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섭 서울 마포구청장
마이클 블룸버그 미국 뉴욕시장이 최근 모교인 존스홉킨스대학에 3억5000만달러(약 3800억원)를 기부해 화제가 됐다. 그의 이번 후원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닌데 존스홉킨스대학을 졸업한 다음해인 1965년부터 지금까지 기부한 돈을 모두 합치면 자그마치 10억달러(약 1조7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고액기부자였을까. 아니다. 단 5달러, 기부의 시작은 소박했다.
서울 마포구는 오는 7월 출범할 '장학재단' 설립 준비로 분주하다. 구는 장학재단을 꾸려 현재 80억원 규모인 마포구 장학기금을 2021년까지 300억원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장학재단이 설립되면 장학기금과 달리 지역 내 뜻있는 독지가들의 자발적인 모금이 가능해진다. 또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성적이 우수한 중·고·대학생 장학금 지급을 비롯해, 과학 예체능 문학에 재능있는 영재 발굴과 육성 지원, 우수대학생의 해외연수, 우수교사의 연수와 연구 지원 등 장학기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역동적인 장학사업을 펼칠 수 있다.
경제력 때문에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부모의 경제력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 청소년(청년)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저소득 가정의 청소년들은 배움에 대한 충분한 동기부여 없이 척박한 환경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많고 배움의 기회에서 소외된 이들은 결국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을 떨치기 힘들 것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변호사 아버지를 가진 아들은 변호사가 되고 노동자 아버지를 가진 아들은 노동자가 되는 학력 대물림을 우리사회는 심각하게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개천에서 용 나는'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건 헌 수저를 물고 태어났건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공평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공정사회이고 시대적 요구다.
다시 블룸버그 시장의 사연으로 돌아가 보자. 1876년 문을 연 존스홉킨스대학은 실업가이자 독지가였던 존스 홉킨스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어려운 학생이나 고아들에게 교육 혜택을 주기 위해 설립됐다. 이 대학은 지금도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블룸버그 시장이 반세기 넘게 모교를 후원해 온 것은 설립자의 유지에 대한 깊은 공감과 모교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 블룸버그 통신을 세워 지금은 엄청난 부호가 된 그 역시 대학시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 주차장 직원으로 일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후원을 결심하게 되는 데는 '돈 없어 공부 못하는 설움을 알기 때문에' 라든지 저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후원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데는 더 큰 명분과 희생이 필요하다. 내 기부가 다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자신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원하는 진로를 선택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큰 활약을 하고 또 지역사회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기부금을 더 낸다고 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금액에 관계없이 이웃사랑 실천하는 문화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이 있다. 장학재단의 성패는 지역주민과 기업들이 나눔활동에 기꺼이 참여하는 기부문화의 정착에 있다. 장학재단이라는 나눔창구를 통해 김밥을 팔아 평생 모은 돈부터 칠순잔치에 쓰려고 했던 경비에 이르기까지 액수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금액에 관계없이 일상 속에서 이웃사랑 지역사랑을 실천하는 기부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란다.
'베풀 수 있는 처지가 됐을 때 베풀어라'는 말처럼 장학금을 받고 자라난 지역 인재들이 성인이 돼 그 지역 후배들에게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돌려주는 '순환형 장학제도'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소박하지만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따스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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