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 언론인
오늘로 박근혜 정권 출범 여드레째다. 하지만 총리를 제외한 내각의 수장은 아직도 이명박 정권 사람들이다.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보류되고 있어 청문회를 통과한 후보자들도 취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이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로 끝나는 2월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새 대통령-구 내각'의 어색한 동거가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청와대는 1일과 3일 여론에 호소하며 야당 압박에 나섰다.
"새 정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으나 정부조직을 완전하게 가동할 수 없어 손발이 다 묶여 있는 상태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IPTV와 케이블방송 등을 미래창조과학부가 맡아야 한다는 종전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오늘 오전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최초로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가 정부조직법을 조속해 처리해 국정을 정상화하자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청와대의 요청은 부탁이나 호소가 아닌 국회와 야당,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국민에 대한 협박"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박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영수회담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거부했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킨게임'을 벌이는 상황에서, 임시국회 회기 안에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없다. 머리만 있고 팔 다리는 없는 기형적 국정운영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쟁점이 되고 있는 미래부 업무에 관해 따져보자. 이 부처는 MB 정권의 교육과학기술부에 속했던 과학기술 집행 업무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과기 정책 업무, 지식경제부의 연구개발(R&D)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업무다. 여기에 방송통신위원회 업무의 절반을 대행할 매머드급 부처다.
견제와 균형은 완전히 말살
문제는 방통위원회의 업무를 미래부에 흡수하는 데 대해 야당과 시민단체가 극력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야권은 "ICT 분야의 독임제 부처 이관에는 동의하지만 방송 분야의 독립성·중립성·공공성 확보를 위해선 정부조직법과 방통위 설치법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야권이 방통위 업무의 미래부 종속을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정권에서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으로 언론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됐고, 낙하산 사장의 전횡으로 장기 파업과 대량 해고 등으로 파행을 치달았던 트라우마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비대칭적이긴 했지만 여야가 공동 참여한 방통위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방통위의 주요 업무가 미래부로 복속된다면 미흡하나마 가능했던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은 완전히 말살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전혀 사심이 없고 방송 장악 기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청와대의 주장은 그래서 신뢰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창조경제의 핵심이자 새 정부의 아이콘이라는 미래부에 대한 박 대통령의 요지부동, 이에 대한 야당의 반발. 자칫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불통'과 야당의 고질적 병폐인 '발목잡기'를 구체적으로 목도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저러나 국정이 더 이상 표류해선 안된다. 민주당은 어제 "미래부를 제외하고 정부조직법을 우선 처리하자"고 역제안했다. 이는 여당인 새누리당 유기준 최고위원이 지난 1일 내놓은 소수의견과 같은 내용이다. 유 최고위원은 "버스가 12대(정부부처)가 간다고 해서 한꺼번에 출발해야 하느냐. 한두 대 늦게 출발해도 되는 것 아니냐"며 타협안을 제시했다.
집권자가 양보와 소통에 인색하다면
그런데 민주당의 역제안에 새누리당은 말을 바꿨다. "핵심 부서를 뺀 정부조직법 개정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민주당,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서로 치고 받는 가운데, 새 정부는 갈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정권 초기다. 야당의 발목잡기도 문제지만, 집권자가 양보와 소통에 인색하다면 그야 말로 큰일이다. 더욱이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안건을 대국민 담화라는 형식으로 외곽을 때린다면 국정 동반자인 야당과는 집권 기간 내내 척을 지게 될지도 모른다. 때론 얄밉지만 야당과 대화하고 끌어안기도 하는 집권자의 적극적인 소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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