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들, 판례 비교위해 3월부터 집중 판결 … 2007년 형소법 개정후 판례 구체화
수사기관의 불법 증거수집에 대해 증거력을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의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2007년 사법개혁의 하나로 형사소송법을 크게 개정한 뒤 이에 따른 새 판례가 6년만에 대법원에서 차곡차곡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조문 가운데 104건을 개정하고 65건을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개정을 단행했다. 불법수사를 막기 위해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는 '위법수집증거의 배제'(형사소송법 308조 2항) 조항이 그때 신설됐다.
지난 3월 대법원은 위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한 증거의 효력에 대해 4건의 판례를 생산했다.
대법원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불법체포된 피의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해서 얻은 증거라도 유죄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경찰이 교통사고 현행범을 미란다 원칙의 고지없이 체포해 음주 호흡측정을 하자, 이에 승복하지 않은 피의자가 자발적으로 병원채혈을 요구해 음주측정을 했다. 수사기관은 이 채혈결과를 증거로 기소했고 원심은 이를 받아들여 유죄로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유죄의 증거로 인용할 수 없다고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위법행위를 기초로 수집된 증거는 그 증거뿐 아니라 그후 얻은 2차 증거도 증거능력이 없다"며 2차로 얻은 자발적 채혈증거에 대해서 "체포당시의 위법요소가 제거되거나 배제되었다고 볼 만한 다른 사정이 개입됨으로써 인과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같은날 같은 재판부에서 주심만 양창수 대법관으로 바뀐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의 위법행위가 해소되는 절차에 대한 판례가 나왔다. 재판부는 필로폰을 투약한 피의자를 미란다 원칙을 알리지 않고 연행하여 채뇨 측정한 투약증거는 '위법'하므로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뒤늦게 체포과정의 위법성을 알아챈 수사기관이 피의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정식으로 채뇨한 결과에 대해서는 유죄증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거부의사에도 경찰관이 영장없이 강제 연행한 것은 위법한 체포에 해당하고 이후 채뇨결과도 유죄인정 증거로 삼을 수 없다"면서도 "연행 후 법원 영장에 따라 수집된 2차 증거의 증거능력마저 부인한다면 실체적 진실규명과 형사사법 정의를 실현하려는 취지에 반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법관의 영장발부'는 수사절차로부터 독립된 법관에 의한 재판의 일종이기 때문에, 영장에 따라 증거를 압수했다면 이는 체포당시의 위법요소와 단절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재판부에서 두 개의 사건을 판결한 것은 대법관들이 6년전 사법개혁 차원에서 신설한 '위법수집증거의 배제'에 관한 판례를 보다 정밀하게 대조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2주 뒤 연달아 '위법수집증거의 배제'에 관한 두건의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백화점에서 구두와 의류 등 69만원어치를 훔친 혐의로 기소된 전 모씨 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매출전표 거래명의자 정보를 확보한 조치는 위법하고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도 부정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전씨는 백화점에서 입어본 옷을 그대로 입고 도망쳤다. 경찰은 현장에 떨어진 전씨의 신용카드 매출전표를 주워 카드회사에 신분확인 공문을 보냈다. 영장없이 이뤄진 이 절차를 통해 전씨가 체포됐고 법원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법원은 수색영장없이 매출전표의 주인을 확인한 행위는 위법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법원은 다만 "구속영장이 기각돼 석방된 전씨가 이후 수사에 협조하여 자신의 다른 범행을 자백하고, 석방후 3개월이 지나 열린 1심 법정에서도 범행을 일관되게 자백한 것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얻은 유죄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수사기관의 위법행위가 단절돼 증거로 인정되는 2차증거의 유효기준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뤄진 법정진술'을 제시한 셈이다.
같은 날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에서는 수시기관이 진술거부권이나 변호인선임권을 알리지 않고 수사해 얻은 증거는 위법이라는 판례를 내놓았다.
전라북도의 한 고속버스회사에 근무하는 13명의 운전기사에 대해 경찰은 이들이 변호인을 선임하겠다는 데도 선임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진술거부권을 알려주지 않은 채 조서를 받아 횡령혐의로 기소했다.
형사소송법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의 신청에 따라 변호인을 피의자와 접견하게 하거나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피의자에 대한 신문에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2007년 6월1일 위법증거 수집의 배제원칙을 형사소송법에 명문화했다. 그전에는 절차에 위법이 있어도 수집된 증거가 범행입증의 진정성이 있으면 유죄증거로 인정되는 게 관례였다. 검·경 등 일선수사기관이 사법개혁 이후에도 일단 털어보기식 관행을 버리지 않자 대법원은 2007년 11월15일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발부된 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물품을 압수해 증거로 삼는 것은 위법"이라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냄으로써 적법절차의 준수 판례를 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적법절차의 세부적인 적용례에 관한 판례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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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의 불법 증거수집에 대해 증거력을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의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2007년 사법개혁의 하나로 형사소송법을 크게 개정한 뒤 이에 따른 새 판례가 6년만에 대법원에서 차곡차곡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조문 가운데 104건을 개정하고 65건을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개정을 단행했다. 불법수사를 막기 위해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는 '위법수집증거의 배제'(형사소송법 308조 2항) 조항이 그때 신설됐다.
지난 3월 대법원은 위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한 증거의 효력에 대해 4건의 판례를 생산했다.
대법원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불법체포된 피의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해서 얻은 증거라도 유죄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경찰이 교통사고 현행범을 미란다 원칙의 고지없이 체포해 음주 호흡측정을 하자, 이에 승복하지 않은 피의자가 자발적으로 병원채혈을 요구해 음주측정을 했다. 수사기관은 이 채혈결과를 증거로 기소했고 원심은 이를 받아들여 유죄로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유죄의 증거로 인용할 수 없다고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위법행위를 기초로 수집된 증거는 그 증거뿐 아니라 그후 얻은 2차 증거도 증거능력이 없다"며 2차로 얻은 자발적 채혈증거에 대해서 "체포당시의 위법요소가 제거되거나 배제되었다고 볼 만한 다른 사정이 개입됨으로써 인과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같은날 같은 재판부에서 주심만 양창수 대법관으로 바뀐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의 위법행위가 해소되는 절차에 대한 판례가 나왔다. 재판부는 필로폰을 투약한 피의자를 미란다 원칙을 알리지 않고 연행하여 채뇨 측정한 투약증거는 '위법'하므로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뒤늦게 체포과정의 위법성을 알아챈 수사기관이 피의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정식으로 채뇨한 결과에 대해서는 유죄증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거부의사에도 경찰관이 영장없이 강제 연행한 것은 위법한 체포에 해당하고 이후 채뇨결과도 유죄인정 증거로 삼을 수 없다"면서도 "연행 후 법원 영장에 따라 수집된 2차 증거의 증거능력마저 부인한다면 실체적 진실규명과 형사사법 정의를 실현하려는 취지에 반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법관의 영장발부'는 수사절차로부터 독립된 법관에 의한 재판의 일종이기 때문에, 영장에 따라 증거를 압수했다면 이는 체포당시의 위법요소와 단절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재판부에서 두 개의 사건을 판결한 것은 대법관들이 6년전 사법개혁 차원에서 신설한 '위법수집증거의 배제'에 관한 판례를 보다 정밀하게 대조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2주 뒤 연달아 '위법수집증거의 배제'에 관한 두건의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백화점에서 구두와 의류 등 69만원어치를 훔친 혐의로 기소된 전 모씨 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매출전표 거래명의자 정보를 확보한 조치는 위법하고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도 부정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전씨는 백화점에서 입어본 옷을 그대로 입고 도망쳤다. 경찰은 현장에 떨어진 전씨의 신용카드 매출전표를 주워 카드회사에 신분확인 공문을 보냈다. 영장없이 이뤄진 이 절차를 통해 전씨가 체포됐고 법원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법원은 수색영장없이 매출전표의 주인을 확인한 행위는 위법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법원은 다만 "구속영장이 기각돼 석방된 전씨가 이후 수사에 협조하여 자신의 다른 범행을 자백하고, 석방후 3개월이 지나 열린 1심 법정에서도 범행을 일관되게 자백한 것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얻은 유죄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수사기관의 위법행위가 단절돼 증거로 인정되는 2차증거의 유효기준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뤄진 법정진술'을 제시한 셈이다.
같은 날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에서는 수시기관이 진술거부권이나 변호인선임권을 알리지 않고 수사해 얻은 증거는 위법이라는 판례를 내놓았다.
전라북도의 한 고속버스회사에 근무하는 13명의 운전기사에 대해 경찰은 이들이 변호인을 선임하겠다는 데도 선임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진술거부권을 알려주지 않은 채 조서를 받아 횡령혐의로 기소했다.
형사소송법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의 신청에 따라 변호인을 피의자와 접견하게 하거나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피의자에 대한 신문에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2007년 6월1일 위법증거 수집의 배제원칙을 형사소송법에 명문화했다. 그전에는 절차에 위법이 있어도 수집된 증거가 범행입증의 진정성이 있으면 유죄증거로 인정되는 게 관례였다. 검·경 등 일선수사기관이 사법개혁 이후에도 일단 털어보기식 관행을 버리지 않자 대법원은 2007년 11월15일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발부된 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물품을 압수해 증거로 삼는 것은 위법"이라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냄으로써 적법절차의 준수 판례를 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적법절차의 세부적인 적용례에 관한 판례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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