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동국대 신방과 겸임교수
지난달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는 '보그병신체'가 한동안 화제에 올랐다.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에 신체·정신적 결함을 가진 이를 낮잡아 부르는'병신', 글 따위에 나타나는 일정한 방식을 뜻하는 접미사 '체(體)'가 결합한 이 신조어는 그 자체로 상당히 불쾌한 느낌을 준다.
이제는 죽은 말이 되다시피한 병신이라는 단어를 되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널리 입에 오르내린 건 보그병신체에 갖는 언중의 반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로 읽힌다. 보그병신체의 전형은 이렇다.
"이번 스프링 시즌의 릴랙스한 위크엔드, 블루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해브."
우리말로 그저 '다가오는 봄, 여유 있는 주말 데이트를 원한다면 청색의 귀여운 원피스를 골라보자'하면 될 문장이다. 그런데도 굳이 외국어를 나열하면서 조사 등 연결고리만 한글로 적는 이러한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보그병신체만 있는 게 아니다. 일부 인문학자들이 자랑하듯 뱉어내는'인문병신체', 광고업계에서 두루 쓰는 '광고병신체'등 온갖 '병신체'가 우리말을 학살하고 있다.
병신체가 유행하는 까닭은 능히 짐작할 만하다. 먼저 지적 허영심일 터이다. 특정 분야를 내가 잘 안다고 과시하는 것이다. 그 분야 구성원들끼리는 늘 사용하는데 남들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은어'의 기능도 담겨 있다.
실제로 그 어휘가 갖는 뜻이 전통적·문화적으로 복합적이어서 우리말 단어로 대체하기가 어려운 사례도 물론 없지 않겠다. 그러나 결국은 '정도의 문제'이다. 대체 불가능한 외국어는 어쩔 수 없이 쓰되 그에 앞서 적절한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최대한 기울여야 한다.
적절한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가 이틀 전 다듬은 말 4가지를 공개했다. 책을 서로 돌려보는 행위를 뜻하는 '북크로싱(book crossing)'은 '책돌려보기'로,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가리키는'북텔러(book teller)'는 '책낭독자'로 바꾸었다.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주는 일 등을 하는 도서·독서의 전문가 인'북마스터(book master)'는'책길잡이', 테이프·시디(CD)·엠피3 재생기로 듣는 '오디오북'은 '듣는책'으로 가다듬었다.
다듬은 말이 항상 '최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원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불평하고 또 다른 이는 입에 붙지 않는다고 외면한다. 국어원이 오랜 세월 공을 들인 데 비해 다듬은 말이 널리 쓰이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면 일정한 한계가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는 어차피 사회적 약속이다. 새로 만든 단어는 생소하기 마련이어서 어색한 게 당연하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쓰다 보면 나중엔 오래된 구두처럼 편해지는 게 언어의 생리이다.
현재 말다듬기위원회에는 국어학자, 국어운동가, 사전 편찬자, 소설가, 언론인, 문화평론가 등 각계 전문가 13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매달 한 차례 모여 치열한 논쟁 끝에 다듬은 말을 선정한다.
때론 언성을 높이거나 얼굴을 붉히고 때로는 합의에 이르지 못해 투표로 결정한다. 아무리 고민하고 토론해도 적합한 어휘를 찾지 못해 포기한 적도 있다.
지지난해 위원회가 출범하면서부터 말석을 지켜온 처지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다듬은 말이 널리 쓰이지 않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국어와 국사를 지킨 민족은 살아나
'한국통사'등을 쓴 저명한 사학자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인 백암 박은식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나라에는 국혼(國魂)이 있다. 곧 국어와 국사다. 아무리 약소한 나라도 국어와 국사를 지키는 민족은 살아날 것이며, 이를 무시하는 민족은 멸망할 것이다.'
전세계를 떠돌던 유대민족이 2000년만에 이스라엘을 재건한 바탕에는, 어느 곳에 살더라도 신앙과 언어를 지킨 그들의 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제 나라 말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은 지식인·교양인의 의무이다. 앞으로는 '윈윈'보다는 '상생'하며,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지 말고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자. 그래서 '시너지 효과' 대신 '상승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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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는 '보그병신체'가 한동안 화제에 올랐다.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에 신체·정신적 결함을 가진 이를 낮잡아 부르는'병신', 글 따위에 나타나는 일정한 방식을 뜻하는 접미사 '체(體)'가 결합한 이 신조어는 그 자체로 상당히 불쾌한 느낌을 준다.
이제는 죽은 말이 되다시피한 병신이라는 단어를 되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널리 입에 오르내린 건 보그병신체에 갖는 언중의 반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로 읽힌다. 보그병신체의 전형은 이렇다.
"이번 스프링 시즌의 릴랙스한 위크엔드, 블루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해브."
우리말로 그저 '다가오는 봄, 여유 있는 주말 데이트를 원한다면 청색의 귀여운 원피스를 골라보자'하면 될 문장이다. 그런데도 굳이 외국어를 나열하면서 조사 등 연결고리만 한글로 적는 이러한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보그병신체만 있는 게 아니다. 일부 인문학자들이 자랑하듯 뱉어내는'인문병신체', 광고업계에서 두루 쓰는 '광고병신체'등 온갖 '병신체'가 우리말을 학살하고 있다.
병신체가 유행하는 까닭은 능히 짐작할 만하다. 먼저 지적 허영심일 터이다. 특정 분야를 내가 잘 안다고 과시하는 것이다. 그 분야 구성원들끼리는 늘 사용하는데 남들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은어'의 기능도 담겨 있다.
실제로 그 어휘가 갖는 뜻이 전통적·문화적으로 복합적이어서 우리말 단어로 대체하기가 어려운 사례도 물론 없지 않겠다. 그러나 결국은 '정도의 문제'이다. 대체 불가능한 외국어는 어쩔 수 없이 쓰되 그에 앞서 적절한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최대한 기울여야 한다.
적절한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가 이틀 전 다듬은 말 4가지를 공개했다. 책을 서로 돌려보는 행위를 뜻하는 '북크로싱(book crossing)'은 '책돌려보기'로,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가리키는'북텔러(book teller)'는 '책낭독자'로 바꾸었다.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주는 일 등을 하는 도서·독서의 전문가 인'북마스터(book master)'는'책길잡이', 테이프·시디(CD)·엠피3 재생기로 듣는 '오디오북'은 '듣는책'으로 가다듬었다.
다듬은 말이 항상 '최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원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불평하고 또 다른 이는 입에 붙지 않는다고 외면한다. 국어원이 오랜 세월 공을 들인 데 비해 다듬은 말이 널리 쓰이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면 일정한 한계가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는 어차피 사회적 약속이다. 새로 만든 단어는 생소하기 마련이어서 어색한 게 당연하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쓰다 보면 나중엔 오래된 구두처럼 편해지는 게 언어의 생리이다.
현재 말다듬기위원회에는 국어학자, 국어운동가, 사전 편찬자, 소설가, 언론인, 문화평론가 등 각계 전문가 13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매달 한 차례 모여 치열한 논쟁 끝에 다듬은 말을 선정한다.
때론 언성을 높이거나 얼굴을 붉히고 때로는 합의에 이르지 못해 투표로 결정한다. 아무리 고민하고 토론해도 적합한 어휘를 찾지 못해 포기한 적도 있다.
지지난해 위원회가 출범하면서부터 말석을 지켜온 처지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다듬은 말이 널리 쓰이지 않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국어와 국사를 지킨 민족은 살아나
'한국통사'등을 쓴 저명한 사학자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인 백암 박은식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나라에는 국혼(國魂)이 있다. 곧 국어와 국사다. 아무리 약소한 나라도 국어와 국사를 지키는 민족은 살아날 것이며, 이를 무시하는 민족은 멸망할 것이다.'
전세계를 떠돌던 유대민족이 2000년만에 이스라엘을 재건한 바탕에는, 어느 곳에 살더라도 신앙과 언어를 지킨 그들의 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제 나라 말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은 지식인·교양인의 의무이다. 앞으로는 '윈윈'보다는 '상생'하며,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지 말고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자. 그래서 '시너지 효과' 대신 '상승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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