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리본’ 희망의 조건 ① 출소자, 삶은 계속된다] 교도소에서 두번 바뀐 강산 … “환갑 넘어 베푸는 삶”

지역내일 2013-02-04
강도살인 전과자에서 사업가로 거듭난 정선일씨 … "계속 봉사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가족들도 떳떳"

강력범죄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이 커졌다. 범죄자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결국 출소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다시 살아가야 한다. 해마다 170여만 건의 크고 작은 범죄가 벌어지고, 매년 14만명이 죗값을 치르고 사회로 돌아온다. <내일신문>은 '새 삶'과 '재범'의 기로에 선 출소자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자리잡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4회에 걸쳐 점검한다. -편집자 주

"젊은 시절엔 사람들한테 상처만 줬어요. 환갑이 지나서야 베풀며 살게 됐네요."

경북에서 작은 방제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정선일(62·가명)씨는 출소자다. 탈영, 존속상해, 강도살인 등으로 젊은 시절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탈영으로 시작된 전과 = 정씨는 경남 거창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3남 5녀 중 여섯째.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먼저 떠났고 새어머니가 들어왔지만 관계는 좋지 못했다. 용돈은커녕 밥 달라고 했다가 입에 못 담을 말을 듣기 일쑤였다.

그는 유독 애틋했던 여동생의 손을 잡고 무작정 가출하기도 했다. 나가서는 길거리를 헤매며 하루는 밥과 찬을 구걸하고 하루는 물로 허기를 채웠다.

24살이 돼 군 입대를 하게 된 정씨는 여동생을 한 가정집에 가정부로 맡겼다. 끼니라도 거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동생만 잘 된다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산다면 나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심정이었다.

일병 때 여동생이 면회를 왔다. 위병소에서 빵조각을 나눠먹었다. 잘 지내는 줄 알았던 여동생은 정씨 품에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동생이 눈에 밟힌 정씨는 휴가를 나갔다 복귀하지 않았다.

그는 육군교도소에서 2년형을 받고 홍성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사이 동생은 결혼을 했다. 자신도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응어리는 쌓이기만 했다. 바닥인 살림도, 부모에 대한 원망도 그대로였다 하루는 부모와 말다툼을 벌이다 새어머니가 고소를 하는 바람에 '존속상해'로 또다시 교도소에서 2년을 보냈다.

◆자포자기·원망이 살인으로 = 한창 젊은 시절에 4년의 공백이 생긴 정씨는 술에 찌들어 지냈다. '이 세상엔 내가 필요 없다' 싶으니 살아야겠다는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자포자기와 원망, 분노뿐이었다.

출소 1년 후 택시기사로 일하던 그는 군 시절 사귀다 자신을 떠난 옛 애인을 우연히 만났다. 포클레인 기사와 결혼한 그 여성은 남편의 해외출장으로 집에 혼자 있다고 했다. 정씨는 술에 취해 그 집으로 찾아갔다. "네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서 내가 교도소에 갔다"는 엉뚱한 원망을 하다 이성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여성은 이미 숨져 있었다. 자신의 양손에는 피 묻은 칼과 그 집에서 가져나온 고급 녹음기가 들려 있었다. 칼을 들고 경찰서에 자수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강도살인. 검사는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15년형을 선고했다.

교도소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대구교도소, 김해교도소, 청주교도소, 다시 천안개방교도소로 옮겨다니며 형기를 채웠다. 가족 누구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죄 짓느니 약 먹고 죽겠다" = 1995년 출소한 그는 눈앞이 캄캄했다. 주머니에 돈은 거의 없었다. 그가 15년의 긴 세월을 6척 담장 안에서 지내는 동안 바깥세상은 너무 변해 있었다. 잘 살고 있을 동생을 볼 면목도 없었고, 악연이 쌓인 부모를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누님 댁에 머물다가 대구의 갱생보호공단(현 법무보호복지공단)을 찾아갔다.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다시는 교도소 들어가기 싫습니다. 죄를 짓는다면 차라리 약이라도 먹고 죽으렵니다."

공단은 정씨에게 지낼 곳과 식사, 일자리를 마련해줬다.

다음날 아침 5시부터 새 삶을 위한 발버둥이 시작됐다. 1호선을 뚫고 있던 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미장일을 했다. 몇 달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손이 부르트도록 일했다. 신분이 탄로날까 가슴 졸이기도 했지만 계속 출근했다. 번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공단에다 맡겼다.

그의 노력을 좋게 본 공단에서는 대형 차량 운전면허를 따도록 도와줬다.

그는 얼마 후 버스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잘 풀리는 듯 하더니 운행 중 접촉사고를 내 3개월치 월급이 날아갔고 규정에 의해 퇴사해야 했다.

◆맨손으로 시작한 '새 삷' = 그러나 더 이상 원망할 데가 없었다. 이번에도 못 이겨내면 다시 '그 곳'으로 가는 길 밖에 없었다. 죽기보다 싫었다.

정씨는 남은 돈과 공단에서 보태준 돈으로 1톤 트럭을 한 대 샀다. 면허증이 있다는 게, '내 차'가 있다는 게 큰 힘이 됐다. 일단 제지공장에서 화장지를 받아다 장사를 시작했다. 정직하게 열심히 노력했다. 틈나는 대로 고물도 수집하고 밤에는 택배회사에 출근해 하역일도 했다. 분뇨차 운전, 화물차 운전까지 도맡았다. 시간 나면 쪽잠을 자고 눈 뜨면 일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1997년 정씨는 지인의 소개로 마음씨 착한 한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알콜중독에 빠진 남편을 떠나보낸 사람이었다. "절대 술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홀몸이 아닌 이상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월급 85만원을 받고 방역회사에 취직했다. 저녁에는 계속 트럭으로 택배 하역을 하고 낮에는 공공근로를 하는 1인3역 생활을 2년여간 했다.

2000년 5월 그는 조그마한 방역회사를 하나 차렸다. 처음에는 책상 1개와 전화기 한 대가 전부였다. 5년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다. 방역일을 맡기 위해 한 아파트에만 12번 찾아간 적도 있었다.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아파트 입구에 주저앉아 운적도 많았다.

결국 세상은 그의 노력에 답했다. 사업은 그럭저럭 잘 풀렸고 회사는 이제 직원만 6명이 됐다. 아들 두 명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큰 아들은 결혼까지 시켰다. 정씨는 어느덧 재산만 10억원에 달하는 지역인사가 됐다.

◆절박하게 원하면 기회있다 = 정씨는 법적으로 죗값을 치렀지만 마음에 남은 빚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출소자'라는 꼬리표로 인해 가족들까지 손가락질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가끔은 성공한 사람으로 소개될 때마저 이름과 회사, 사진이 공개될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정씨는 아들들에게 결혼 선물로 집 한 채씩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기부할 계획이다. 장기도, 안구도 모두 기증서약했다. 틈나는 대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직도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

"이웃들 인상 찌푸리게 했을 때는 출소자가 그렇지 하면서 손가락질 받겠죠. 하지만 내가 촛불처럼 녹아서 남을 도와줄 때는 부끄럽지 않아요. 계속 정직하게 봉사하면서 살아야 나랑 가족들이 떳떳할 수 있을 겁니다."

정씨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새 삶을 원하지 않으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며 "하지만 아무리 늦은 것 같아도 노력한다면 기회는 꼭 찾아온다"고 다른 출소자들을 격려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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