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택 고려대 명예교수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학부 때 제자 A를 만났다. 격조했던 데다 해도 바뀌고 해서 안부삼아 만든 자리였다. 그는 문학 지망생이었는데 대학원에서는 전공을 사회학으로 바꾸어 일찌감치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친구였다.
그곳의 유명대학인 F대학에서 모든 학위과정을 마치고 그곳의 한국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그가 돌아온 것은 유학 16년 만이었고 두어 대학에서 시간강사의 자리를 얻었다. 그의 성실성과 감수성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그가 머지않아 전임교원으로 임용이 될 것을 기대했다.
나의 예상은 빗나갔고 어느 겨울 밤늦은 시간 "제가 가장이라는 사실을 오래 잊고 지낸 것 같습니다"라는 취한 음성의 전화를 끝으로 소식은 끊겼다. 귀국하여 그가 낸 번역서 세 권과 논문 몇 편은 그의 임용에 도움이 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A는 생각보다 밝은 표정이었고 그동안의 생활을 나에게 실토했다. 지금 강남의 한 학원에서 대입 논술과외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반지하방 하나 얻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온달처럼 웃었다.
또 다른 제자 B는 십여년의 시간강사 신세를 일단 마감하고 바야흐로 신학기부터는 대학에 연구실을 얻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자신이 부여받은 명칭은 '비정년 교원'이라는 이름의 부교수급 직급이며, 2년마다 임용계약을 새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시간강사와 전임교원으로 양분되어 있던 대학의 교수요원이 언제부터인가 명칭이 다양하게 변조되어 연구교수 촉탁교수 강의전담교수 외래교수 초빙교수 석좌교수 등의 이름으로 '발령'을 내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그 명칭들의 다양함과는 달리 보수가 하나같이 적다는 점이다.
교수 명칭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박봉
그녀가 부여받을 '비정년 교원'의 연봉은 전임교원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형편이다.
이 자리를 얻기 위해 그녀는 연구저서와 논문들을 제출하고 자신과 같은 자격의 전임교수들 앞에서 시강을 하였으며 그 경쟁 또한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축하해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굴욕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연구실이 생긴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냐며 평강공주처럼 웃었다.
같은 대학 학과 후배인 C는 정년퇴임을 2년 앞두고 있다. 그는 '강의전담 교원'이라는 별칭의 비정규 교수로서 학교 당국과 해마다 임용계약을 연장하고 있다. 1년마다 계약을 다시 한다는 것은 결국 1년 만에 해약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학교 당국으로부터 해약통보를 걱정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왜냐하면 그만한 저임금에 전임교원의 인원수를 채워주고 있으니 학교당국이나 본인 양쪽 모두(?)에 유익한 협약이기 때문이다. 강의전담이라는 임무 때문인지 그는 아예 연구 결과물인 논문은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그는 학자로서의 자긍심보다는 가족의 최소 생계를 그나마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는 듯했다.
사회의 어느 분야이건 삶의 어느 국면이건 비정규적 일과 역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출산이나 출장, 질병으로 인한 휴직 등 한시적으로 일자리를 보강해주는 임시직은 언제나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경제위기를 맞아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비정규직 채용 사유 제한을 없애는 바람에 급격히 등장한 이 악성적 고용행태의 문제점은 심각하다.비정규직이 정규직을 몰아내고 일반적인 고용행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사회통합 멀어지고 양극화 심해져
유럽에서는 비정규직의 규모가 평균 15%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50%를 훨씬 넘는다고 하니 우리 고용시장의 후진성을 잘 보여준다.
비정규직의 범람은 학교나 기관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기보다는 기업윤리와 인간존중의 이상이 실종되는 징후에 다름 아니다. 또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한시적이고 임시방편적 고용행태가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인간불평등의 원리로 고착될 때 사회 통합은 멀어지고 양극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대학 교수요원의 능력과 자질은 자본과 이윤의 논리에서보다는 학문적 이념의 효율성에 의해 보호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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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학부 때 제자 A를 만났다. 격조했던 데다 해도 바뀌고 해서 안부삼아 만든 자리였다. 그는 문학 지망생이었는데 대학원에서는 전공을 사회학으로 바꾸어 일찌감치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친구였다.
그곳의 유명대학인 F대학에서 모든 학위과정을 마치고 그곳의 한국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그가 돌아온 것은 유학 16년 만이었고 두어 대학에서 시간강사의 자리를 얻었다. 그의 성실성과 감수성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그가 머지않아 전임교원으로 임용이 될 것을 기대했다.
나의 예상은 빗나갔고 어느 겨울 밤늦은 시간 "제가 가장이라는 사실을 오래 잊고 지낸 것 같습니다"라는 취한 음성의 전화를 끝으로 소식은 끊겼다. 귀국하여 그가 낸 번역서 세 권과 논문 몇 편은 그의 임용에 도움이 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A는 생각보다 밝은 표정이었고 그동안의 생활을 나에게 실토했다. 지금 강남의 한 학원에서 대입 논술과외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반지하방 하나 얻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온달처럼 웃었다.
또 다른 제자 B는 십여년의 시간강사 신세를 일단 마감하고 바야흐로 신학기부터는 대학에 연구실을 얻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자신이 부여받은 명칭은 '비정년 교원'이라는 이름의 부교수급 직급이며, 2년마다 임용계약을 새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시간강사와 전임교원으로 양분되어 있던 대학의 교수요원이 언제부터인가 명칭이 다양하게 변조되어 연구교수 촉탁교수 강의전담교수 외래교수 초빙교수 석좌교수 등의 이름으로 '발령'을 내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그 명칭들의 다양함과는 달리 보수가 하나같이 적다는 점이다.
교수 명칭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박봉
그녀가 부여받을 '비정년 교원'의 연봉은 전임교원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형편이다.
이 자리를 얻기 위해 그녀는 연구저서와 논문들을 제출하고 자신과 같은 자격의 전임교수들 앞에서 시강을 하였으며 그 경쟁 또한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축하해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굴욕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연구실이 생긴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냐며 평강공주처럼 웃었다.
같은 대학 학과 후배인 C는 정년퇴임을 2년 앞두고 있다. 그는 '강의전담 교원'이라는 별칭의 비정규 교수로서 학교 당국과 해마다 임용계약을 연장하고 있다. 1년마다 계약을 다시 한다는 것은 결국 1년 만에 해약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학교 당국으로부터 해약통보를 걱정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왜냐하면 그만한 저임금에 전임교원의 인원수를 채워주고 있으니 학교당국이나 본인 양쪽 모두(?)에 유익한 협약이기 때문이다. 강의전담이라는 임무 때문인지 그는 아예 연구 결과물인 논문은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그는 학자로서의 자긍심보다는 가족의 최소 생계를 그나마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는 듯했다.
사회의 어느 분야이건 삶의 어느 국면이건 비정규적 일과 역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출산이나 출장, 질병으로 인한 휴직 등 한시적으로 일자리를 보강해주는 임시직은 언제나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경제위기를 맞아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비정규직 채용 사유 제한을 없애는 바람에 급격히 등장한 이 악성적 고용행태의 문제점은 심각하다.비정규직이 정규직을 몰아내고 일반적인 고용행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사회통합 멀어지고 양극화 심해져
유럽에서는 비정규직의 규모가 평균 15%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50%를 훨씬 넘는다고 하니 우리 고용시장의 후진성을 잘 보여준다.
비정규직의 범람은 학교나 기관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기보다는 기업윤리와 인간존중의 이상이 실종되는 징후에 다름 아니다. 또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한시적이고 임시방편적 고용행태가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인간불평등의 원리로 고착될 때 사회 통합은 멀어지고 양극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대학 교수요원의 능력과 자질은 자본과 이윤의 논리에서보다는 학문적 이념의 효율성에 의해 보호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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