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청와대 보면 ‘박근혜청와대’ 보인다?

지역내일 2013-02-12 (수정 2013-02-12 오후 1:52:23)
비서실장 지낸 김정렴의 1997년 회고록 주목
청와대 축소·책임장관제·가신 배제 등 서술
박 당선인 벤치마킹 가능성 관심

김정렴(90)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1969년부터 1978년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역대 최장수 비서실장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지난 1997년 박정희시대를 기록한 '아, 박정희'를 펴냈다. "박 대통령 시책의 공과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길 필요가 절실하다"며 낸 책이다.

책 내용의 진위여부를 따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기장' 안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박근혜시대를 점칠 수 있는 신빙성 높은 잣대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 내용 가운데 박정희청와대의 역할과 활동을 중심으로 박근혜청와대를 전망해봤다.

◆전문성 보완 위한 특보제 = 김 전 비서실장은 책의 1장과 2장에서 자신의 임명과 청와대 비서실 운용에 대해 기술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69년 10월 3선개헌안 통과 직후 개각을 단행했다. 당시는 6·25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로 불리던 때였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상공부장관이던 김 전 비서실장에게 "본인은 국방과 안보외교에 치중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경제에 눈돌릴 여유가 없으니 비서실장이 경제문제를 대신 잘 챙겨달라"며 임명장을 줬다.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역할분담을 한 대목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9년3개월간 비서실장을 지냈다. 박 전 대통령 통치기간(18년5개월)의 절반에 달하는 기간이다. 박 전 대통령은 한번 일을 맡기면 충분히 시간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김 전 비서실장은 박 전 대통령의 동의 아래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과 위상을 변화시켰다. 우선 청와대 비서실을 부처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닌 '서비스'하는 조직으로 바꾸려했다. "부처의 애로사항 해결 및 부처간 윤활유 역할에 주력" "총리에 능동적으로 협조" "비서실장은 경제부총리를 적극 지원" 등으로 표현됐다. 김 전 비서실장이 상공부장관 시절 청와대 비서실의 개입으로 업무에 차질을 빚었던 기억을 반영한 대목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청와대 규모와 위상도 대폭 줄였다. △수석 1명과 비서관 10명 감원 △수석을 장·차관급에서 차관으로 낮춰 임명 △공무원 부처복귀 때 특진 금지 △행정관 최소화(9년간 청와대 정원 유지) △명함 금지를 실시했다. 청와대 비서실의 실무화·정예화를 통해 호가호위를 막고 일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려 한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특보제도 활용했다. 국내외 정치, 문화, 교육, 경제, 사회 전문가를 특보로 기용해 그들의 전문성을 국정에 반영했다.

청와대에서 가신은 배제됐다. 박 전 대통령과 사적 인연이 있는 비서실 직원은 두세명에 불과했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가신들은 하나도 없었다"고 김 전 비서실장은 주장했다.

대통령이 여론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창구는 강화됐다. 학계와 언론계 중진들로 이뤄진 '수요회'는 수시로 모여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할 쓴소리를 쏟아냈다. 수요회에서 '남북대화 촉진과 이산가족찾기를 위한 적십자회담 제의' 같은 아이디어가 건의됐다고 김 전 비서실장은 전했다.

김 전 비서실장은 개각에 대한 기억도 되살렸다. "개각 때에는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내무·법무·국방과 무임소장관을 제외한 각 부처 장관에 대해 나에게 복수로 물색해 보라는 분부가 있어서"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이 장관임명 권한을 비서실과 나눴다는 얘기다.

김 전 비서실장은 개각논의 과정에서 민정수석을 배제했다. "경쟁상대를 끌어내리기 위한 정보와 첩보가 홍수처럼 밀려들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장관을 임명할 때는 "출신도별 안배도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였다"고 김 전 비서실장은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장관에게 차관이하 인사권을 일임했다고 한다. "과장 이상 차관까지의 발탁·승진의 인사권을 장관에게 일임했기 때문에 (공무원의) 복지부동이라는 폐단은 일어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대통령 면담일정은 대통령 본인에게 맡겨 '인의 장막' 논란을 원천차단했다. 비서실이 대통령 일정에 개입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을 없앤 것이다. 대통령 공식일정에는 비서실장이 원칙적으로 배석했다.

◆일부는 역행 우려도 = 박 당선인은 아버지시대의 영향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측 인사는 "김 전 비서실장이 서술한 박정희시대 청와대와 국정운영은 (박 당선인에겐)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박 당선인이 대선 직후 내놓은 국정운영 방향에선 박정희시대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박 당선인은 청와대 규모를 줄였다. 기획관 6명과 비서관 10명이 감소됐다. 행정관 30∼40명도 감축될 전망이다. 박 당선인이 꾸렸던 캠프나 인수위는 명함을 만들지 않았다.

책임장관제도 거론된다. 박 당선인은 "국무총리와 부처장관이 책임있게 국정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비서실장이 묘사한 △청와대 위상 축소 △특보제 도입·여론청취 활성화 △개각권한 분할 △출신지역 안배 △장관에 인사권 부여 △가신그룹 배제 △공식일정에 비서실장 배석 등을 벤치마킹할 지는 미지수다. 아직 벤치마킹 움직임이 보이질 않거나 일부 역행하는 듯한 모습도 비쳐 우려를 사기도 한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