 이상 때문에 벌어진 범죄로 판명되어 그에게 무죄가 선고된다면 뇌과학은 범죄자에게 면죄부가 되는 것일까?
제프리 번스 캔자스의대 교수(신경과학)연구에 따르면, 40대의 아동 성추행범죄자가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받은 뇌 스캔검사에서 종양이 발견됐고 종양을 제거한 후 아동 음란동영상을 수집하던 그의 증상은 없어졌다.
하지만 그 후 종양이 자라면서 그의 범죄적 증상은 재현됐다. 이 경우 그를 징벌할 것인지, 뇌 이상으로 판단할 것인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지난달 30일 치매로 고생하는 부인을 돌보던 어르신이 아내를 숨지게 하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했다. 치매환자 요양 시스템이 미흡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으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뇌과학을 통해 치매를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낙관적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인지적 능력을 치료하고, 관리하고, 보호함으로써 치매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 같은 희망은 인지력 저하로 존엄성을 상실하는 불행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는 환자나 가족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
국내 영어 사교육시장 규모가 대략 국가교육예산의 3분의 1 수준인 15조원 정도라고 한다. 영어를 잘해야 사람구실을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젖을 겨우 뗀 유아에게 영어를 가르치는가 하면, 발음이 잘되도록 혀 밑을 찢어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영어 잘 하는 뇌는 따로 있나? 외국어를 11세 이전에 습득한 '조기 이중언어 구사자'와 11세 이후에 습득한 '후기 이중언어 구사자'의 뇌를 관찰한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 분석은 특히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분석 결과 '조기 이중언어 구사자'는 모국어와 외국어를 처리하는 뇌의 영역이 같고, '후기 이중언어 구사자'는 모국어와 외국어를 처리하는 뇌의 영역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질의에 응답할 때 사용하는 뇌의 영역 역시 전자에 비해 후자가 넓었다. 이는 후자의 경우 일단 받은 질문을 추론으로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뇌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반면, 전자의 경우는 즉각 답변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
많은 반대 의견들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석 결과는 영어 사교육시장에서 조기에 영어 학습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었다.
교통사고로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이 사업상 매우 중요한 정보를 기억해 내지 못해 큰 손해를 입은 것과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모든 정보를 아이폰에 기록해 놓는 사람이 아이폰이 고장 나서 사업상 큰 손해를 입은 것을 동등하게 볼 수 있을까?
최근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는 뇌를 비롯한 몸 전체, 그리고 몸을 둘러싼 도구와 환경에까지 마음의 근원을 확장한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이론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휴대 전화가 망가져 그 안의 수많은 연락처를 잃은 것도 마음의 손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마음이 뇌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주변의 도구에까지 확장된다는 것.
확장된 마음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면 뇌와 아이폰은 동등하다. 뇌와 휴대전화의 가치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생각하면 이 같은 주장은 황당하다. 하지만 뇌과학이 발전해, 아이폰과 같이 뇌도 쉽게 교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할까?
'확장된 마음'을 주장하는 학자들조차도 그 확장의 범위와 윤리적 기준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이 같은 논쟁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본떠 구현하는 로봇 연구와 인간의 마음의 본질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인문학·문학·예술 분야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중요한 담론이 되어가고 있다.
딱딱할 수 있는 담론을 논문식이 아닌 스토리텔링식으로 이끌어 술술 읽어 나갈 수 있는 것도 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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