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희망을 쏜다 2부. 사람이 희망이다 ⑥파이팅, 베이비부머] “정신없이 격변기 통과 … 10분이라도 자기시간 가지려 노력”
지역내일
2013-02-04
(수정 2013-02-04 오후 2:20:04)
2013년. 세계와 한국경제에 거는 기대가 그리 높지 않다. 저성장, 장기침체, 고령화, 양극화 등이 뒤섞인 2013년에 또 한번 기적을 바라는 건 과욕이다. 그래도 마음만 열면 도처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이 되어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다문화 자녀들, 실력만으로 도전할 수 있는 차별없는 한국사회를 꿈꾸는 고졸, 제2의 도전이 힘겹지만은 않은 경력단절여성과 시니어들. 신성장동력은 거창한 구호에 있지 않다. 그들의 희망이 곧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자 기적이다.
진광표(50) KB국민은행 지점장
"IMF 등 격변기 보내며 직장 내 생존이 최대 화두 … 은퇴 준비는 뒷전"
고종우(50) 우리투자증권 지점장
"신문에 나오는 과외비에 10배 곱하면 딱맞아 … 교육비 현실화 절실해"
조명기(52) 삼성생명 수석연구원
"젊은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노후준비 시작하라는 말해주고 싶어"
1월 마지막날 저녁 서울 북창동의 한 삼겹살집에 우리나라에서 잘 나간다는 은행·증권·보험사에 다니는 중견급 3명이 모였다. 금융권에서 일한다는 것 빼고 공통점은 딱 하나, 한참 고민 많을 베이비부머 세대라는 점이다. 진광표 KB국민은행 일산지점장, 고종우 우리투자증권 김포지점장이 63년생으로 베이비부머의 막내격이라면 조명기 삼성생명 보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61년생으로 베이비부머 세대의 중간급, 3명 중에선 제일 형님이다.

인터뷰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잘 나간다는 금융회사에 중견급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니 고민이 좀 덜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퇴직 후 은퇴준비를 빵빵하게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세워두지 않았을까. 인터뷰 후 결론은 잘 나가든 못 나가든 특히 월급쟁이 베이비부머의 고민은 매한가지라는 것이었다. 직장 내 생존을 위해 전력투구하며 살다 보니 은퇴 준비는 뒷전이었고, 자녀들에게 투자하다 보니 자기계발은 뒤로 미뤄졌다.
◆직장내 생존 위해 살다보니 어느새 50대 = 소주 한 잔을 돌린 후 진광표 씨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진 씨는 1988년 주택은행으로 입사해 직장생활만 벌써 26년째다.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은행에 가라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입사했고 실제로 좋은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입사 10년 만에 닥친 IMF 사태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직장 내 생존이 최고의 화두가 됐던 것이다.
"우리 세대 사람들이 다 격변기에 있었던 사람들이에요. 아이엠에프 이후 사회 분위기가 많이 변했잖아요. 명퇴니 구조조정이니 뭐가 많았고. 은행들 같은 경우는 합병되고 하다 보니까 어떻게 생존을 할 것인가 그 생각이 제일 먼저였던 것 같아요."
고종우 씨는 1989년 LG투자증권으로 입사해 벌써 25년째 증권업에서 일하고 있다. 고 씨는 "금융권에서 은퇴준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들이 종잣돈 자체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은퇴준비 이야기가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명기 씨는 상대적으로 은퇴에 대한 압박이 덜한 편이었다. 자녀가 1명이어서 교육비 투자가 덜했기 때문이다.
◆교육비 부담은 현재진행형 = 이들이 퇴직 후 준비가 안 돼 있는 이유로 꼽은 것은 결국 교육비였다. 남들 다 했다는 부동산 투자로 큰 돈을 벌지 못했다거나, 부모 봉양에 따른 의료비 부담 등은 속은 쓰려도 어쩔 수 없다고 넘기지만 교육비에 대해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듯했다. 세 사람 모두 대학을 갔거나 곧 가야 하는 자녀들을 두고 있어 교육비 부담은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큰 아들을 재수를 거쳐 대학에 보낸 진 씨는 "솔직히 자녀교육에 별 신경을 못 썼다"고 고백했다. 회사에 올인하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덧 대학 갈 때가 돼 있었다.
"제도가 너무 복잡하더라고요. 그래서 엄마 아빠가, 그리고 학교도 애한테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일반고에선 한 반에서 5명 공부하고 50명은 자요.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사고 안 치는 것에만 관심 있지 대학 가고 안 가고는 관심이 없어요. 학원 가서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부모들은 결국 무조건 학원을 보내야 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은퇴를 위해 돈을 따로 모으는 그런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죠."
고 씨는 첫째 딸을 약대에 보내느라 대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사교육비를 지출한 예다. 약대 시험이 개편되면서 일반 대학 2년을 마친 후 약대입문자격시험을 거쳐 다시 약대에 입학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보통 금융권에서 말하긴 은퇴 후 7억에서 10억원까지 필요하다고들 해요. 건강하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그런데 저는 그 돈이 다 큰 애한테 들어갔어요. 사교육비 신문지상에서 30만원, 50만원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딱 10배를 하면 진짜 과외비가 나와요. 정말 황당한 것이 뭐냐면 공교육이 무너졌는데도 정부는 그걸 인정을 안 해요. 학교에선 학원에서 다 배워오라는 식이죠, 입시제도는 좀 복잡해요? 학원만 신이 나는 거지. 입시 면접 준비로 하루에 80만원짜리 컨설팅이 횡행하고… 이런데 무슨 은퇴준비를 하겠어요. 약대도 그래요. 대학을 6년 다니라는 이야기니까 부모만 죽일 일이에요."
◆나에 대해 생각하려고 하는데 잘 안 돼 = 개인적인 상황이 어떻든 퇴직은 현실이다. 뭔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안 된다고 했다.
"술 좀 덜 먹고 살려고 하고, 옛날엔 직장이 100%고 나의 전부였는데 이제는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정도밖에 없죠 뭐." 진 씨의 이야기다. 진 씨는 물리적인 시간의 압박에 시달린다. 실적의 압박 속에서 자기 시간을 가지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사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 어느 은행이나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다.
간혹 직장에서 일찌감치 나와 개인사업에서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 부러울 뿐이다. 조 씨는 "친구들 상당수가 이미 직장에서 나와 있다. 개인사업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사업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신감이나 능력이 다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씨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면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죠. 부모님들 보면 병원에 갖다 주는 돈이 참 많아요. 70대 건강은 지금부터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운동합니다. 나중에 뭘할까 생각하면 강의하고 그런 걸 좋아하는데 가방끈이 길어야 하거든요. 막내가 중학교 다니니까 아직 교육비 때문에 저한테까지 투자할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 당장 준비하라 = 이렇게 답답한 게 많은데 사실 정부에 기대할 게 없는 것도 이들이다. 그동안 학습효과를 통해 그다지 정부정책이 도움되지 않는다는 점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부차원에서 혹은 사회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빨리 은퇴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는 것 같아요. 사회의 마인드가 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의 50대가 예전의 50대와는 다르거든요. 그리고 아이를 갖는 시기나 모든 것이 다 늦춰졌기 때문에 사실 65세까지는 일을 해야 자녀 교육같은 거 마무리할 수 있고, 생활을 유지할 수가 있어요. 다들 그걸 알고는 있는데 누구도 말을 못 하는 거죠." 조 씨가 이야기했다.
진 씨는 "다른 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어도 교육만큼은 정부가 해줘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저희 세대는 생존력은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지가 않아요. 부모로서 아이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그건 결국 교육이죠. 대학 가는 방법이 수십가지라고 하고, 지금은 정시로 대학 가는 게 가장 멍청한 방법이라고 하던데, 정시로 가는 게 당연했던 부모들 입장에선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는 거죠. 결국 돈 써서 원서 어디 낼지 컨설팅 받아야 하고… 처음에 나도 그런 짓 미쳤다 했는데 그게 현실이에요. 이런 걸 정부가 좀 아는지 모르겠어요."
고 씨는 세금 이야기를 했다. "베이비부머들 대부분이 월급생활자고 그들은 유리지갑이죠. 100% 과세된단 말입니다. 이 사람들한텐 소득공제 혜택을 최대한 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손해라고 할 게 아니라 세금 사각지대가 없도록 다른 곳에도 공평과세를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10년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물었다. 세 사람 모두 한 마디로 "지금 당장 준비하라"고 했다.
"정년을 앞둔 이 시기가 저에게 오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10년 화끈하게 돈 벌어서 회사 나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었지. 체면치레 비용이나 자녀교육비를 줄였더라면 어땠을까. 월급 범위 내에서 자기 노후준비를 지금부터 하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고종우)
"96년도 한 선배님이 지금 굉장히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지금부터 노후를 준비하라고 했는데 뭔 얘긴지 몰랐어요. 선배들 말에 귀 기울이고 준비한다면 나름의 길이 생길 겁니다."(진광표)
"노후 준비는 빨리 시작할수록 편한 것 같아요. 자동으로 딱딱 준비가 되게 일정 부분을 떼어서 모아 나가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돈을 건드리지 않도록해야 할 것 같아요."(조명기)
얼마나 이야기를 쉴새 없이 했는지 남은 삼겹살이 꺼멓게 타버렸다. 찌개를 시키며 노트북을 덮었다. 그러고 나서도 또 이야기가 넘친다. 그 이야기들은 지면에는 옮기지 않고 마음 속에만 남긴다.
박준규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