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경제민주화보다 시급한 것

지역내일 2013-04-01
윤재석 칼럼니스트

엘뢰테르 이레네 뒤퐁은 천재 화학자 앙투완 라브와지에의 애제자였다. 1789년 집권한 자코뱅 혁명정부는 라브와지에를 반혁명세력으로 규정, 단두대의 이슬로 보냈다. 설상가상으로 뒤퐁의 공장까지 몰수했다.

1799년 뒤퐁은 미국으로 망명, 1802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화약공장을 세운다. 남북전쟁과 서부개척 등 화약 수요가 급증하자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양차 대전 또한 호기였다.

뒤퐁이 개발한 제품은 수없이 많다. 1938년 의생활에 혁명을 가져온 나일론을 비롯, 1960년대엔 스판텍스 섬유인 라이크라를 선보였고,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 우주복, 방탄복 등 1800여 종의 제품을 생산했다. 특히 백색가전과 치약 등의 재료로 쓰이는 이산화티타늄은 세계 최대 생산량을 점하고 있다. 냉장고 냉매로 쓰인 프레온도 뒤퐁의 발명품이다.

오늘날 뒤퐁은 40여개국에 200여개의 공장과 80여개의 연구소, 10만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다국적기업이 됐다. 그런 뒤퐁을 따라다니는 오명은 '안전사고 다발기업' '환경오염의 주범' '공해업체'라는 꼬리표였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게 안전·건강·환경(Safety, Health, Environment) 프로그램이다. 1971년 세계 최초로 도입된 SHE는 전 사업장에 철저히 적용되고 있다.

모든 사고는 본사에 즉각 보고되며 SHE 매뉴얼에 따라 철저히 대응된다. 싱가포르 지사에서 한 직원이 보통 의자에 앉아 장난치다 뒤로 넘어지는 사고가 생기자, 본사는 전 세계 사업장의 의자를 다리 5개짜리 회전의자로 바꿨다. 1986년 윌밍턴 본사를 방문했을 때, 뒤퐁은 "직원 가정의 안전 및 건강, 환경까지 관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뒤퐁의 안전·건강·환경 프로그램
뒤퐁식 스쿨버스 승하차 매뉴얼이 있다. 일반 스쿨버스보다 훨씬 엄격하다. 가족이 다칠 경우, 직원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곧바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거다. 뒤퐁의 사고율은 미국 산업계 평균의 1/20에 불과하다.

전국 곳곳의 산업단지에서 각종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8일 SK하이닉스반도체 청주공장에서 유해물질인 감광액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22일 염소누출에 이은 엿새만의 사고다. 22일엔 구미 LG실트론공장에서 불산과 질산이 섞인 혼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20일 전 발생했던 사고의 재판이다.

비슷한 시각 포항 포스코 파이넥스 제1공장에선 폭발성 화재가 발생해 1명이 부상을 입었다. 14일엔 전남 여수 대림산업 고밀도폴리에틸렌(HDPE)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 근로자 6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작년 9월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로 5명이 숨진 사고 이후 발생한 대형 사고만 해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1월 청주 ㈜지디(불산), 경북 상주 웅진폴리실리콘(염산),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반도체공장(불산)에 이어, 3월엔 그야말로 사고가 동시다발로 이어졌다.

문제는 대형사고가 난 공장 대부분이 삼성전자, LG, SK, 포스코, 대림산업, 웅진 등 재벌기업이라는 점이다. 이들 기업의 안전 불감증은 국민들로 하여금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더욱이 한결같이 사고 발생사실을 은폐하다 피해를 키우는 도덕적 해이까지 노출했다.

5명의 사상자를 낸 1월 화성 반도체공장 불산 누출 사고 당시 삼성은 만 하루가 지나서야 관계당국에 사고 신고를 했다. 2일 LG실트론 혼산 누출 때도 공장 측은 16시간 동안 사고를 은폐했다.

22일의 청주 SK하이닉스 염소 누출사고 역시 회사가 사고를 은폐, 4시간여만에 소방당국이 익명의 제보를 받고 현장에 화학차와 방재 인력을 투입했다.

재벌기업 공장에서 잇단 산재사고
1990년대 삼성을 비롯한 유수 기업들이 뒤퐁 SHE를 열공했다. 요즘 각종 사고가 빈발하고 늑장 신고와 은폐를 밥먹듯하는 걸 보면, 그때 학습은 한 때의 유행이었나 보다.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공장을 둘러볼 때, 주변에 심어진 나무 상태로 책임자의 고과를 매겼다고 한다. 나무 하나 제대로 못 가꾸는 공장장이라면 공장의 안전과 환경 상태는 점검하나마나라는 지론에서였다.

뒤퐁의 SHE 매뉴얼이나 이 회장의 단수 높은 안전·환경 철학은 따라가지 못한다 해도 동네 공장보다 못한 엉터리 안전 관리 및 대응 행태는 언제나 벗어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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