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동국대 신방과 겸임교수
지난 10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대학입학전형위원회가 발표한 '2014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 계획'을 보고 먼저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아,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이미 들어갔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잖고 내년에 보내야 한다면 얼마나 골머리를 썩어야 했을까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잠시, 바로 걱정이 됐다. 그렇잖아도 교육 양극화가 극심해 사회 계층이 고착화하는데, 왜 대학입시는 갈수록 복잡해져서 학생이나 학부모가 제 힘만으로 '더 나은' 대학 가기가 점점 힘들어질까. 기가 막혔다. 현재 고교 2학년생들은 내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볼 때 이제까지와는 달리 훨씬 복잡한 선택을 해야 한다. 국어·영어·수학 등 비중 큰 3 과목에서 쉬운 문제지인 A형과 어려운 B형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이다. 세 과목에서 두 유형 가운데 택일을 하니 그 조합은 8가지(2×2×2)이다. 하지만 어느 대학도 세 과목 모두에서 '어려운 B'를 요구하거나, 국어·수학 두 과목에서 동시에 B형을 요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수험생들의 선택 대상은 사실상 6가지 유형이다.
대입 제도는 지금도 지나치게 복잡하다. 수시 모집이 있고 정시가 있다. 수시는 수시대로, 정시는 정시대로 논술을 보는 대학도, 안 보는 대학도 있다. 입학사정관제 채택 역시 대학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오죽하면 대학입학 전형이 3000~3600 가지나 된다고 하겠는가.
3000가지가 넘는 대학전형 방식
거기에 단일했던 수능마저 여섯 유형으로 나뉘니 내년에는 전형 종류가 얼마나 늘어날지 짐작도 하지 못할 일이다. 새로운 대입 제도는 딱 한 쪽만 빼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심각한 부작용을 남길 개연성이 크다. 첫 번째 피해자는 대학가가 될 터이다. 우리사회에는 '서-연-고-서-성-이-한-중-경-외-시'라고 학생들이 통칭하는 대학 서열이 있다. 하지만 이는 학생들의 선호도를 나타내는 순서일 뿐 공식적인 '서열'은 아니다. 새 제도는 이를 공식화할 위험성이 농후하다. '쉬운 A'를 많이 허용할수록 그 대학은 수준 낮다고 치부되고 자연히 1류, 2류, 3류 그룹으로 분류되기 십상이다.
난이도 조절 또한 큰 문제이다. 해마다 수능 성적이 발표되면 과목별 난이도에 따라 수험생들 사이에 희비가 교차되고 대학 선택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쉬운 A'와 '어려운 B'를 처음부터 나눈 만큼 난이도 차이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숙제를 추가했다. 게다가 A·B를 모두 허용하는 대학은, 어려운 B형을 치른 수험생에게 과목별로 가산점을 5~30% 줄 계획이다. 하나의 유형으로 봐도 제대로 안된 난이도 조절이 새 제도에서 정밀해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내년 수능 성적이 발표되면 혼란은 극심해지고 눈치작전과 '로또 입학'이 판을 칠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건 공교육 붕괴이다. 평준화 탓으로 지금도 고교 교실에는 상위 1%와 하위 1% 학생이 공존한다. 게다가 전형 방식까지 3000여 가지에서 얼마나 더 확대될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선택형 수능' 수명 길지 않을 듯
그렇다면 결국은 입시전문 학원에 의존해야 한다. 새로운 대입제도의 유일한 수혜자가 학원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0월 국세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학원사업자의 연간 수입 총액은 12조4576억원에 이르렀다. 1년 새 7.9%, 금액으로 1조원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다. 새 제도에 따라 학원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대입제도 관련 공약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방향성만은 '단순화'로 동일하다. 그렇다면 내년에 도입하는 선택형 수능 방식은 그 생명이 길지 못할 게 뻔하다.
그런데도 이를 추진한 대교협과 교육 당국의 속내는 뭘까 궁금하다. 물론 사교육은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공교육과 사교육은 병행해서 발전해야지 한쪽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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