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의 중심 헤이그에 가다 ①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 “한국법조인 국제사회엔 적응 어려워”

지역내일 2013-02-01
법률기술자 벗어나 시각 키워야 … 초대 재판관, 2015년 임기

네덜란드 헤이그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형사재판소(ICC)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상설중재재판소(PCA) 헤이그국제사법회의(HCCH) 등 국제사법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5개의 국제재판소 또는 국제기구가 위치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에는 한국인으로 송상현 재판관이 소장을 맡고 있으며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는 부소장을 역임한 권오곤 재판관이 근무하고 있다. 헤이그는 국제법의 중심으로 점점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 한국인 재판관들이 있다.

1907년 이 준 열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의 '드 리더잘'(Ridderzaal·기사의 방)에 끝내 들어가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하지만 96년이 지난 2003년 송상현 서울대 법대교수는 '드 리더잘'에서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취임 선서를 했다. 그 후 10년이 지나고 송 재판관은 재판소장의 자격으로 이곳에서 10주년 기념 연설을 했다. 100년만에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보여준 단적인 장면이다.

지난달 24일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 집무실에서 만난 송상현(72) 소장은 "한국의 경제력이 강해져서 그렇지 우리가 힘이 없다면 열강들의 틈에서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은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침략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근거가 된 '로마규정'에 가입함으로써 주변 강대국의 부당한 간섭이나 침략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송 소장은 "한미 군사동맹만 맹신하면서 미국만 바라보는 것은 구태의연한 자세"라며 "그동안의 4강 외교(미국·일본·중국·러시아)에서 벗어나 FTA로 중요한 파트너가 된 EU를 포함시키는 5강 외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법조인 국제사회 도전해야 = 국제형사재판소는 2010년 12월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전쟁범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예비조사에 착수,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이다. 남북의 분단 상황과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국제형사재판소의 중요성이 국내에서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국제형사재판소에 내는 분담금은 전체 121개 가입국 중 9번째로 많다. 지난해 분담금 이외의 기부도 몇 차례 했다.

송 소장은 "한국이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고 소장도 배출한 만큼 재판소에서 입지를 넓힐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국력에 비해 국제 무대로 진출하는 법조인이 거의 없는 게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법조인들은 일단 자기 전공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만큼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국제사회에 이름이 알려져야 하고 외국어 능력이 뒷받침되면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현재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일하는 한국인 인턴은 2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도 2명이 한꺼번에 근무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한국 법조인들은 우수한데 항상 선별 과정을 통해 성장한 만큼 자존심이 쓸데없이 강해서 국제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법이 사회 운영의 근간인데 법조인들이 국제사회의 경험 등을 통해 시각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2500개 NGO가 '재판소 독립·공정성' 견제 = 국제형사재판소는 평상시 2500개의 NGO 단체들로부터 감시와 견제를 받는다.

독립성과 공정성이 생명인 국제형사재판소로서는 이들의 견제를 당연시 여긴다. 송 소장은 "재판소가 독립성을 외치는 것은 국제 정치적인 영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는 뜻이 담겨있다"며 "재판 대상인 피의자들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나 군사령관 등이라서 잘못하면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나 체포영장 발부 등을 정치적 목적으로 했다고 비난받을 가능성 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소가 공정성이나 독립성을 안 지키면 그런 위험성은 항상 있다"며 "국제적으로 신뢰를 상실해서 존재해도 사실상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관 선임 문제에 있어서도 NGO단체들의 견제는 대단하다. 초대 재판관 선거가 있던 2003년 당시 피지의 현직 대법원장이 ICC재판관에 출마했지만 NGO단체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군사 쿠데타를 벌여 정권을 잡은 정부에 대해 사법부의 수장이 사실상 묵인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결국 피지 대법원장은 자진사퇴를 할수밖에 없었다.

송 소장은 "후보자의 배경 등을 샅샅이 조사해서 적격성 판단을 하는데 과거의 한 행위가 재판관이 됐을 때 이해관계 충돌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검토하기도 한다"며 "회원국들끼리 이번에 어느 국가를 밀어주고 다음에 누구를 밀어주고 한다는 식의 선거운동은 거의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전적으로 후보자 개인의 자격을 보고 표가 몰린다는 말이다.

◆피해자 구제 프로그램 광범위하게 운영 = 국제형사재판소는 2003년 출범당시부터 피해자 구제 신탁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에 와서 각종 피해자 구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데 국제형사재판소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송 소장은 "재판소 본래의 기능은 아닌데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것"이라며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올해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등에 거주하는 피해자 8만명 정도가 구제 프로그램에 직·간접 도움을 받지만 피해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 반군들은 친정부적 언행을 한 사람을 찾아내 손발을 자르거나 코나 귀 등을 다 자른다"며 "한번 어려움을 겪으면 그 심리적 고통이 평생을 가는데 이들을 돕는 힘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송 소장은 "독재자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아프리카의 수많은 사람들은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80% 이상이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초등학교 세워달라고 해 놀랐다"고 말했다.

송 소장의 임기는 2015년 3월말 까지다. 그는 "한국 정부가 지금부터 후임자 물색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며 "한국인 재판관 자리를 꼭 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상현 소장="">

▲경기고·서울대 법학과 졸업 ▲미국 튜레인 대학교 법학석사 ▲미국 코넬대 법학박사▲제14·16회 고시 행정·사법과 합격 ▲뉴욕주 변호사 근무 ▲뉴욕대 석좌교수 ▲서울대 법대학장 ▲한국법학교수회장 ▲국제형사재판소(ICC) 초대 재판관 ▲국제형사재판소 소장(현)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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