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엄격한 증거에 따라야 하며,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으면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 2002년 이래 대법원 판례로 확정된 법리이다. 법원은 무죄선고 때 "피고인에 대한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는 내용을 함께 주문한다. 억울한 혐의를 쓰고 법정에 섰던 국민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조치이다. 내일신문은 그동안 무리한 수사로 인권이 침해당하는 일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무죄사건들을 되짚어왔다. 창간20주년을 맞은 2013년에도 꾸준히 무죄사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2013년 1월 8일 서울중앙지법 510호 법정, 검찰은 이성헌 전 의원에게 정치자금법 위반죄를 추가하는 공소변경을 신청했다. 방청석에서는 "무죄가 나올 것 같으니 새 혐의를 추가하는 것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이 재판은 일곱차례 속행된 공판에서 주요 증인심문을 모두 마쳤다. 따라서 마지막 피고인 직접심문을 앞두고 법적용을 추가한 것은 그만큼 검찰이 공소유지에 자신이 없었던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2월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김대웅 부장판사)는 이 전의원의 특정경제가중처벌법(알선수재)과 검찰이 추가한 정치자금법위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의원은 "국민들이 왜 그렇게 검찰의 개혁을 바라는지 법정에 서보니 알 것 같다"면서 "돈이 오간 사실관계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무조건 기소해 버린 검찰 때문에 나는 재판에 매달리느라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무죄소회를 밝혔다.
검찰이 2월 5일 항소장을 제출했기 때문에, 이 전의원은 앞으로도 한동안 법정을 오가야할 처지다.
이 전의원은 고향친구라는 사업가 이 모씨로부터 2007년 7월 "용인 현대힐스테이트 분양승인을 내주도록 용인시장에게 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분양승인이 나자 비서 오 모씨를 통해 이씨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신촌의 한 룸싸롱에서 마신 1277만원 외상술값도 갚게 했다고 하여 이 전의원은 일견 '치사한 정치인'으로 비치기도 했다.
모든 혐의는 사업가인 이씨가 검찰에 털어놓은 진술이 핵심증거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씨가 자신의 사업체에 대한 수사압박을 피해보려고 검찰에게 '한 건'을 제공했을 수 있다고 보아 이씨의 말에 신빙성을 두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른 건으로 검찰에 구속되어 수사받던 이씨가 이 전의원 건을 처음 진술한 것이 기소되기 하루 전날이었던 점을 들어 "이씨가 자신의 궁박한 처지를 벗어나고자 이를 진술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았다.
이씨도 법정에 나와서는 "검찰이 상장 준비중이던 제 사업체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했고, 또다른 사업체에도 수사가 미칠지 몰라 두려웠다"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처도 검찰에 불려나와 쓰러지는 것을 보고 심리적인 압박을 크게 느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돈을 준 과정에 대해 이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점도 무죄판단 근거로 삼았다. 돈을 전달하기 위해 이씨가 이 전의원에게 한 전화내용이 "돈을 준비했다"에서 "1억원을 준비했다"로 바뀌고 나중에는 "돈이라는 얘기는 않고 뭔가를 준비했으니 비서를 보내라"고 했다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검찰은 결정적으로, 이씨에게 돈을 받았다는 오 모 비서가 이 돈을 이 전의원에게 전달했는지를 규명하지 못했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할 무렵 오씨가 해외로 출국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전의원의 변호인은 이씨와 오씨가 친분이 있는 관계여서 둘 사이에 돈이 오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오씨를 직접 심문하지 않는 이상 진실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은 오씨의 신병을 확보하지도 못한 채 이 전의원과 함께 공범으로 기소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는 이상 이씨가 오씨에게 1억원을 주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는다"면서 "이럴 경우 유력한 증거인 오씨의 부재는 입증책임을 져야 하는 검사가 부담해야할 성질"이라고 판시했다. 검찰이 돈 전달의 핵심고리라는 오씨를 조사한번 해보지 못한 채 이 전의원을 기소한 데 대해 재판부가 '무리한 기소였다'고 일침을 가한 셈이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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