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재 칼럼] 장준하 의문사 규명의 새 전기

지역내일 2013-03-29

장준하 의문사만큼 뜨거운 이슈는 없을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후 의문사 사건이 많았지만, 이 사건처럼 사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은 드물다. 민주화 이후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몇 차례 있었지만 딱 부러지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며칠 전 장준하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라는 민간단체 기자회견에서 법의학 권위자 이정빈 박사(서울대 명예교수)가 유골 감식결과를 근거로 타살 소견을 밝혔다. 그는 "외부 가격으로 즉사해 추락했고, 그 충격으로 엉덩이뼈가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의견은 38년을 끌어온 사인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단서로 평가될 만하다.

회견 후 한 방송에 출연한 그는 "두개골 오른쪽 뼈 손상은 끝이 둥그런 물체로 가격당한 것으로 보이고, 엉덩이뼈 손상은 추락으로 인한 것이 틀림없으므로 추락 전에 가격을 당해 절명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장 과정에서 출토된 유해의 두개골 함몰흔적 사진이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추락사라는 당시 정부발표에 의문을 품었다. 국회부의장 출신 정의화 의원(새누리당)의 "선생의 두개골 사진이 나에게 외치는 것 같다. 타살이라고!"라는 트위터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는 사고 당시부터 운악산 등산 중 추락사 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가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정부가 무리하게 밀고 간다고 생각한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사고 이틀 후 동아일보가 여러 의문점을 조명한 기사를 보고 용기 있는 신문이라고 느낀 것도 나 혼자가 아니었다.

1975년 8월 19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검찰이 목격자(김용환)를 불러 사고 경위를 조사한다는 내용이었다. 70도 경사의 암벽을 아무 장비도 없이 내려가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점, 안전한 코스로 올라갔다가 위험한 코스로 내려왔다는 점, 목격자가 사고 후 고인의 시계를 차고 있었던 점 등에 의문을 표한 것이다.

"외부 가격으로 즉사 후 추락" 결론

기사가 나간 뒤 의정부 주재 장봉진 기자는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기사를 본 언론인들은 겨울공화국의 살기에 얼어붙었다. 그렇게 그 일은 국민의 뇌리에서 멀어졌다. 이 사건이 다시 조명받은 것은 1988년이다.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겠다며 재수사를 한다고 했으나 관할 포천경찰서가 제대로 수사할 리가 없었다.

본격적인 재조사는 2003년 김대중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출범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2기 위원회 활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1년에 그 많은 의문사 사건을 다루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이라는 것이 관련자들의 한결같은 푸념이었다.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존안자료에 접할 수 없어 조사가 처음부터 벽에 부딪쳤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한 것처럼 사인이 분명하지 않은 죽음은 변사사건으로 처리하도록 규정돼 있다. 당연히 사체검안 부검 같은 절차가 따라야 하고, 수사기록과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는 그게 없었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유족이 달려가 시체를 인수해 장례를 치렀다. 장례 전 사적으로 의사를 불러 사체검안을 했다.

1기 조사위원회 고상만 조사팀장은 지난해 12월 출간한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이라는 책을 통해 조사의 한계와 어려움을 낱낱이 토로했다. 사건 관련자 진술조서와 물증 같은 기본 자료에 접할 수 없었고, 강제수사권이 없어 진실을 캐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유일한 목격자의 진술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 고인과의 관계에도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고 했다.

주목할 것은 장준하의 민주화 운동 경력과 사건의 타이밍이다. 박정희의 유신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사람이 장준하였다. 유신헌법개헌청원운동본부를 만들어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한 74년 12월 긴급조치 1호 첫 구속자가 장준하였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 취해야

국제적 압력에 힘입어 풀려난 장준하가 반 유신 투쟁을 위해 무언가 '큰일'을 기획한 일의 D-데이가 75년 8월 20일이었다.

고상만씨는 자신의 조사보고서가 앞으로 60년간 비공개 결정이 내려져 책을 썼다고 집필동기를 밝혔다. 그 조치가 정권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면 진상규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것이 지난해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측 약속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대표는 "사인조사 주장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단 대선 후에 하자"고 했다.

이제 그 때가 되었다. 컴퓨터 단층촬영 같은 과학적 기법을 동원한 유골 정밀감식 결과가 나왔으니, 차제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게 위정자의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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