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화된 세상,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

지역내일 2013-01-14 (수정 2013-01-15 오전 7:57:23)
한국경제 희망을 쏜다 2부. 사람이 희망이다 ③지방국립대생의 외침

2013년. 세계와 한국경제에 거는 기대가 그리 높지 않다. 저성장, 장기침체, 고령화, 양극화 등이 뒤섞인 2013년에 또 한번 기적을 바라는 건 과욕이다. 그래도 마음만 열면 도처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이 되어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다문화 자녀들, 실력만으로 도전할 수 있는 차별없는 한국사회를 꿈꾸는 고졸, 제2의 도전이 힘겹지만은 않은 경력단절여성과 시니어들. 신성장동력은 거창한 구호에 있지 않다. 그들의 희망이 곧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자 기적이다.

"돈 때문에 목표로 했던 취업이나 자격증 준비를 포기하는 친구들 많아요" 김정환(경영학, 2010 입학)

"해야만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못해본 채 졸업할 것 같아요" 나보배(자율전공, 2010 입학)

"다들 가는 길 벗어나는 게 처음엔 두려워 … 변화한다면 얻을 게 있다고 믿어요" 조준형(경영학, 2008 입학)

"친구들은 공무원 준비한다고 노량진 가고… 졸업 앞두고 불안감이 커져요" 신원경(경영학, 2009 입학)


10일 서울 용산역에서 광주역까지는 KTX로 3시간 20분 남짓 걸렸다. 광주역에서 인터뷰할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전남대까지는 택시로 10분 정도. 이동하는 3시간반동안 상상한 대학교 3, 4학년생의 모습은 취업열풍 때문에 스펙쌓기에 올인하고 있는 찌든 모습이었다.

전남대 학보사 사무실에서 만난 나보배 조준형 이정환 신원경 학생은 상상과의 '싱크로율'이 40%쯤 됐다. 나머지는 청춘이라는 밑천을 가진 젊은이들답게 희망의 색깔이 더 돋보였다. 다만 100% 청춘스럽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은 날카로웠다. 뭔가 거창한 꿈을 꾸는 것은 고사하고 번듯한 직업을 갖는 게 꿈이 되어버린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어놓고 이제와 도전정신이 없다는 둥 뭐라 하는 기성세대와 정책당국에 대한 황당함, 학점과 토익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은 이상적일지언정 무시할 수 있는 외침은 아니었다.

사회의 프레임에 갇히기보다 더 넓은 세상에 눈을 돌릴 것을 주문하고 스스로 그런 길을 걷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돈, 돈, 돈 … 돈의 압박에 흔들리는 꿈 = 돈의 압박이 생각보다 강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취업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도, 취업 대상을 고르는 상황에서도 핵심은 '돈'이었다.

대기업 재무파트에서 일하고 싶은 경영학과 3학년 이정환 학생은 "한국사회는 대학이라는 곳을 갈 수밖에 없게 해 놓고는 학자금 대출로 빚을 내게 만들어 취업을 하고도 계속 빚을 갚아야 해요"라며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차가 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과 업무강도의 차이 또한 매우 커요"라고 말했다. "돈 문제 때문에 목표로 했던 취업이나 자격증 준비를 중간에 포기하고 빨리 일자리를 찾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올 3월부터 취업전선에 나설 계획인 경영학과 4학년 신원경 학생은 언론인의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지역언론이나 진보언론을 생각하고 있는데 (언론사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그러다보니 내 생활도 제대로 안 될 것 같아 머뭇거리게 돼요"라고 목소리를 줄였다.

역시 기자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나보배 학생도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선 딱히 내세울 부분은 없다. 보배 씨는 올해 4학년이 된다.

"풍족한 편이 아니에요. 제가 둘째인데 형제가 모두 넷이에요. 돈이 없으면 안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긴 하지만 1년 후 졸업했는데 취업재수를 할 경우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수 없으니까 학보사에서 일하며 번 돈을 모두 적금으로 모으고 있어요. 돈 안 달라고 할테니 저에게 시간을 달라고 말하기 위해서요."

◆뿌연 미래 … "대학 졸업하기 싫어요" = 꿈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정환 씨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특별한 꿈'을 갖고 있다. 이 씨는 "평범하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광주지역에서 일하고 싶어도 안정되고 성장성있는 기업을 찾기 어렵고 서울의 로펌도 지역차별이 심해 엄두를 내기도 힘들어요."

그는 전문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지만 앞은 뿌옇기만 하다.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필요할 것 같아 당분간 휴학하고 준비할 계획인데 문턱이 너무 높아 사실 좀 두려워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것저것 건드려 보긴 하지만 불안감은 더 쌓여가고 있다. 만만하다 싶은 것은 확실한 동아줄이 아닌 듯하고, 확실하다 싶은 것은 문턱도 높고 경쟁도 세다.

원경 씨 역시 불안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꿈도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현실화됐다.

"(대학신문사에서) 지역언론을 취재해다보니 정부와 지자체 지원금에 연명하는 모습을 보게 됐고 과연 이런 환경에서 기사 내용이나 영향력 등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당당해 보이던 그도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와 보니 취업은 될까 불안감이 커져요. 막연한 불안감이죠. 친구들은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고 노량진으로 올라가기도 하구요"라며 말꼬리를 내렸다.

보배 씨는 학교를 졸업하기 싫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가족에게 부담을 덜 주기 위해 취업재수용 적금을 붓고 있는 꿋꿋한 보배 씨지만 대학생활의 자유를 유예하고픈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들어가면 하고 싶은 일 적어놓은 걸 우연히 발견했어요. 책도 많이 읽고, 배낭여행도 가고 잔뜩 적혀 있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3년 동안 해야만 하는 일을 충실히 하다 보니까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은 하나도 못 했더라고요. 이대로 졸업해야 한다는 게 좀 싫어요."

◆"왜 친구들이 사회에서 만들어진 프레임대로만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 친구들이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는 데 비해서 조준형 학생은 다른 친구들과 확연히 차이 나는 생각을 털어놨다. 준형 씨는 장래 M&A전문가를 꿈꾸면서 현재 해외유학을 준비중이다. 그는 왜 친구들이 사회에서 만들어진 프레임대로만 가려고 하고, 그 바깥의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지에 대한 답답함을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시간 없어서, 돈이 없어서 여행 못 간다고들 하는데 저도 무전으로 여행 가 봤거든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충실한 모습이 안타까워요. 자신을 억압하니까 사회가 더 억압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버지는 교수, 어머니는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가정환경 덕분에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봤다. 준형 씨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자기만의 논리를 피력했다.

"우리나라는 이거 아니면 안 된다, 이 방향이 아니면 너는 실패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너무 획일화를 시키는데 결국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는것, 자기만의 방향을 찾는 것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다들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그 길을 벗어나는 게 당연히 누구나 두렵죠. 저도 성공할지 실패할지 두려움이 있어요. 하지만 그걸 너무 걱정하다 보면 변화해서 얻을 것을 생각하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버릴 수 없는 지역사랑 =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취업이 꿈인 세상', '지역을 죽이고 중앙만 사는 세상', '서열화와 등급화로 패기 용기 창의적 사고를 빼앗아간 세상'이지만 그러나 청년은 꿈의 가장자리를 놓지 않았다.

원경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발행하더라도 국민주로 시민이 참여하는 언론이 자본으로부터 점차 독립하면서 (언론의)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의욕이 넘쳐날 것"이라며 지역언론 중 일부의 실험정신을 높이 샀다. 지역언론에서 꿈을 펼칠 수 있다는 생각을 접지 않은 것이다.

정환 씨 역시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 중소기업에서도 꿈을 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하게 되면 중소기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역에서 일하고 싶지요. 지역 중소기업이 제대로 살려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해요."

원경 씨와 정환 씨는 이렇게 서울중심적인 한국사회에서도 지역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대학생들에게 왜 중소기업에 가지 않으려고 하느냐, 왜 서울로만 올라가려고 하느냐고 비판하기 앞서 '대학생들이 캠퍼스에서 꿈을 꾸고 도전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줘야 할 기성세대의 책임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배 씨는 인권·노동 분야에 특화된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등급화된 사회,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배 씨 입장에선 사회의 그런 분야야말로 언론이 보듬어줘야 할 부분이라고 봤다. 보배 씨는 "사람들이 저보고 이상주의자라고 하기는 하는데, 이상을 꿈꿔야 결국은 뭔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계속 이상을 꿈꾸려고요"라면서 밝게 웃었다.
박준규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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