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청문회나 언론을 통해 연일 드러나고 있는 새 정부 주요 인사들의 자질에 대해 말들이 많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지연, 학연, 관연, 전관예우, 위장전입, 병역면제, 세금문제 등은 이전 정권들의 메뉴 재탕으로 새로울 것이 없고 단지 고소영이 성시경으로 바뀐 정도다.
그런데도 실망의 목소리가 더 크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거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아진 데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 밑바닥에서 우리 경제에 해악적인 연고중심의 '우리끼리' 문화에 주목하고 싶다.
연고중심의 '우리끼리'문화는 우리사회에 넓고 깊게 뿌리내렸다. 그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동창회 등 각종 모임과 경조사 참석에 열심이다. 관계를 소홀히 하여 자칫 '우리'에서 소외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인적네트워크에 대한 처세술 책이 인기 있고 사교적인 골프가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변호사 개업광고에는 빠짐없이 출신학교, 사법시험 기수, 그리고 법원 검찰 약력 등이 적혀 있다. 변호사 선임 시 담당판사와 가까운 연고를 가진 변호사가 유리하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모든 일에 연고를 총동원해 활용한다. 음주운전에 걸려도 운전자가 적발 경찰관에게 자기 연고를 과시하며 으름장을 놓는 게 다반사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행태는 개인이나 개별집단 차원에서는 이득이 될지 몰라도 국민경제 전체로는 그 비용이 엄청나다는 점이다.
첫째, 폐쇄성으로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이나 투명한 경제환경 조성에 역행한다. '끼리끼리 해먹는다'든지 '연줄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시정의 자조적인 탄식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끼리끼리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온정적이다. 거래도 사적관계로 포장하여 부정부패를 조장하고 법에 대한 신뢰도 약화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창의와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패전한 독일은 발전, 승전한 영국은 침체
둘째, '우리끼리'문화가 압력 이익단체 형성의 밑바탕이 되는데 이들의 발호는 경제를 동맥경화에 빠뜨린다. 집단행동을 통해야만 이익을 쟁취하거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사회에서는 서로가 이익집단을 만들어 대처하려는 유인이 강하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 몫을 더 챙기거나 지키는 것에만 관심두기 때문에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다. 이른바 '편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 작태도 흔히 보게 된다. 압력 이익단체가 성행할수록 각종 진입장벽이 많아져 원활한 경제흐름이 저해된다.
이들 집단은 세월이 흐를수록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기득권세력으로 커진다. 맨써 올슨(Mancur Olson)은 1982년 그의 역작 '국가의 흥망성쇠'(The Rise and Decline of Nations)에서 이익집단의 발호가 국가경제를 어떻게 쇠퇴시키는가를 정교한 경제논리와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2차 대전 후 패전한 독일은 급속히 경제 및 사회발전이 이루어지는 데 반해 오히려 승전국인 영국은 침체의 길을 걸었던 과거 경험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전쟁에 패해 기득집단이 사라진 독일은 사회 역동성이 살아난 반면 영국은 승전으로 기득집단의 지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사회 활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국 경제가 동맥경화를 앓은 꼴이다. 우리나라 개발연대 초기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개천에서 수 많은 용이 날 수 있었던 것도 해방 이후 6·25 전쟁으로 뿌리 깊은 기득계층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창의력과 발빠른 적응이 더욱 강조되는 지식기반경제 하에서 배타적 성향의 이익집단 발호는 단기에서조차 경제에 이로울 것이 없다.
경제민주화 공약 지킬 것을 믿기에
셋째, 자원배분의 왜곡이다. 돈과 시간이 이권과 관계된 각종 로비활동에 투하된다. 생산적인 투자와는 거리가 멀다.
뿐만 아니다. 학연과 관연에서 오는 '우리끼리'의 배타적 이익이 얼마나 큰가를 잘 알고 있기에 무리해서라도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한다. 이러한 비용지출은 백년대계를 위한 교육투자라고 볼 수 없다. 과다한 사교육비지출이 지속되는 한 가계소득이 늘어난다고 해도 국민행복시대는 도래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아직 낙담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제도개혁을 통해 지금까지 열거한 '끼리끼리'문화의 폐해를 어느 정도 완화시켜줄 수 있는 경제민주화라는 공약을 박근혜정부가 지킬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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