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삼성의 스티브 잡스 찾기

지역내일 2013-03-26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삼성전자 본사 빌딩은 보기만 해도 그 위용에 압도당하고 만다. 다양한 인간들이 부딪치며 사는 뒷골목 풍경과는 달리, 오직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인간들만이 거주하는 빌딩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부르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 삼성전자가 본사 빌딩 지하에 차고 비슷한 공간을 만들었다고 해서 화제를 낳고 있다. 50평쯤 되는 방엔 톱, 드릴, 드라이버 등 각종 공구가 비치되어 있고,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컨테이너 박스 회의실이 벽면에 들어차 있다. 나선식 계단을 통해 한 층 올라가면 사색하고 토론할 수 있는 다락방도 있다. 연구실도 골방 같은 구조로 차려 놓았다. 이곳을 현장 취재한 한 경제신문 기자의 르포 내용이다.

이게 뭐 하자는 노릇인가. 설명은 간단하다.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창의적 공간에서 직원들로 하여금 상상력과 영감이 샘솟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업 비전을 실현하려면 일상의 사무실이나 연구실에서는 역부족이라는 경영적 판단에서 나온 아이디어인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40년 전 애플의 떡잎을 키운 곳은 아버지의 차고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분위기를 구경하며 잡스는 차고에서 이것저것 마음 내키는 대로 만들고 실험했다. 잡스뿐 아니라 빌 게이츠도 아버지의 창고에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MS라는 글로벌기업을 일으켰다. 휴거렛패커드 구글 등 실리콘밸리의 내로라하는 기업은 그 산실이 차고나 창고 같은 곳이었다.

삼성이 초현대식 건물 지하에 차고 스타일의 혁신 공간을 만든 것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성이 애플과 난형난제를 이루며 초일류 기업으로 크게 성장한 것은 지난 3~4년 동안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애플과 2강 구도를 이루면서부터다. 이제 애플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애플은 재작년 세계 IT혁신을 주도해온 스티브 잡스를 잃었고, 탁월한 선장을 잃은 애플은 적잖이 흔들리고 있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 절실
삼성전자로서는 또 한 번 도약의 분기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또는 새로운 위기를 느낄 수도 있다. 매출 규모로 정상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서 다크호스가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혁신제품의 출현으로 경쟁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가닥을 잡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다양하고 다이내믹한 IT역사는 어떤 선두 주자도 오랜 시간 안주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개발 선두주자가 아니라 훌륭한 추격자로서 성공해왔던 셈이다. 이것이 삼성전자 경영 수뇌부의 마음속을 누르는 짐일 수 있다. 새로운 것을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절실할 것이다. 몸집이 커질수록 그에 걸맞는 두뇌가 필요해졌고, 따라서 스티브잡스를 탄생시킨 실리콘밸리의 문화에서 그 길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혁신적 실험은 지하에 만든 창의적 공간만이 아니다. 올해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라는 야심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인문계 대학졸업생 200명을 선발하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보통은 엔지니어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게 하는 방법이 유용할 것 같은데, 삼성은 인문학 전공자를 엔지니어로 전환시키겠다는 것이니 대단한 역발상이다.

탈PC시대에 인문학의 중요성을 들고 나왔던 사람이 스티브 잡스다. 그는 죽기 반년 전인 2011년 봄 iPad2 출시 설명회에서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 필요성을 이렇게 피력한 적이 있다. "애플사의 DNA속에는 기술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인식이 있으며, 기술은 교양 및 인문학과 결혼하여 우리 가슴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해야 한다."

인문학은 창의력의 원천이며, IT와 인문학의 통섭은 이제 실리콘밸리의 추세이자 문화로 수용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놀고 상상할 시간 잃어버린 한국 청년들
삼성전자는 전자산업 매출액 부분에서 세계 최고 반열에 올라있다. 품질도 월등하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스스로 느끼는 공백이 있는 듯하다. 삼성은 이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고 있으며, 창의력의 원천이고 컨텐츠의 창고라는 점에서 인문학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회의도 든다. 세계 최대의 전자회사 빌딩 지하실에 만든 차고형 공간이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연봉이 보장된 강남스타일 청년들에게 영감을 일으킬 수 있을까.

미국에서 차고는 아이들이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놀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 아이들은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놀고 상상할 시간을 잃었다. 삼성의 실험은 참신하고 획기적인 것이 아니라 궁여지책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삼성의 실험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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