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간행물윤리위원장
우리는 지나온 과거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이따금 과거와 판박이사태, 판박이인격이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소스라쳐 놀라곤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맥없이 보낸 게 아쉽고, 망각의 늪이 깊음을 새삼 깨닫기 때문일 터다. 1976년의 해프닝을 지금 반추해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해 정초, 정확히 1월 15일이었다. 그날 대한민국은 아마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전 국민이 기쁨에 겨워 환호하고 엉엉 울기조차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에서,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된 게 사실이다. 매우 양질의 석유다"라고 연두회견에서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감격은 글로 다 못 쓸 정도다. TV를 보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부둥켜안고 덩실덩실 춤을 췄는가 하면 술집에선 손님 300명이 기립해 애국가를 합창하기도 했다.
'산유국' '석유 원년' '무상교육 평생복지'란 말이 스스럼없이 나왔고 "이제 우리도 잘 살게 됐다"는 희망이 나라에 가득찼다. 오죽하면 택시기사들이 "산유국 1등 국민답게 앞으로 택시합승이나 바가지요금 같은 부끄러운 말이 안 나오게 하겠다"고 했겠는가.
희망이 워낙 큰 만큼 주식 값, 땅값도 날개 단 듯 뛰어올랐으나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부자나라가 될 테니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당연하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석유는 나오지 않았다. 나중 알려진 바로는 당시 석유채굴 전 과정을 주도한 중앙정보부에서 시추공을 따라 흘러들어간 기름이 뜬 걸 "첫 원유 발견"으로 보고한 것이었다. 정보부는 그걸 진실인 양 짜맞추려고 끝까지 대통령과 국민의 눈을 속여 온 것도 드러났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대통령이 국민에게 발표하기 40일 전(1975년 12월 3일)이른바 '현물 원유'를 받았고, 자원전문가와 테크노크라트들은 "영일만에선 석유가 나올 수 없다. 더 조사해보고 발표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는 데 말이다.
1976년의 "석유가 나왔다" 해프닝
대통령은 정보부보고만 믿었고 정보부는 의문을 제기하거나 딴소리 하는 사람의 입을 철저히 봉쇄해 그렇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럼 언론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함께 춤을 췄다. 석유가 나왔다는 포항 용흥동 현장이 폐쇄돼 있었지만 "보안 때문에 외부인 접근을 막고 있다"고 지레 정부 입장을 대변했다. 대통령과 측근들이 40일 동안 '원유에 불을 붙여보고' '냄새를 맡고' '찍어 먹기도 했다'는 걸 다 알면서도 보도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회견 전에도, 그 후에도 정부가 바라는 만큼만 기사를 썼으니 '포항 원유'를 검증하는 건 오직 정부만의 일이었다. 대통령도 "석유는 나왔지만 경제성은 더 봐야 안다"며 "조사가 끝나기까지 참고 기다려봐 달라는 얘기밖에 할 것이 없다"고 했으니 더 앞서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박 정권이 막을 내린 10년 후 당시 정보부에 근무했던 직원은 이렇게 증언했다. "특명수사국은 포항에서 석유가 나올 수 없다는 학문적 견해를 전개해온 지질학자 등을 언론으로부터 차단하고 입 다물게 하기 위해 며칠씩 잡아두고 겁주고 각서를 쓰게 했다." 국민 소통통로를 꽉 틀어막았다는 얘기다.
왜 지금 37년 전 얘기를 이리 장황히 늘어놓는가. 교훈을 잊었냐고 묻고 싶어서다. 언론은 국민과 소통창구이기도 하지만 공론을 통해 진실과 효용여부를 검증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정부가 입맛에 맞는 것만 홍보하는 도구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잘못은 가려주는 언론역할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공론을 통해 진실과 효용 여부 검증
대통령직인수위가 활동을 시작한 지 며칠 안 됐는데 벌써 언론 문제가 시끄럽다. 부처별 업무보고 내용은 "국민에게 혼선을 줄 우려가 있어 브리핑을 않는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변인은 자신이 '인수위 내 단독기자'라며 "기사가 되는지 여부는 내가 판단해서 알려주겠다"고 해 구설에 올랐다.
하긴 당선인부터 내부정보를 얘기한 사람을 '촉새'라며 경고한 적도 있다. 물론 인사문제 등 끝까지 보안을 지킬 사안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의 검증과 공론장 역할을 부인하고, 국민들은 그저 정부가 알리고 싶은 것만 알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위험한 발상은 없다.
마침 내일이 석유 발견 발표를 했던 그 1월 15일이다. 박 대통령은 그때 발표 후 1년 7개월이 지나 결국 "포항석유는 가능성이 희박한 것 같다"고 했다. 사과는 없었다. 많은 국민은 그걸 지금도 섭섭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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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나온 과거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이따금 과거와 판박이사태, 판박이인격이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소스라쳐 놀라곤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맥없이 보낸 게 아쉽고, 망각의 늪이 깊음을 새삼 깨닫기 때문일 터다. 1976년의 해프닝을 지금 반추해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해 정초, 정확히 1월 15일이었다. 그날 대한민국은 아마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전 국민이 기쁨에 겨워 환호하고 엉엉 울기조차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에서,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된 게 사실이다. 매우 양질의 석유다"라고 연두회견에서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감격은 글로 다 못 쓸 정도다. TV를 보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부둥켜안고 덩실덩실 춤을 췄는가 하면 술집에선 손님 300명이 기립해 애국가를 합창하기도 했다.
'산유국' '석유 원년' '무상교육 평생복지'란 말이 스스럼없이 나왔고 "이제 우리도 잘 살게 됐다"는 희망이 나라에 가득찼다. 오죽하면 택시기사들이 "산유국 1등 국민답게 앞으로 택시합승이나 바가지요금 같은 부끄러운 말이 안 나오게 하겠다"고 했겠는가.
희망이 워낙 큰 만큼 주식 값, 땅값도 날개 단 듯 뛰어올랐으나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부자나라가 될 테니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당연하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석유는 나오지 않았다. 나중 알려진 바로는 당시 석유채굴 전 과정을 주도한 중앙정보부에서 시추공을 따라 흘러들어간 기름이 뜬 걸 "첫 원유 발견"으로 보고한 것이었다. 정보부는 그걸 진실인 양 짜맞추려고 끝까지 대통령과 국민의 눈을 속여 온 것도 드러났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대통령이 국민에게 발표하기 40일 전(1975년 12월 3일)이른바 '현물 원유'를 받았고, 자원전문가와 테크노크라트들은 "영일만에선 석유가 나올 수 없다. 더 조사해보고 발표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는 데 말이다.
1976년의 "석유가 나왔다" 해프닝
대통령은 정보부보고만 믿었고 정보부는 의문을 제기하거나 딴소리 하는 사람의 입을 철저히 봉쇄해 그렇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럼 언론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함께 춤을 췄다. 석유가 나왔다는 포항 용흥동 현장이 폐쇄돼 있었지만 "보안 때문에 외부인 접근을 막고 있다"고 지레 정부 입장을 대변했다. 대통령과 측근들이 40일 동안 '원유에 불을 붙여보고' '냄새를 맡고' '찍어 먹기도 했다'는 걸 다 알면서도 보도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회견 전에도, 그 후에도 정부가 바라는 만큼만 기사를 썼으니 '포항 원유'를 검증하는 건 오직 정부만의 일이었다. 대통령도 "석유는 나왔지만 경제성은 더 봐야 안다"며 "조사가 끝나기까지 참고 기다려봐 달라는 얘기밖에 할 것이 없다"고 했으니 더 앞서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박 정권이 막을 내린 10년 후 당시 정보부에 근무했던 직원은 이렇게 증언했다. "특명수사국은 포항에서 석유가 나올 수 없다는 학문적 견해를 전개해온 지질학자 등을 언론으로부터 차단하고 입 다물게 하기 위해 며칠씩 잡아두고 겁주고 각서를 쓰게 했다." 국민 소통통로를 꽉 틀어막았다는 얘기다.
왜 지금 37년 전 얘기를 이리 장황히 늘어놓는가. 교훈을 잊었냐고 묻고 싶어서다. 언론은 국민과 소통창구이기도 하지만 공론을 통해 진실과 효용여부를 검증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정부가 입맛에 맞는 것만 홍보하는 도구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잘못은 가려주는 언론역할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공론을 통해 진실과 효용 여부 검증
대통령직인수위가 활동을 시작한 지 며칠 안 됐는데 벌써 언론 문제가 시끄럽다. 부처별 업무보고 내용은 "국민에게 혼선을 줄 우려가 있어 브리핑을 않는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변인은 자신이 '인수위 내 단독기자'라며 "기사가 되는지 여부는 내가 판단해서 알려주겠다"고 해 구설에 올랐다.
하긴 당선인부터 내부정보를 얘기한 사람을 '촉새'라며 경고한 적도 있다. 물론 인사문제 등 끝까지 보안을 지킬 사안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의 검증과 공론장 역할을 부인하고, 국민들은 그저 정부가 알리고 싶은 것만 알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위험한 발상은 없다.
마침 내일이 석유 발견 발표를 했던 그 1월 15일이다. 박 대통령은 그때 발표 후 1년 7개월이 지나 결국 "포항석유는 가능성이 희박한 것 같다"고 했다. 사과는 없었다. 많은 국민은 그걸 지금도 섭섭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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