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실험의 현장, 베트남

지역내일 2013-02-08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연초에 최초의 베트남 출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공식 업무는 중부 해안지대에 있는 다낭외국어대학과 쾅남성협동조합연맹을 방문해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과 교류 협정을 맺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러 협동조합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어 사회를 관찰하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견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도입하고 대외개방을 추진하는 실험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행운이었다.

베트남으로 가는 여객기에는 아이를 동반한 국제결혼 가족이 많았다. 엄마는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통로를 뛰어 다니는 아이를 말리고 있었다. 아이는 부모에게 한국어만 쓰고 있었다. 다낭에 도착해보니 한국의 4월 말이나 5월 초 정도의 기온이었다. 우기라는데 이슬비가 잠시 내리다가 멎는 정도여서 활동에 큰 지장은 없었다. 시가지는 깔끔했고 호텔에서는 무선 인터넷이 잘 통했다. 전력 사정도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한국 드라마가 여러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었다.

한국어과의 입학 정원은 100명이었다. 학과 연구실의 칠판을 보니 한국 대학의 교수, 학생과 교류하는 일정이 12월 중순부터 가득 차 있었다. 호치민의 흉상을 모신 회의실에서 교류 협정을 마치고 시내를 둘러보니 한국계 대형 마트와 빵집이 있었다.

이 지역에는 한국 기업의 공장과 협력업체가 들어서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주력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는 모두 일본제였다. 바닷가 언덕에 있는 영은사(靈隱寺)라는 절에는 2010년에 세운 10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백색의 관음보살이 태풍을 막는 영험을 발휘하고 있었다. 1975년에 사회주의 체제로 통일이 되었지만 수천 년 내려온 민간신앙은 건재하다.

사회주의 견지하며 대외개방 추진

쾅남성의 성도인 탐키로 가는 도중에 소가 논을 갈고 농민들이 허리를 굽혀 손으로 모내기를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가끔 경운기도 보였다. 학교와 병원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이 원조한 대형 병원도 있었다. 농가는 모두 깔끔한 양옥으로 개량되어 있었다.

협동조합연맹 위원장은 소탈하고 헌신적인 농촌운동가였다. 호치민의 지도 하에 본래 항불 운동 조직으로 출발하였다는 협동조합은 농업, 제조업, 무역, 전력, 의료, 관광 등 모든 산업과 생활 편의 시설을 관리하고 있었다.

등나무 공예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협동조합에 가보니 덴마크가 제공한 폐수 처리시설을 가동하고 있었다. 노동자 월급이 170달러 수준이니 개성공단의 2배였다. 비료와 종자의 확보, 농업용수 관리와 같은 영농지원 기능을 수행하는 농협은 공예품 원료인 등나무 가공 공장, 벽돌공장, 정수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약 3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소수력발전소 협동조합은 생수와 농업용수를 판매하고 댐 아래 계곡을 관광지로 개발해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직기 120대를 가동하는 면방직 협동조합에서는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고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 민간 공장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호소를 들었다. 즉,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접촉하는 경계 지점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해병대가 주둔한 격전지였던 쾅남성은 독일, 일본, 프랑스, 스웨덴 등 여러 나라가 개발 원조를 제공하고 있는 지역이다. 즉, 웬만한 지원 프로그램은 다른 외국팀이 모두 시도했을 것이므로 늦게 참여한 한국팀은 참신한 발상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과거사 직시하는 고통 피할 수 없어

물론 컴퓨터 사용법 교육이나 중간 이윤을 배제한 공정무역과 공정여행에 대해서는 베트남측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사회가 워낙 탄탄하게 조직화되어 있고 발전하는 속도가 빠르므로 구태의연하게 도움만 제공하는 지원은 곧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 뻔하다.

필자는 오히려 한국 학생들이 베트남에서 이질적인 사회체제를 체험해 보고 전쟁이 남긴 불행한 역사의 흔적도 찾아보며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어설픈 교류 행사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하던 베트남 교수도 나흘을 같이 보내고 나서야 이 지역에는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많다는 얘기를 꺼냈다. 진정한 국제교류가 이루어지려면 과거사를 직시하는 고통을 회피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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