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새해다. 처음은 늘 새롭고 설렌다. 모든 시작에는 하얀 도화지를 펼 때의 두근거림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말에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마력이 있다. 첫사랑, 아이의 첫 옹알이모두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고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말들이 아닐까? 첫 월급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첫 월급을 받았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필자도 첫 월급으로 산 빨간 내복을 부모님께 자랑스레 내밀던 그 순간의 벅찬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첫 월급의 감격은 희미해지고 대신 그 자리는 신용카드 대금이나 대출이자를 내야 하는 걱정들로 메워진다. 기다리던 월급날이 돌아와봐야 빚잔치를 벌이고 나면 정작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월급은 오르는데 이상하게 지갑은 점점 더 얇아져 간다. 소득이 늘어나면 덩달아 소비도 증가한다는 소위 파킨슨의 법칙때문이다.
실제 한 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월급을 받은 지 약 2주 만에 지갑이 바닥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6월, 취업포털 인쿠르트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월급 소모기간에 대해서 물은 결과 64.2%가 평균 11.7일이면 월급을 다 써버린다고 응답했다. 월급을 타기 무섭게 빈 지갑이 되어서 다음 월급날을 목메고 기다리는 직장인이 부지기수라는 얘기다. 왜 그럴까? 주변이 온통 지갑을 노리는 유혹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현대인들의 필수품처럼 되어 있는 신용카드다.
신용카드로 가불시스템에 갇혀
"가을 빚에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처럼 신용카드의 유혹은 달콤하다. 신용카드는 당장 돈이 나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에 돈 갚으라고 아우성 하는 대금 청구서를 보고서야 때늦은 후회를 한다. 그래서 신용카드가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불 시스템에 갇혀 산다. 마치 시간의 흔적처럼 신용카드 명세서가 지갑에 쌓여간다. 결제일은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하고 신용카드 대금이 쓰나미처럼 돈을 쓸어가 버린다. 지갑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낸다.
마이너스통장도 신용카드만큼이나 소비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다. 마이너스통장은 요구불예금계좌에 신용한도를 설정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빼서 쓰고 다시 채워 놓으면 된다. 돈을 빌려 쓰고 다시 갚는 것이지만 마치 (자기)돈을 통장에 넣어두고 빼 쓰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마이너스통장' 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일반대출에 비해 조기상환에 대한 수수료 부담도 없고 다시 빌리려면 신규로 절차를 밟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따르지 않는다.
또 이자는 마이너스(-)로 표시된 금액에 대해서만 내면 된다. 이런 편리함 때문에 보통 직장인이라면 마이너스 통장 1~2개씩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번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하게 되면 원래대로 채워 넣기가 결코 쉽지 않다. 마이너스통장을 대출이 아닌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쓰다 보면 어느새 사용한도가 꽉 차버린다. 그래서 일단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적자인생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월급을 타자마자 빚 잔치를 벌이고 다시 빈 지갑이 되어버리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너스통장을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마이너스는 영원한 마이너스"라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신용카드와 마이너스통장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미래의 소득을 저당 잡히며 사는 것이다. 신용카드와 마이너스통장으로 늘어난 오늘의 지출이 내일을 가난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번 마이너스통장 사용하면 적자 벗어나기 힘들어
<탈무드>에서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세 가지가 있다고 얘기한다. 고민과 말다툼 그리고 빈 지갑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에게 가장 크게 상처를 주는 것은 빈 지갑이라고 한다. 독일의 문호인 괴테마저도 "지갑이 가벼우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늘 지갑이 비어 있는 사람들의 문제는 소득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빚을 줄이지 못하는 소비습관에서 비롯된다. 버는 것 이상으로 소비하는 만큼 부자가 되는 길은 점점 더 멀어지고 삶은 고달파진다. 바로 지갑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가로 새겨야 할 삶의 경구다.
박철
국민은행 인재개발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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