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 칼럼] 자존감

지역내일 2013-04-09
한울교회 목사. 구미 YMCA 이사장

우려하던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만다더니, 올 게 오고야 말았다. 이명박정부 때 금강산과 개성 관광이 중단된 데 이어, 마지막 남은 평화와 교류의 상징인 개성공단마저 그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다. 금강산 길과 개성 길이 이명박정부 초기에 막힌 뒤에 그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남북관계가 고착상태였던 것을 경험한 터인지라, 이런 위기가 박근혜정부의 출범과 함께 닥쳐왔다는 것이 더 걱정스럽다. 이로써 앞으로 5년 동안의 남북관계는 시계제로의 상태가 되었다.

북의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는 어제 담화를 내어, 개성공단의 북측 노동자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공단의 존폐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개성공단에 들어 있는 남쪽 기업들에 대해서는 최소인원만 남기고 10일까지 철수해 달라며 '최후통첩'까지 했다. 10일은 북측이 평양 주재 각국 공관들에 유사시 철수 계획을 제출해 달라고 요구한 시한이다. 최대 고비인 셈이다.

남북관계의 물꼬는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시점부터 트였다고 볼 수 있다. 문 목사는 노태우정권 시절이던 그해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열흘 동안 평양에 머물면서 김일성 주석과 두 차례 회담을 하는 등, 북측 인사들과 협의를 거쳐서 4월 2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남북은 '자주적 평화통일과 관련된 원칙적 문제 9개항'이란 제목의 합의 성명을 발표했다.

주요 합의내용은 이렇다. ①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통일문제를 해결한다. ②정치ㆍ군사회담을 진전시켜 남북의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동시에 다방면의 교류와 접촉을 실현한다. ③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추진한다…. 이 합의는 11년 뒤인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발표한 6·15선언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다.

문익환 목사 방북 이후 '대통령' 호칭 사용
문 목사 방북 이후 북에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을 '대통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남쪽의 대통령을 보고 괴뢰도당, 역적 등으로 불렀고, 잘 대접해줘야 그냥 이름을 부르는 정도였다.

엄청난 변화였다. 문 목사는 평양 도착성명에서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를 두고 당시 정부에서는 어떻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느냐며 펄쩍 뛰었다. 언론들도 동네북인 듯 그를 때렸다.

지금은 물론이고 당시에도 나는 문 목사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것은 예수의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모델을 스스로 실천한 것이고, '내가 이방인은 아니지만 이방인을 얻기 위하여 이방인과 같이 되었다'고 한 바울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를 얻기 위해서 그는 공산주의자 '같이' 되었던 셈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지령수수, 잠입, 탈출협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93년 3월 6일 사면되었지만, 그 다음해인 1994년 1월 18일에 세상을 떠났다.

국회의원들이 동료의원들을 지칭할 때 늘 입에 달고 있는 말이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다. 본회의장에서 멱살을 잡고 싸우던 의원이라도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이다.

가식이 섞여 있을지언정 나쁜 관행은 아닌 것 같다. 그런 것이 정치적인 수사(修辭)인데, 요즘 남북의 관리들이나 최고급 지도자들의 언어에는 수사가 없다. 특히 우리 쪽에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너도 나도 다 직격탄이다.

각군 참모총장이나 합참의장 정도는 강경한 발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국방·통일부장관은 말을 아껴야 하는데, 험한 말은 아랫사람들 시키고 본인은 점잖음을 유지하는 풍모가 없다. 위선을 보이라는 것이 아니라 의연함을 보이라는 것이다.

위선이 아닌 의연함 보였으면
북쪽 사람들이 개성공단에 대하여 초강경카드를 꺼내든 것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자존감' 때문이다.

일부 언론들이 이른바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달러박스'니 '외화벌이용'이니 하는 표현을 쓰면서, 북이 돈 때문에라도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도하는 것을 두고 북측은 "못된 입질"이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자존감 상한 것이 문제라면, 돈 드는 일도 아닌데, '말'로써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우리 정부가 북의 위기조장에 동조함으로써 뭔가를 감추거나 얻고 싶은 꿍꿍이가 없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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