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J에 일본과 중국인 재판관 근무 … 국가 간 분쟁 격전장
네덜란드 헤이그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형사재판소(ICC)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상설중재재판소(PCA) 헤이그국제사법회의(HCCH) 등 국제사법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5개의 국제재판소 또는 국제기구가 위치하고 있다. 헤이그는 국제법의 중심으로 점점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 한국인 재판관들이 있다. <내일신문>은 헤이그의 한국인 3명을 만나 국제사법 현황을 들었다.
"국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간 분쟁을 해결하는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의 재판관을 배출하도록 중장기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위치한 헤이그에서 지난달 25일 만난 이기철(56) 주네덜란드 대사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한국인 재판관 배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사는 "어느 나라든 국가 소송을 원하던 원하지 않던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며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을 배출하는 일은 국가에 큰 이익"이라고 말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유엔 헌장에 근거를 두고 1945년 창설됐다. 지난해 우리나라와 일본이 독도 문제로 갈등을 빚을 당시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해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일본이 단독 제소를 연기하기로 했지만 국제사법재판소에 일본인 재판관이 오랫동안 배출돼 왔고 최근까지 일본인이 재판소 소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2017년 인도 재판관, 2020년 일본 재판관 퇴임 =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관은 전 세계 각기 다른 국적의 15명으로 구성된다.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투표로 선출되는데 국제법 분야에 학식과 명성이 높은 인사들이 추천된다. 임기는 9년이고 재선이 가능하다.
대륙별로 재판관 정원도 나눠져 있다. 아시아는 3명의 재판관이 있는데 현재는 인도와 일본, 중국인 재판관이 임명돼 있다. 2017년 인도 재판관이, 2020년 일본 재판관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이론상으로 2017년과 2020년에 재판관을 배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 대사는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은 하루아침에 배출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다른 국가들은 아주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고 말했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세계 유수한 법대에서 국제법을 수학토록 하고, 외교통상부 법률국, 유엔사무국 또는 국제재판소에 근무하면서 여러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주요 논문을 발표토록 함으로써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게 하는 등 정부차원에서 국제적인 경력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해서도 하나 나올까 말까한 게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이라며 "우리나라도 최근에 와서 필요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의 판결이 어느 국가에 유리하게 나느냐 불리하게 나느냐에 따라 해당 국가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며 "재판관 배출을 위해 국가적으로 투자를 하는 것은 단순히 명예나 위신의 차원을 넘어 국가 이익과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외교관은 '국가이익이라는 고객'의 변호사다" = 이 대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외교관의 길로 뛰어들었다. 외교통상부에서 국제법률국장을 지내는 등 국제법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외교관은 국가이익이라는 고객의 변호사라고 생각한다"며 "국익은 단기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이익, 즉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는 노력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국제회의에서는 회의 결과문을 작성하는 초안 위원회(drafting committee)의 업무가 중요한데 표현 하나 하나가 국익과 관련이 있는 만큼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한다"며 "법적 사고력(리걸마인드)를 갖고 문서를 보면 국익에 도움이 되는 부분과 안되는 부분을 판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네덜란드 대사에 외무성의 국제법률국장 출신을 임명했다. 일본 역시 국제법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네덜란드에 법률전문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네덜란드 교과서에 한국이 실리도록 추진" = 이 대사는 국제법 관련 업무 이외에 네덜란드에서 한국을 알리는 일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그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직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며 "한국을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교과서"라고 말했다.
이 대사는 "지난 50년간 한국의 정치·경제 발전상을 네덜란드 교과서에 싣도록 하는 일을 장기적인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를 통해 좋은 인식을 갖도록 하면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이다.
이 대사는 문을 닫을 뻔한 로테르담의 한글학교를 살린 일로도 네덜란드 현지에 잘 알려져 있다. 로테르담시는 매년 4만유로의 임차료 보조금을 한글학교에 지원해왔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 2만유로로 줄이겠다고 2010년 학교에 통보했다.
이 대사는 2011년 9월 부임하고 한달 뒤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대책을 마련해 로테르담 투자청장을 찾아갔다. 이 대사는 한글학교에 지원을 줄이면 자녀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기업 35개 중 적어도 20%인 7곳 업체는 로테르담을 떠날 것이고 한국기업에 채용된 현지인과 하청업체의 인력 42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결국 1680만 유로의 주민소득 감소가 발생할 것임을 강조했다. 한글학교에 지원하는 2만 유로를 아끼려다가 로테르담시가 840배의 훨씬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대사는 한글학교의 교실을 임대해준 미국학교도 찾아갔다. 4만유로의 임차료 계산이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임차료를 2만9000유로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로테르담시도 결국 이 대사의 노력에 두손을 들고 말았다.
이 대사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계산이 빠르기 때문에 정확한 근거를 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며 "개인적인 친분보다는 합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근거만 확실하면 일을 추진하는데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 이 대사는 지난해 4월 한글학교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그는 "대사관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으로 국민들의 어려움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19세기말 중국에 진출한 미국 외교관이 선교사를 보호하고 중국에 진출한 기업을 지원하는 일이 주업무였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한 외교관의 역할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내일신문>
네덜란드 헤이그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형사재판소(ICC)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상설중재재판소(PCA) 헤이그국제사법회의(HCCH) 등 국제사법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5개의 국제재판소 또는 국제기구가 위치하고 있다. 헤이그는 국제법의 중심으로 점점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 한국인 재판관들이 있다. <내일신문>은 헤이그의 한국인 3명을 만나 국제사법 현황을 들었다.
"국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간 분쟁을 해결하는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의 재판관을 배출하도록 중장기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위치한 헤이그에서 지난달 25일 만난 이기철(56) 주네덜란드 대사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한국인 재판관 배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사는 "어느 나라든 국가 소송을 원하던 원하지 않던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며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을 배출하는 일은 국가에 큰 이익"이라고 말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유엔 헌장에 근거를 두고 1945년 창설됐다. 지난해 우리나라와 일본이 독도 문제로 갈등을 빚을 당시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해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일본이 단독 제소를 연기하기로 했지만 국제사법재판소에 일본인 재판관이 오랫동안 배출돼 왔고 최근까지 일본인이 재판소 소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2017년 인도 재판관, 2020년 일본 재판관 퇴임 =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관은 전 세계 각기 다른 국적의 15명으로 구성된다.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투표로 선출되는데 국제법 분야에 학식과 명성이 높은 인사들이 추천된다. 임기는 9년이고 재선이 가능하다.
대륙별로 재판관 정원도 나눠져 있다. 아시아는 3명의 재판관이 있는데 현재는 인도와 일본, 중국인 재판관이 임명돼 있다. 2017년 인도 재판관이, 2020년 일본 재판관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이론상으로 2017년과 2020년에 재판관을 배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 대사는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은 하루아침에 배출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다른 국가들은 아주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고 말했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세계 유수한 법대에서 국제법을 수학토록 하고, 외교통상부 법률국, 유엔사무국 또는 국제재판소에 근무하면서 여러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주요 논문을 발표토록 함으로써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게 하는 등 정부차원에서 국제적인 경력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해서도 하나 나올까 말까한 게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이라며 "우리나라도 최근에 와서 필요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의 판결이 어느 국가에 유리하게 나느냐 불리하게 나느냐에 따라 해당 국가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며 "재판관 배출을 위해 국가적으로 투자를 하는 것은 단순히 명예나 위신의 차원을 넘어 국가 이익과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외교관은 '국가이익이라는 고객'의 변호사다" = 이 대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외교관의 길로 뛰어들었다. 외교통상부에서 국제법률국장을 지내는 등 국제법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외교관은 국가이익이라는 고객의 변호사라고 생각한다"며 "국익은 단기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이익, 즉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는 노력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국제회의에서는 회의 결과문을 작성하는 초안 위원회(drafting committee)의 업무가 중요한데 표현 하나 하나가 국익과 관련이 있는 만큼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한다"며 "법적 사고력(리걸마인드)를 갖고 문서를 보면 국익에 도움이 되는 부분과 안되는 부분을 판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네덜란드 대사에 외무성의 국제법률국장 출신을 임명했다. 일본 역시 국제법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네덜란드에 법률전문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네덜란드 교과서에 한국이 실리도록 추진" = 이 대사는 국제법 관련 업무 이외에 네덜란드에서 한국을 알리는 일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그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직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며 "한국을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교과서"라고 말했다.
이 대사는 "지난 50년간 한국의 정치·경제 발전상을 네덜란드 교과서에 싣도록 하는 일을 장기적인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를 통해 좋은 인식을 갖도록 하면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이다.
이 대사는 문을 닫을 뻔한 로테르담의 한글학교를 살린 일로도 네덜란드 현지에 잘 알려져 있다. 로테르담시는 매년 4만유로의 임차료 보조금을 한글학교에 지원해왔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 2만유로로 줄이겠다고 2010년 학교에 통보했다.
이 대사는 2011년 9월 부임하고 한달 뒤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대책을 마련해 로테르담 투자청장을 찾아갔다. 이 대사는 한글학교에 지원을 줄이면 자녀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기업 35개 중 적어도 20%인 7곳 업체는 로테르담을 떠날 것이고 한국기업에 채용된 현지인과 하청업체의 인력 42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결국 1680만 유로의 주민소득 감소가 발생할 것임을 강조했다. 한글학교에 지원하는 2만 유로를 아끼려다가 로테르담시가 840배의 훨씬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대사는 한글학교의 교실을 임대해준 미국학교도 찾아갔다. 4만유로의 임차료 계산이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임차료를 2만9000유로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로테르담시도 결국 이 대사의 노력에 두손을 들고 말았다.
이 대사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계산이 빠르기 때문에 정확한 근거를 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며 "개인적인 친분보다는 합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근거만 확실하면 일을 추진하는데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 이 대사는 지난해 4월 한글학교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그는 "대사관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으로 국민들의 어려움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19세기말 중국에 진출한 미국 외교관이 선교사를 보호하고 중국에 진출한 기업을 지원하는 일이 주업무였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한 외교관의 역할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내일신문>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