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헌인마을, 철거 5년째 그대로 "땅값만 2배"
부천 중3동, 입주예정일 올해 말인데 '허허벌판'
김포 신곡마을, 철거만 하고 시행사 부도, 조합해체
오는 20일이면 '용산참사' 4주기다. 개발 광풍에 휘말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서울 용산4구역은 부동산 경기 악화 등으로 정작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주차장으로 전락했다.
문제는 무책임한 철거로 주민들의 삶이 망가진 곳이 용산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강제철거하더니 창고비까지 요구= 박정희 정권 시절 한센인 마을로 조성됐던 서울 내곡동 헌인마을은 가구단지로 성장했다.
그러나 2002년 서울시가 '헌인마을 도시계획용도지역변경계획'을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 등이 프로젝트금융회사 '우리강남 PFV'를 설립, 4270억원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사업에 돌입했다.
가구상 강경일(48)씨가 97년 입주할 때만 해도 헌인마을은 장사가 잘 됐다. 그러나 2006년부터 개발 소문이 돌더니 원인모를 화재가 잇달아 발생했다. 2008년 8월 철거용역 1500여명이 들이닥쳤고 강씨는 10원도 못 받고 쫓겨났다. 당시 88개 업체가 철거됐고 지금은 가구단지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헌인마을은 2009년 개발계획고시와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가 진행됐지만 우리강남PFV의 재무구조 악화 삼부토건·동양건설의 자금난으로 지금까지 개발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공사는 시작하지도 못한 채 대출이자비용이 늘어 땅값만 오르고 있다. 2006년 당시 3.3㎡당 평균가격이 750만~800만원 수준이던 땅값은 현재 1400만원 수준까지 뛰었다.
강씨를 비롯해 헌인마을에 남아 가구가게를 열고 있는 사람은 소수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매출은 급감했고 가게 열 때 진 빚은 그대로다. 개발이 안 되다보니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강씨는 "(철거 때)가게 물건들을 다 빼앗겼지만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빼앗아갈 땐 언제고 창고비 감당이 안되니까 창고비까지 요구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동네 황폐하니 일거리도 안줘" = 소규모 공장이 많은 경기도 김포 신곡마을도 철거는 '속전속결'이었지만 개발은 역시 '멈춤' 상태다.
2006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신곡마을은 당시 2개 업체가 각각 땅을 매입하더니 나중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매입한 땅은 '통합추진위원회'가 다시 매입하는 과정을 거쳐 총 3차례나 권리가 이전됐다. 그만큼 땅값도 뛰었다.
추진위는 다시 이 땅을 시행사 '새날'에 팔았다. 부지가 넓어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던 새날은 직접 시공을 시도했으나 자금난으로 결국 부도가 났다. 조합조차 해체돼 신곡마을 개발은 중단된 상태다.
철거는 2008년 거의 이뤄졌지만 마을은 황량하다. 철거에는 250여명의 용역이 동원됐다.
이곳에서 기계 부품공장을 운영하는 조규승(57)씨는 "매출이 급감해 기계를 상당부분 팔았다"며 "주변이 철거지역이다보니 풍경이 황폐해 고객사들이 방문해도 일거리를 주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조씨는 "관청에서는 조합이 해체됐는데 다시 재신고서가 들어오면 그 때가서 논의하라고 한다"며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대책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허허벌판 … 견본주택도 철거 = 경기도 부천시 중3동은 2003년부터 재개발조합추진위에서 재개발조합 설립 동의서를 받기 시작하는 등 개발 움직임이 일었다.
조합이 설립되고, 관리처분인가가 나더니 2008년 말부터 철거가 조금씩 시작됐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김명희(41)씨를 비롯한 세입자들은 2008년 9월부터 퇴거요구를 받았다. 상가주인들이 "조합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가게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개발 사업전에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더라면 권리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텐데 보상을 요구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듬해부터 철거용역업체가 지역에 상주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아파트 건설이 완료된 주변지역들과 달리 중3동은 아직도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다. 2009~2010년 자금문제로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2010년 10월 PF대출로 1500억원을 조달하고 사업승인을 받았다. 한동안 안보이던 철거용역들이 다시 마을을 돌아다니며 건물을 부수고 폭력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집이 철거되자 주민들은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고, 용역들이 몰려와 천막을 철거했다. 이런 힘겨루기가 일상화됐다.
그러나 입주예정일이 올해 하반기였던 이 개발사업은 아직 첫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견본주택마저 철거됐다.
◆"삶에 구멍이 났다" = 철거로 파괴된 마을 주민들의 삶은 힘겹다. 헌인마을 강씨는 "인생의 청사진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 같다"며 "이 상태가 계속되는 한 삶의 구멍도 계속 뚫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 중3동 김씨 역시 "벽에 대고 싸우는 느낌"이라며 "다시 가게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신곡마을 조씨는 "봄이 되면 마을 주민이 모여 잔치를 하는 등 분위기가 좋은 동네였는데 (개발 때문에) 2명이 자살했다"며 "이웃과 부모자식간 관계도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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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중3동, 입주예정일 올해 말인데 '허허벌판'
김포 신곡마을, 철거만 하고 시행사 부도, 조합해체
오는 20일이면 '용산참사' 4주기다. 개발 광풍에 휘말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서울 용산4구역은 부동산 경기 악화 등으로 정작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주차장으로 전락했다.
문제는 무책임한 철거로 주민들의 삶이 망가진 곳이 용산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강제철거하더니 창고비까지 요구= 박정희 정권 시절 한센인 마을로 조성됐던 서울 내곡동 헌인마을은 가구단지로 성장했다.
그러나 2002년 서울시가 '헌인마을 도시계획용도지역변경계획'을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 등이 프로젝트금융회사 '우리강남 PFV'를 설립, 4270억원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사업에 돌입했다.
가구상 강경일(48)씨가 97년 입주할 때만 해도 헌인마을은 장사가 잘 됐다. 그러나 2006년부터 개발 소문이 돌더니 원인모를 화재가 잇달아 발생했다. 2008년 8월 철거용역 1500여명이 들이닥쳤고 강씨는 10원도 못 받고 쫓겨났다. 당시 88개 업체가 철거됐고 지금은 가구단지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헌인마을은 2009년 개발계획고시와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가 진행됐지만 우리강남PFV의 재무구조 악화 삼부토건·동양건설의 자금난으로 지금까지 개발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공사는 시작하지도 못한 채 대출이자비용이 늘어 땅값만 오르고 있다. 2006년 당시 3.3㎡당 평균가격이 750만~800만원 수준이던 땅값은 현재 1400만원 수준까지 뛰었다.
강씨를 비롯해 헌인마을에 남아 가구가게를 열고 있는 사람은 소수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매출은 급감했고 가게 열 때 진 빚은 그대로다. 개발이 안 되다보니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강씨는 "(철거 때)가게 물건들을 다 빼앗겼지만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빼앗아갈 땐 언제고 창고비 감당이 안되니까 창고비까지 요구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동네 황폐하니 일거리도 안줘" = 소규모 공장이 많은 경기도 김포 신곡마을도 철거는 '속전속결'이었지만 개발은 역시 '멈춤' 상태다.
2006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신곡마을은 당시 2개 업체가 각각 땅을 매입하더니 나중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매입한 땅은 '통합추진위원회'가 다시 매입하는 과정을 거쳐 총 3차례나 권리가 이전됐다. 그만큼 땅값도 뛰었다.
추진위는 다시 이 땅을 시행사 '새날'에 팔았다. 부지가 넓어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던 새날은 직접 시공을 시도했으나 자금난으로 결국 부도가 났다. 조합조차 해체돼 신곡마을 개발은 중단된 상태다.
철거는 2008년 거의 이뤄졌지만 마을은 황량하다. 철거에는 250여명의 용역이 동원됐다.
이곳에서 기계 부품공장을 운영하는 조규승(57)씨는 "매출이 급감해 기계를 상당부분 팔았다"며 "주변이 철거지역이다보니 풍경이 황폐해 고객사들이 방문해도 일거리를 주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조씨는 "관청에서는 조합이 해체됐는데 다시 재신고서가 들어오면 그 때가서 논의하라고 한다"며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대책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허허벌판 … 견본주택도 철거 = 경기도 부천시 중3동은 2003년부터 재개발조합추진위에서 재개발조합 설립 동의서를 받기 시작하는 등 개발 움직임이 일었다.
조합이 설립되고, 관리처분인가가 나더니 2008년 말부터 철거가 조금씩 시작됐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김명희(41)씨를 비롯한 세입자들은 2008년 9월부터 퇴거요구를 받았다. 상가주인들이 "조합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가게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개발 사업전에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더라면 권리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텐데 보상을 요구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듬해부터 철거용역업체가 지역에 상주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아파트 건설이 완료된 주변지역들과 달리 중3동은 아직도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다. 2009~2010년 자금문제로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2010년 10월 PF대출로 1500억원을 조달하고 사업승인을 받았다. 한동안 안보이던 철거용역들이 다시 마을을 돌아다니며 건물을 부수고 폭력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집이 철거되자 주민들은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고, 용역들이 몰려와 천막을 철거했다. 이런 힘겨루기가 일상화됐다.
그러나 입주예정일이 올해 하반기였던 이 개발사업은 아직 첫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견본주택마저 철거됐다.
◆"삶에 구멍이 났다" = 철거로 파괴된 마을 주민들의 삶은 힘겹다. 헌인마을 강씨는 "인생의 청사진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 같다"며 "이 상태가 계속되는 한 삶의 구멍도 계속 뚫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 중3동 김씨 역시 "벽에 대고 싸우는 느낌"이라며 "다시 가게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신곡마을 조씨는 "봄이 되면 마을 주민이 모여 잔치를 하는 등 분위기가 좋은 동네였는데 (개발 때문에) 2명이 자살했다"며 "이웃과 부모자식간 관계도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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