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석유가 나라 망칠 것이다

지역내일 2013-01-15
언론인 전 한국일보 추필

베네수엘라는 한국 면적의 10배가 넘는 국토와 사우디에 버금가는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는 자원 부국이다. 만약 한국이 지금 바로 베네수엘라의 국토로 변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인들은 아마 "10년 내에 미국과 중국에 맞먹는 세계 3대 강국을 만들겠다"고 장담할 것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는 코코아와 사탕수수를 주로 생산하던 가난한 농업국이었다. 영국인 지질학자 조지 레이놀즈가 1922년 베네수엘라 마라카이보 평원에서 시추공을 뚫었을 때 이 나라는 운명의 전환점을 맞았다.

나라 안으로 외화가 폭포처럼 쏟아지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민생활 전 부문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베네수엘라 권력자들은 집권할 때마다 장미 빛 비전을 제시했다. 쏟아지는 오일달러를 갖고 부유한 선진국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들의 이런 꿈은 번번이 빗나갔다. 기술과 자본이 없고 국민의식 수준이 낮은 제3세계에 속한 베네수엘라는 경제구조가 석유 수출에 극도로 편중되면서 산업의 다양성과 경쟁력은 붕괴되고, 국민의 근로의욕과 창조정신은 고갈되었으며, 석유 돈을 먹기 위한 투쟁이 정치권을 비롯하여 전 분야에서 벌어지면서 부패가 만연해졌다.

권력자가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가난한 대중을 달래려고 석유에서 나온 돈으로 선심을 쓰는 포퓰리즘 정책이었다. 한마디로 석유 유출로 바다가 황폐되듯 오일 달러가 국민정신을 오염시켜 버린 것이다. 이른바 '석유국의 저주' 에 빠진 것이다.

"10년 후 20년 후 석유 때문에 나라가 황폐해질 것이다." 사우디와 함께 1960년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창설했던 베네수엘라의 에너지장관 파블로 알폰소가 50년 전 남긴 말이 적중해 온 셈이다.

지난 14년간 베네수엘라를 통치해온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권력의 종착역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 20% 이상이 빈곤층 못 벗어나

대통령 4선에는 성공했으나 4번 째 암 수술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1인체제의 권력이 끝나면 찾아올 것은 정치적 혼란이다. 그는 볼리바르 사회주의 혁명을 외치며 집권했지만 '석유국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2900만명의 국민 중 20% 이상이 빈곤선(하루 생활비 1.25달러) 이하에 머물러 있다.

1954년 출생한 우고 차베스는 타고난 혁명가였다. 유소년 시절 한때 미국 메이저 리그 선수 생활을 꿈꿀 정도로 야구를 잘했고, 그림과 만화에도 소질이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 시절 그의 정신을 지배한 것은 사회주의, 칼 마르크스, 볼리바르 장군 그리고 혁명이었다. 카스트로와 가다피는 그가 꿈꾸는 혁명 모델이었고, 체 게바라는 그의 우상이었다.

카를로스 페레스는 베네수엘라의 석유입국(石油立國)을 부르짖으며 두번이나 집권했다. 그러나 1990년 대 초 국제유가의 변동성 때문에 경제가 엉망으로 되면서 국민의 원성에 휩싸였다. 1992년 2월 스위스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비상전화가 울렸다. 군사쿠데타였다. 페레스 대통령은 관저 뒷문으로 빠져나와 피신했다.

이 쿠데타에서 수도 카라카스에 진입한 병력의 우두머리가 38세의 우고 차베스 중령이었다. 차베스는 대통령 관저까지 점령했지만 혁명 성공을 선포할 국영 텔레비전 방송회사를 접수하는 데 차질을 빚는 바람에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마이크 앞에 끌려나와 저항중인 쿠데타군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2분짜리 연설을 강요당했다. 그런데 그 연설이 차베스의 운명을 바꿨다. 군복을 입은 청년장교의 신선한 인상이 각종 이권과 부패에 찌든 기존 정치인들의 모습과 너무 대조를 이루며 민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감옥에 있었지만 유명인이 되었다.

머리 속에 깃든 정신이 국가 운명 결정

페레스 대통령이 탄핵으로 축출되고 난 후 들어선 라파엘 칼데라 대통령은 1994년 차베스를 석방해줬다. 차베스는 이때부터 총구가 아니라 선거를 통한 집권 시나리오를 세웠다. 그는 부패와 불평등과 사회적 소외를 규탄하며 선거운동을 벌여서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집권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차베스는 석유를 내치와 외치의 수단으로 철저히 이용했다. 저소득층에 재정을 쏟아 인기를 유지하면서 오일달러로 이웃 남미국가를 지원하며 반미 연대를 구축해나갔다. 고유가도 그를 도왔다. 그러나 그의 통치 아래서 베네수엘라의 국가 체질은 건강해지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의 교훈은 명료하다. 한 국가의 운명은 땅 속에 묻힌 자원이 아니라 국민의 머리 속에 깃든 정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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