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칼럼] 국민은 공론 대상이 아닌가보다

지역내일 2013-01-14
전 간행물윤리위원장

우리는 지나온 과거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이따금 과거와 판박이사태, 판박이인격이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소스라쳐 놀라곤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맥없이 보낸 게 아쉽고, 망각의 늪이 깊음을 새삼 깨닫기 때문일 터다. 1976년의 해프닝을 지금 반추해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해 정초, 정확히 1월 15일이었다. 그날 대한민국은 아마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전 국민이 기쁨에 겨워 환호하고 엉엉 울기조차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에서,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된 게 사실이다. 매우 양질의 석유다"라고 연두회견에서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감격은 글로 다 못 쓸 정도다. TV를 보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부둥켜안고 덩실덩실 춤을 췄는가 하면 술집에선 손님 300명이 기립해 애국가를 합창하기도 했다.

'산유국' '석유 원년' '무상교육 평생복지'란 말이 스스럼없이 나왔고 "이제 우리도 잘 살게 됐다"는 희망이 나라에 가득찼다. 오죽하면 택시기사들이 "산유국 1등 국민답게 앞으로 택시합승이나 바가지요금 같은 부끄러운 말이 안 나오게 하겠다"고 했겠는가.

희망이 워낙 큰 만큼 주식 값, 땅값도 날개 단 듯 뛰어올랐으나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부자나라가 될 테니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당연하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석유는 나오지 않았다. 나중 알려진 바로는 당시 석유채굴 전 과정을 주도한 중앙정보부에서 시추공을 따라 흘러들어간 기름이 뜬 걸 "첫 원유 발견"으로 보고한 것이었다. 정보부는 그걸 진실인 양 짜맞추려고 끝까지 대통령과 국민의 눈을 속여 온 것도 드러났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대통령이 국민에게 발표하기 40일 전(1975년 12월 3일)이른바 '현물 원유'를 받았고, 자원전문가와 테크노크라트들은 "영일만에선 석유가 나올 수 없다. 더 조사해보고 발표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는 데 말이다.

1976년의 "석유가 나왔다" 해프닝

대통령은 정보부보고만 믿었고 정보부는 의문을 제기하거나 딴소리 하는 사람의 입을 철저히 봉쇄해 그렇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럼 언론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함께 춤을 췄다. 석유가 나왔다는 포항 용흥동 현장이 폐쇄돼 있었지만 "보안 때문에 외부인 접근을 막고 있다"고 지레 정부 입장을 대변했다. 대통령과 측근들이 40일 동안 '원유에 불을 붙여보고' '냄새를 맡고' '찍어 먹기도 했다'는 걸 다 알면서도 보도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회견 전에도, 그 후에도 정부가 바라는 만큼만 기사를 썼으니 '포항 원유'를 검증하는 건 오직 정부만의 일이었다. 대통령도 "석유는 나왔지만 경제성은 더 봐야 안다"며 "조사가 끝나기까지 참고 기다려봐 달라는 얘기밖에 할 것이 없다"고 했으니 더 앞서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박 정권이 막을 내린 10년 후 당시 정보부에 근무했던 직원은 이렇게 증언했다. "특명수사국은 포항에서 석유가 나올 수 없다는 학문적 견해를 전개해온 지질학자 등을 언론으로부터 차단하고 입 다물게 하기 위해 며칠씩 잡아두고 겁주고 각서를 쓰게 했다." 국민 소통통로를 꽉 틀어막았다는 얘기다.

왜 지금 37년 전 얘기를 이리 장황히 늘어놓는가. 교훈을 잊었냐고 묻고 싶어서다. 언론은 국민과 소통창구이기도 하지만 공론을 통해 진실과 효용여부를 검증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정부가 입맛에 맞는 것만 홍보하는 도구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잘못은 가려주는 언론역할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공론을 통해 진실과 효용 여부 검증

대통령직인수위가 활동을 시작한 지 며칠 안 됐는데 벌써 언론 문제가 시끄럽다. 부처별 업무보고 내용은 "국민에게 혼선을 줄 우려가 있어 브리핑을 않는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변인은 자신이 '인수위 내 단독기자'라며 "기사가 되는지 여부는 내가 판단해서 알려주겠다"고 해 구설에 올랐다.

하긴 당선인부터 내부정보를 얘기한 사람을 '촉새'라며 경고한 적도 있다. 물론 인사문제 등 끝까지 보안을 지킬 사안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의 검증과 공론장 역할을 부인하고, 국민들은 그저 정부가 알리고 싶은 것만 알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위험한 발상은 없다.

마침 내일이 석유 발견 발표를 했던 그 1월 15일이다. 박 대통령은 그때 발표 후 1년 7개월이 지나 결국 "포항석유는 가능성이 희박한 것 같다"고 했다. 사과는 없었다. 많은 국민은 그걸 지금도 섭섭해 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